넷플릭스 드라마 〈레이디 두아〉 리뷰
청담동 명품 거리에서 얼어 죽은 여자의 시신으로 시작하는 이 드라마는 겉모습과 달리 추리극이나 수사극은 아니다. 형사인 박무경(이준혁 분)은 사실상 탐정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라 킴(신혜선 분)의 화려한(또는 황당한) 일대기를 따라가는 관찰자에 가깝다.
동시에, 이 드라마는 '거짓말'에 관한 이야기이면서도 리플리 증후군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사치와 허영에 빠진 여성의 추락을 폭로하는 것도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엔딩에서 부두아의 정체가 세상에 드러나고 사라 킴은 합당한 처벌을 받았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엔딩에서 사라는 끝내 부두아만을 남기고, 자신은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선택한다.
액체화 된 '사라 킴'
"제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에요."
목가희, 두아, 김은재, 김미정.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사라킴은 현대 사회의 액체성을 떠올리게 한다. 바우만은 근대 이후 사회에서 정체성은 "발견해야 할 본질"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선택하고 교체해야 할 프로젝트"라고 설명한다. 계급, 직업, 공동체, 윤리, 그리고 정체성까지도 고정되어 있지 않은 사회에서 사라의 위 대사는 궤변이 아니라, 어쩌면 정확한 설명일지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잘못 됐을까?"
가장 액체적인 인간 '레이디 두아' 즉, 사라가 욕망하는 것은 재미있게도 불변하는 가치다. 그녀는 태어나길 남다른, 수십, 수백 년의 헤리티지를 가진 명품의 세계에 들어가기를 욕망한다. 한 때 유행처럼 불었던 그 이름 '올드머니'다.
뷰티 브랜드 '녹스'를 론칭해 자산가의 반열에 오른 정여진(박보경 분)은 평생 졸부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성골'들 사이에 끼지 못한다. 그녀에게 자수성가는 해소될 수 없는 열등감의 원천이다. 그런 여진에게 삼월백화점의 회장 최채우(배종옥 분)는 우리는 "혈통부터 다르"다며 비아냥댄다.
사회가 액체화 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고체적인 것을 욕망한다. 영원성, 지속성, 계보, 혈통. 사라와 여진이 집착하는 명품과 올드머니는 바로 이 고체세계의 잔해다. 문제는 고체세계는 원칙적으로 배타적이라는 점이다. 명품은 누구나 살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어울리지는' 않는다. 소유보다 출신과 시간을 요구하는 이 세계에 액체적 인간은 애초에 속할 수 없다. 노오력만으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노력이 미덕이 아니라 오히려 결핍의 증거가 되는 모순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사라는 이 모순적인 규칙을 정확히 이해한다. 그래서 그녀는 100년 전통을 가진 영국산 명품 '부두아'를 만들고, 재미교포에 옥스퍼드를 졸업한 '사라 킴'을 만들어 낸다. 헤리티지를 축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을 압축된 이미지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렇게 가짜 명품 부두아는 그 자체로 고체세계를 유지해 온 비밀을 폭로하는 장치가 된다. 명품이 명품인 이유가 품질이나 미학이 아니라, 믿음과 승인에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사라는 그 명품을 욕망하지만, 동시에 증오한다. 사라가 문제적인 이유는 그녀가 규칙을 어긴 이방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규칙을 누구보다 정확히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세계가 요구하는 이미지, 태도, 말투, 소비 방식을 완벽하게 재현함으로써 "너무 완벽한 가짜"를 만들어 낸다. 그녀의 거짓말은 단순한 생존 전략을 넘어, 자신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을 세계에 대한 복수가 된다.
불안정한 사랑과 완전한 증오
〈레이디 두아〉는 의도적으로 로맨틱한 관계를 배제한다. 여성/사기꾼이라는 소재에서 그녀의 성이 상품으로 다뤄질 최소한의 여지도 주지 않으려는 전략처럼 비치기도 하고, 로맨스 규범에 대한 냉소 내지는 반항으로 보이기도 한다.
드라마에는 이성 커플도 등장하고 동성애에 대한 암시도 나오지만, 이들은 사랑으로 보기 어렵다. 그나마 속이는 척이라도 했으면 끝까지 속아줬으리라 울부짖는 강지훤(김재원 분)만이 진정 사랑이었나 의심해 볼 만한데(무경은 거짓말일 것이라 확신한다.), 그 유일한 인물이 돈이면 몸도 파는 호스트바 선수라는 사실 역시 아이러니다. 특히나 로맨틱의 완성인 결혼 자체를 비웃는 듯한 은재(사라)와 홍성신(정진영 분)의 관계는 어떤가.
그도 그럴 것이, 액체화 된 현대에서 사랑은 위험한 감정이다. 왜냐하면 사랑에는 책임이 요구되고, 고정된 정체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증오는 다르다. 불안정한 세계에서 증오는 거리 두기를 허락하고, 감정의 방향만 유지되면 지속 가능하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는 증오만이 유일하게 '진짜'처럼 보인다.
지훤과 성신이 사라를 진심으로 사랑했는지, 채우가 지훤을 진심으로 원했는지, 사라가 누군가에게 진심인 적 있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하나 확실한 건 인물들의 증오만은 명백하게 진짜라는 사실이다. 지훤, 채우, 여진—그들이 사라 킴을 증오한다는 사실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감정이 질투든, 배신감이든, 애증이든. 사랑에는 증거가 없지만, 증오는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라 킴과 홍성신
그런데 이 지점에서, 성신은 단 한 번도 사라를 증오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사랑한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성인은 사라에게 신장 기증을 약속받고 계약 결혼을 하지만, 사채업자인 그가 그녀의 선의를 믿었을 리는 없다. 애초에 이 관계는 윤리나 감정의 문제로 맺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라가 약속을 저버리고 도망쳤을 때도 그녀를 벌하지 않기로 한다. 그건 실패한 거래지, 배신이 아니기 때문에.
현대의 관계는 가볍고, 언제든 철회 가능하며, 어떤 책임도 요구하지 않는다. 가족조차 그에게 신장을 내어주지 않았던 것처럼. 성신은 이런 현대 사회의 윤리를 정확히 알고 있을 인물이다.
그는 과거 자신을 업신여기던 친구에게 평생 갚을 수 없을 만큼 큰돈을 빌려줌으로써 복수한다. 관계를 끊는 대신, 관계를 연장하는 방식으로 상대를 지배한 것이다. 그러나 그 친구의 아들이 소나무를 선물로 들고 찾아왔을 때, 성신은 모든 빚을 탕감해 준다.
이 일화는 성신이 단순히 냉혹한 거래의 인간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는 철저히 거래의 논리를 따르지만, 동시에 ‘선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성신에게 선물은 무상으로 주어지는 호의가 아니라,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자 타인에게서 빌려온 감정이다. 결국 신장을 기증하고는 소나무를 베어 떠난 사라의 행위는 성신의 윤리를 정확히 이해한 작별인사가 된다. 거래는 끝났으며, 선물은 남기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쯤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이 드라마의 핵심 사건인 김미정 사망 사건은 그 동기도 범행 과정도 무엇 하나 속 시원히 설명되지 않은 채 막을 내린다. 다만, 마지막 사라의 회상에서 미정과 몸싸움을 하다 도망친 사라가 성신을 마주치고 되돌아가는 장면을 통해 그녀의 이후 행적이 암시될 뿐이다. 그리고 사라의 정체를 입증할 유일한 증거인 혈액 샘플도, 그 존재를 아는 또 하나의 인물, 성신에 의해 사라졌으리라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도움을 청하러 뛰쳐나온 사라는 성신을 마주한 후, 곧바로 발걸음을 돌려 쓰러진 미정에게 간다. 그리고 그 시신이 얼굴이 훼손된 채 사라 킴을 닮은 모습으로 하수구에서 발견되었으니, 그녀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미정의 시신을 사라 킴으로 둔갑하는 것, 즉 사라 킴을 죽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그녀의 의도다. 그렇다면 왜 사라는 성신을 마주친 후 사라 킴을 죽이기로 결심한 것일까?
돌연 부두아의 지사장 '사라 킴'으로 나타난 은재를 보고 성신은 별다른 질문도 없이, 그저 반가운 얼굴로 "은재야!"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순간 가장 유동적인 존재인 그녀는 고정되어 버린다. 이런 성신의 태도는 그가 애초에 그녀에게 진짜 정체를 묻지 않았던 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 어떤 이름으로 살든, 어떤 거짓말을 하고 있든 성신은 그녀를 동일한 존재로 받아들이고, 의심하지도 증오하지도 않는다.
바로 이런 성신이 그녀에게는 가장 치명적인 존재가 된다. 사라 킴이 된 그녀에게 가장 잔인한 것은 배척이 아니라,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 수용이었기 때문이다. '설명할 필요도, 증명할 필요도 없는 존재'는 사라가 갈망하던 것이었지만,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끝내 도달할 수 없었던 존재 방식—고체로서의 부두아만을 남기고 사라지기를 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