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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세평 Oct 24. 2019

남아공 유학 | 01. 칸막이 화장실 영어 특훈

‘화장실 훈련법’의 효과는 위대했다.

화장실을 방문할 때마다
“하우아유?”, “암 굿”, “땡스 쏘 머치”, “쏘리”와 같은
인사말을 잇속으로 되뇌었다.

‘화장실 훈련법’의 효과는 위대했다.




나는 인사도 버벅댈 정도로 영어를 못 했다.

남아공에서 산지 일 년이 지났는데도 그랬다.


새 학기를 맞아 기숙사로 돌아간 날이었다. 오랜만에 친구 얼굴을 본다는 생각에 학교 전체가 들떠 있었다. 다들 무거운 짐을 끌고 힘겹게 기숙사 계단을 오르다가도 마주 오는 친구와 힘찬 포옹을 주고받느라 바빴다.


“방학 잘 보냈어? (How was your holiday?)”


분위기에 힘입어 나도 친구에게 인사를 건넸다.


“잘 보냈어! 너는? (It was good! How was yours?)"


친구가 살갑게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성공이다.


“잘 보냈어. 넌? (Good, thanks. And you?)"


아뿔싸.

같은 걸 또 물어보다니. 습관처럼 '앤드 유'가 나오다니! 수치로 온몸이 얼어붙었다. 차라리 그대로 기숙사 계단을 퉁, 퉁 굴러떨어져 의식불명에 빠지고 싶었다.


친구와 나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고, 친구가 멋쩍게 웃으며 ‘괜찮다’는 말을 남기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

‘괜찮아.’ 내 실수를 이해한다는 말일텐데 그게 오히려 더 부끄러웠다.


그 후로도 비슷한 일을 몇 번이나 더 겪었다. 일 년이 되도록 그깟 인사말 하나 제대로 못 한다는 게 속상했다.


‘그깟 인사말’을 열심히 준비해서 그 덕을 톡톡히 본 적이 있었다. 중학교 삼학년, 반 친구들과 파리로 탐방을 떠났을 때 일이다. 출국일을 손꼽아 기다리며 한 학기 내내 공들여 계획을 세웠다. 그때 수집한 정보 중에, ‘파리 사람들은 관광객에게 냉정하다’는 후기와 ‘프랑스 사람들은 불어를 하면 무척 반가워하며 불어를 잘하는 줄 알고 신나게 말을 붙여온다’는 다소 과장된 증언이 여럿 있었다.


파리에서 갑자기 화장실 방향을 물어봐야 할 수도 있었으므로, 불어를 익혀 차가운 도시 사람 빠리지앵의 호의를 조금이라도 사보기로 했다. 회화는 자신이 없어서, '봉쥬르(안녕하세요)'와 '익스퀴제모아(실례합니다)', '빠흐동(죄송합니다)' 같이 한, 두 단어로 된 쉬운 표현만 골라 외웠다. 긴 문장은 딱 하나 외웠는데, ‘쥬 느 빠흘르 빠 프랑세. (저 불어 못해요)'였다.


불어로 ‘불어를 못 한다’고 하는 모순이 재미있어서 장난삼아 외운 거였는데, 현지에서 꽤 반응이 좋았다.

여담으로, 프랑스에 가게 된다면 ‘싸 바’, 이 두 음절을 꼭 챙겨 가시라고 하고 싶다. 어떤 가게에 들어가도 “봉쥬르! 싸바?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라고 하면 파리 시민의 흐뭇한 미소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봉쥬르’만 했을 때와 비교하면 뒤에 ‘싸 바’를 붙였을 뿐인데 급냉탕에서 뜨끈한 온천수로 옮겨 간 수준이다.


나도 ‘봉쥬르, 싸바?’를 십분 활용해 먹었는데, ‘싸바’를 들은 빠리 시민께서는 (봉쥬르만 한다면 볼 수 없었을) 이가 훤히 드러난 미소를 지으며 내 안부를 불어로 막 묻고, 이어 불어로 어디서 왔냐는 뜻인 것 같은 질문을 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곤란에 처한 십 대 소녀의 표정을 지은 뒤, 빠르게 “쥬 느 빠흘르 빠 프랑세. (저 불어 못해요)”를 읊었다. 파리 아저씨, 아줌마는 우리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웃음을 터뜨렸는데, 차가운 도시 사람 빠리지앵은 유머감각 만큼은 관대한 것 같았다. 준비해간 인사말 덕인지, 파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우려와는 다르게 화장실 방향마저도 친절하게 알려줬다.


‘그래. 인사말로 호감을 얻어야 대화도 이어가고 싶은 법이야!’ 파리에서 기억을 되새긴 끝에 깊은 깨달음을 얻은 나는 영어 인사말 맹훈에 돌입했다.


문제는 여럿이 쓰는 기숙사에 혼자 연습할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는 것이다. 친구들이 방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데 혼자 구석에서, “안녕. 잘 지냈니? 그러엄. 잘 지냈지. 고마워. 미안해. 안녕?”하고 중얼거렸다간 때이른 사회적 죽음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었다.


다행히 기숙사에서 나만의 공간을 찾을 수 있었다. 칸막이 화장실이었다. 반 평이 채 안되는 그 곳의 문이 닫히는 순간 나는 모든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화장실을 방문할 때마다 “하우아유?”, “암 굿”, “땡스 쏘 머치”, “쏘리”와 같은 인사말을 잇속으로 되뇌었다.


‘화장실 훈련법’의 효과는 위대했다. 인사말에 대한 공포가 두려움 수준으로 바뀌고, 두려움이 점점 작아지더니 나중에는 자신감으로,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른 뒤에는 편안함이 되었다. 인사말이 자연스러우니 영어를 잘하는 것 처럼 보였다. 그리고 내가 영어를 잘 한다고 여긴 친구들은 말을 더 많이 걸었다. 친구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주다 보니 어느새 돈독한 사이가 되어있었다. 고작 영어로 인사말을 잘하게 된 것 뿐이었는데 수확이 컸다.


졸업 후 한국에 돌아온 지 몇 년 뒤, 북촌을 걷다가 외국인 관광객과 부딪힌 일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쏴뤼”가 튀어나왔다. 외국인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발음 좋으시네요. (You have a good pronunciation)”라는 평을 남기고 일행과 함께 사라졌다. 낯선 이에게 그런 예기치 못한 칭찬을 들은 건 처음이라 얼떨떨하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간단한 인사말에도 심장이 벌렁거렸던 열일곱 살의 내가 생각났다. 기숙사 계단참에서 수치로 얼어붙곤 하던 그 때가.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게 그렇게 창피할 일이었나 싶었다. 칸막이 화장실에 앉아 숨죽여 영어를 연습했던 과거의 내게 늦은 감사의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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