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기꾼을 집에 들이는 완벽한 방법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by 소영

정치철학자 에스포지토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사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성찰했다.

우리를 구하는 것은 오직 타인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 없이는 결코 완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다.

공동체란 '타자에게 열려 있음', 곧 개방성을 본질로 한다. 외부로 난 통로가 폐쇄되면 공동체는 일종의 감옥이 돼 사람이 살 수 없게 되는 것과 같다.




피할 수 없는 결핍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의 두 가족은 혈연관계든 비혈연관계든 매우 이상한 가족인데, 구성원들은 사실상 어떤 유대감도 갖고 있지 않다.


복씨 가족들은 가족이면서도 유난히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방에 틀어박힌 복귀주(장기용) 외에도, “만나는 남자들 주머니로 돈을 퍼다나르”는 장녀 복동희(수현), 대화를 거부하는 손녀 복이나(박소이), 다정한 살림꾼이지만 정작 아내와는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아버지 엄순구(오만석) 등 그들은 한껏 틀어지고 이상한 서로를 애써 모른 체하며 간신히 가족의 형식을 유지해오고 있다.



‘핏줄’을 강조하는 복만흠(고두심)은 한국 드라마 특유의 전통적인 가족 관념을 상징한다. 심지어 중학생이 되도록 초능력이 발현되지 않고 있는 이나의 존재는 드라마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소재인 출생의 비밀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이런 흔한 설정들을 곳곳에 배치한 채 의도적으로 관심을 쏟지 않는다.


귀주의 전처 세연이 외도를 했다는 만흠의 의심이 잠시 등장하지만, 그것이 진실인지 이나가 자신의 딸이 맞는지 등의 내용에 정작 남편이자 아버지인 귀주는 전혀 관심이 없다. 만흠은 혈연을 강조하는 가정의 수호자로 보이지만, 두 번이나 이혼했다는 정체 모를 도다해(천우희)를 집에 들이는 데 가장 앞장서는 인물이기도 하다.



“미래가 안 보인다. 한 치 앞도. 잃어버린 걸 되찾지 못하면 복씨 집안은 여기서 끝이야.”


만흠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복씨 집안의 ‘미래’는 그 말 자체로 모순이다. 만흠이 가졌다고 확신하는 것들은 사실상 실체가 없을 뿐만 아니라 동희와 귀주의 과거 회상에서 보듯 오히려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 가깝다.


반대로, 엄순구가 보여준 과거의 기록에 따르면 사실 복씨 가족의 초능력은 처음부터 불완전했다. 귀주의 고조부가 가진 ‘불을 뿜는 능력’은 그가 전우를 구하겠다고 마음먹기 전까지는 능력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무의미했으며, 오히려 스스로를 상처 입게 하는 결함에 불과했다.


결국, 복씨 가족의 초능력자들을 히어로로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은 그들의 '타고난 초능력'이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이 '특권'이 아니라 돌려주어야 할 선물, 즉 '결핍'임을 인정하는 것에 달린 것이다. 동희와 귀주의 몸은 완결적이고 변화 불가능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주변과의 교환을 통해 계속해서 변화한다.



의심스러운 구원자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에서는 그것이 ‘짝’이 되는 사람과의 교류로 상징되는데, 동희에게는 그레이스(류아벨)가, 귀주에게는 다해가 그들의 결함을 불러일으키고 동시에 상호 교환을 통해 서로 안정성의 균형을 찾아가는 짝이 된다.


그런데, 그레이스와 다해는 그들에게 반드시 안정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두 사람은 동희와 귀주를 해할 바이러스에 가깝다. 무너져 가는 복씨 가문의 유일하게 남은 재산인 ‘500억짜리 건물’을 노리고 이들에게 접근한 사기꾼 가족의 장녀 다해와 여동생 그레이스는 당초 이 복씨 가족의 서로에 대한 불신을 이용해 재산을 갈취할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만흠은 예지몽을 통해 계속해서 다해를 보고, 그녀가 복씨 가문에 필요한 사람임을 확신한다. 오랜 불면증으로 인해 예지 능력이 신통찮아진 것인지 또는 다해가 정말로 복씨 가문을 다시 일으키고 병든 가족들을 치유할 구원자인지는 만흠도, 다해조차도 장담할 수 없다.



드라마는 이런 모호성을 강조하기 위해 시청자들에게도 과감하게 사기를 친다. 귀주의 시간여행 능력은 미래의 시간에서 과거의 시간에 간섭하는 능력이므로, 현재의 귀주는 아직 알지 못한다. 이런 점을 이용해 다해는 “미래의 귀주 씨가 다녀갔”다는 거짓말로 귀주를 속인다. 그런데 다해의 거짓말이 종종 진실이 되거나, 혹은 다해가 말한 진실과 거짓이 뒤섞이게 되면서 어디부터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모호해지는 상황이 생긴다.


이를테면 다짜고짜 “귀주 씨가 내 손 잡았잖아요”라고 말하는 다해의 말은 당연히 귀주에게 접근하려는 수작처럼 보였으나, 미래의 귀주가 정말로 과거로 회귀해 공황에 빠진 다해의 손을 잡아 주는 일이 일어나게 되면서 다해가 진실을 말한 것인지, 또는 다해의 거짓말에 세뇌된 귀주가 무의식 중에 그 말대로 행동하게 된 것인지 모를 혼란이 발생한다.


'나의 과거가 당신의 미래가 된다'는 로맨틱한 상황 설정을 사기에 써먹는 여자주인공은 멜로드라마의 클리셰를 파괴하면서도 다해에 대한 신뢰를 애초부터 무너트려 보는 이들조차 그녀를 계속해서 의심하도록 유도한다. 이런 의심은 이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서사 즉, 과거 고등학교 화재 사고에서 살아남았다는 다해와, 그런 다해를 구했다는 사람이 정말로 귀주가 맞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키면서 ‘아닐지도 모르는’ 구원자의 존재를 오롯이 드러낸다.



귀주가 다시 시간여행을 할 수 있게 되고, 과거에 간섭할 수 있게 된 계기는 다해가 분명하지만 그것이 구원일지 저주일지는 끝까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변화를 직감하면서도 또다시 자신이 모든 것을 망쳐버릴까 두려워 주저하는 귀주에게 아버지 순구가 건네는 조언은 다해라는 존재의 본질이면서, 귀주가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치유의 가능성이 바로 그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에 있음을 일깨운다.


"내가 장담하는데, 너는 틀림없이 이번에도 망쳐버릴 거야. 하지만, 도다해하고의 과거는 돌이키는 게 가능하잖아. 돌아가서 되돌리면 되잖아."



공통점이라곤 없는 공동체


다해의 가족은 저주받은 복씨네를 구원할 백마 탄 왕자도 아니고, 오히려 그들보다 더 상처받고 문제투성이인 오합지졸의 유사가족이다. 공통점이 전혀 없는 두 가족의 만남은 반드시 서로를 파괴한다. 이것은 드라마를 끝까지 보지 않더라도 분명한 사실인데, 그 이유는 다해가 애초부터 사기꾼임을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족은 겉보기에는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이질적이고 위험한 타자를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임으로써 상처를 치유할 가능성을 마주하게 된다. “네가 너무 오래 지우질 못하니까 다른 사람으로 덮어서라도” 귀주의 마음을 봉합하려던 만흠의 노력은 실패했지만, 다해라는 새로운 문제를 복씨 집안으로 데려오는 데는 성공했다.


고통을 잊게 할 모르핀을 맞는 것만으로 그들의 병은 치유되지 않는다. 곪아온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의 가장 깊은 상처를 확인하고 새 살이 돋아나기 위해 다시 상처를 내야 한다. 복씨 가족들은 예견된 불행을 알게 된 이후 계속해서 자신들의 초능력이 저주라고 원망하지만, 그들에게 시작된 진짜 변화는 초능력이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던 것들을 허물 때, 비로소 공동체는 가능해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 시절에도 사랑은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