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면 행복할 거라는 착각

by 김지구

여행을 오래 하다 보면 알게 된다.

떠나는 것이 곧 행복이 아니라는 걸.


비행기 표를 결제할 때의 설렘,

짐을 싸며 머릿속에 그리던 새로운 나,

떠나는 순간에 느끼는 해방감 —

그 감정들은 아름답지만, 행복과는 다르다.


여행이 모든 문제를 풀어줄 거라는 기대는

종종 현실을 더 무겁게 만든다.

기대가 클수록, 그 아래 생기는 그림자도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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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장소’가 아니라 ‘능력’


많은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지금 내가 힘든 건 이 도시 때문이야.

떠나면 다른 내가 될 거야.”


하지만 어딜 가도

우리는 우리를 데려간다.


익숙한 외로움,

익숙한 불안,

익숙한 생각의 습관이

짐 속 깊은 곳에 붙박혀 따라온다.


환경은 바뀌어도

사유의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똑같은 고민이 다른 경치 속에서 반복될 뿐이다.


행복은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머무를 수 있는 마음의 능력이다.


여행이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


여행은 도망이 될 수 있지만

더 자주, 거울이 된다.


고요한 산책길에서

나를 위로할 사람이 나뿐이라는 걸 깨닫고,


낯선 도시의 시장에서

사람들이 각자의 속도로 살아간다는 걸 보며

비로소 나의 조급함을 알아차린다.


여행은 상처를 치료해주진 않는다.

하지만

내가 어디가 아픈지 빛으로 비춰준다.


행복은 발견이 아니라 훈련


떠나면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떠남 속에서

기억·감정·관찰을 훈련할 때

조용한 평화가 온다.


계획이 틀어졌을 때 웃을 능력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체력


하루의 작은 기쁨을 놓치지 않는 감각


완벽한 일정보다 느린 순간을 선택할 여유


이건 장소가 키워주는 게 아니라

마음이 키우는 기술이다.


떠남의 진짜 의미


떠난다는 건

지금 가진 것에 실망해 등을 돌리는 게 아니라,

내가 더 잘 살아보고 싶다는 다짐에 가깝다.


여행은 행복의 목적지가 아니라

나를 다시 배우는 과정이다.


가만히 있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면

얼마나 멀리 가든

낯선 곳에서도 나를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결국 떠남의 결론은 이렇게 수렴된다.


행복은 ‘어디에 있느냐’보다

‘어떻게 일상과 마주하느냐’에 달려 있다.


마지막 문장


떠남은 약속이다.

세상을 만나보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나를 더 정성스럽게 마주하겠다는 약속.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킬 때

그제야 여행이

도피가 아닌 삶의 방식이 된다.


떠남은 행복을 주지 않는다.

대신,

행복을 스스로 만드는 힘을 길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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