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 시절에도 사랑은 어려웠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by 소영

노희경의 사랑


최애 드라마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일단 제일 먼저 떠올리는 작품이 있다. 2008년 송혜교, 현빈 주연의 〈그들이 사는 세상〉. 로맨스 드라마를 그리 즐겨 보는 편은 아니지만, 노희경의 드라마는 좋아한다.


그리고 노희경은 여자들을 좋아한다.


노희경의 여자들은 사연 있고 외롭고 억까당할지언정, 무디지는 않다. 로맨스 여주 답지 않게 날 선 그녀들은 밉지 않다. 무려 11년 전에 남친한테 독신 선언한 공효진이 있었고, 그보다 6년 전에는 이별해도 밥만 잘 먹는 쌉T 송혜교가 있었다. 게다가 그 주준영(송혜교)은 전남친한테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며 욕먹고 차인다.


그렇게 보면,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오영, 〈괜찮아, 사랑이야〉의 지해수, 〈디어 마이 프렌즈〉의 완과 난희는 모두 주준영의 파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노희경은 여성 인물의 정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로맨스라는 장르 안에서 여성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그리하여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사랑은 벼랑 끝에서


반대로 남자 주인공들은 상대적으로 매력이 옅다. 특히 〈그사세〉의 어딘지 모르게 열패감으로 점철된 남자 주인공(현빈)은 정말 전례가 없다. 힘들다고 말하고, 투정 부리고, 틀어박히기도 하고, 그리고 결국은 성장하는 여주들에 비해 남주인공들은 꽤나 납작하다. 허나 모성애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하나같이 아프고, 상처받고, 취약하다. 그래서 때로 그들의 로맨스는 상처받고 지질한 남주를 병 주고 약 주고 보듬어주는 여주의 원맨쇼가 되기도 한다. 결국 남성의 아픔을 이해하고 껴안는 여성의 사랑 이야기로 귀결되는 이런 서사는, 어쩔 수 없이 일종의 모성애 판타지 내지는 로맨틱한 이데올로기의 존재감을 남긴다.



그럼에도 노희경의 사랑 이야기는 단순히 달콤한 판타지에 머물지는 않는다. 그녀가 그리고자 하는 사랑은 언제나 현실의 벼랑 끝에서 피어난다. 노희경의 사랑관은 꽤 독특한데, 대체적인 스토리가 부도덕한 부모(특히 어머니의 불륜)의 영향으로 사랑을 믿지 않는 인물들이 치고받고 더럽게 사랑해 가는 내용이다. 아버지는 가정폭력 가해자거나 무력하게 병들어 있고, 어머니는 외도하거나 자식을 버린다. 주인공들은 어린 시절부터 감정적으로 결핍되어 있고, 때로는 정신질환이나 신체적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사랑을 시도하고, 관계를 맺고, 상처를 견딘다. 사랑이 유일한 해답은 아니지만, 드라마는 ‘그럼에도’ 기를 쓰고 사랑하라고 말한다.


왜 이렇게까지 힘들고 처절하게 사랑해야만 할까? 〈괜찮아, 사랑이야〉의 지해수는 영화 〈비포 미드나잇〉을 추천하며 말한다.

“너무 예쁘고, 섹시하고, 또 멋있고, 젊어서 서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냥 단지 너여서”
“부족하고 괴팍하고 늙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그 관계가 감동이었거든요.”

노희경이 응시하는 지점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러니까, 노희경은 벼랑 끝에서 피어나는 꽃을 자꾸만 본다.


아직도 어려운, 주준영의 사랑


우리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나를 더 진지하게 생각해 줄 수 없냐는 애인에게 차갑게 식은 말 밖에 내뱉을 줄 모르는 준영은, 그렇다고 결코 사랑에 가벼운 건 아니다. 보고 있으면 쌉T가 아닐 리 없는 준영은 감정적으로 완벽하지 않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이해하려 애쓴다.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는 사람, 그러나 동시에 그만큼 사랑에 진심인 사람. 그것이 바로 주준영이라는 캐릭터의 힘이다.


사람을 설명할 때 각종 유형을 끌어다 쓰는 게 익숙해진 요즘 식으로 말하면 준영은 ‘회피형 애착’ 그리고 사고(T)형 인물의 전형이다. 준영은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고, 가까워질수록 거리를 두며,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존심을 무기로 내세운다. 그가 사랑을 선택하면서도 끊임없이 관계를 시험하고, 스스로를 단단히 감추는 태도는 애착유형이 설명하는 회피형 애착 성향과 일치한다.


준영의 전 연인이자 외과의사인 준기(이준혁)는 수술 과정에서 환자를 잃은 날 밤 준영을 찾아오지만, 워커홀릭 준영은 촬영 현장을 뛰어다니기 바쁘다. 준영에게도 어쩔 도리 없는 사정이 있었지만 준기에게 필요한 것은 가장 가까이서 '나'를 이해하고 위로해 줄 연인이었다. 그래서 준기는 "나는 이런 일이 있을 때 24시간 곁에 있어 줄 사람이 필요해"라며 이별을 고한다.


수술하다 보면 늘 있는 일이잖아, 무슨 소송까지 거냐? 는 준영식 위로는 준기에게 통하지 않는다. 매번 같은 문제로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하는 둘 사이에, 분명 사랑은 존재하지만 그 사랑을 가로막는 이유들은 끝도 없이 쌓인다. 그리고 이건 준영이 이상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이 드라마는 시작하는 연인보다 끝을 맞이하는 연인을 더 많이 보여준다. 그들의 관계에는 설렘도 있지만, 더럽고 치사한 속내가 드러나는 순간들이 훨씬 많다. 드라마 PD, 작가, 배우인 등장인물들은 그들의 작품 속 사랑 이야기를 치밀하게 설계하고 연출해 낸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현실 속 사랑 앞에서는 서툴기만 하다. 해야 할 말을 삼키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헤어졌다가 또 만나기를 반복한다.


준영이 말하길, 드라마 속 신파적이고 상투적인 사랑은 하기 싫었지만, 그래서 쿨해지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보다 더 진부하다. 냉정하고 이성적인 속물 같았던 프로 PD 손규호(엄기준)가, 자신의 작품에 출연한 신인 배우와 사랑에 빠지고 결국 현실에 밀려 이별한 것처럼 사랑 앞에서는 누구도 예외가 없다.



“사랑을 하면서 알게 되는 내 이런 뒤틀린 모습들은 정말이지 길들여지지 않는다. 그만하자고, 내가 잘못했다고, 다시 만나자고. (…)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왜 난 자꾸 이상한 말만 하는 건지.”


이보다 더 현실적이고 공감 가는 로맨스 대사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극 중 노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다룬 단막극 촬영이 끝나고, 중년 배우 일우(이호재)는 담담히 아픈 아내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털어놓는다. 드라마는 아름답게 끝났지만, 그의 삶은 여전히 남아있다. 아무리 노련한 배우라도 삶과 죽음까지 노련하진 않다. 지오는 그래서 드라마가 좋다고 말한다. “내가 모르는, 내가 외면했던, 내가 무관심했던 숱한 사람들의 삶까지 엿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사세〉는 매번 극의 마지막 촬영과 쫑파티 장면을 보여주지만, 그 순간이 ‘그들이 사는 세상’의 끝은 아니다. 커튼콜이 내려간 뒤에도 삶은 결말을 모른 채 계속되고, 그것은 드라마 속 비극보다 더 처연할 수도, 혹은 별 볼 일 없을 수도 있다.



노희경이 그려내는 사랑은 세련되거나 이상적인 모습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치사하고, 바보 같고, 때로는 지질하다. 그러나 그 모든 불완전함이 ‘원래 그런’ 사랑의 본질이다. 사랑을 어떻게 해야 옳은지, 그때도 지금도 아무도 모른다. 〈그사세〉가 보여주는 건 완벽한 사랑의 정답이 아니라, 끝없이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준영과 지오, 그리고 사람들의 얼굴이다.


드라마처럼 살아라

마지막 회 제목처럼, 〈그사세〉는 가장 통속적이고 유치한 드라마 속 당신들을 미워하고, 사랑하는 이야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죽은 자는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