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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RTh on view Jul 16. 2023

이를테면, 부산

그리고 부산의 공간들

아트부산 기간에는 부산 전역에서 아트 페어에 맞춰 한층 흥미로운 전시도 다수 개최됐다. 아트부산을 즐기지 못해 아쉬운 이들을 위해 한동안 계속 만나볼 수 있는 전시 공간 일부를 엄선해 소개한다. 


국제갤러리 부산 줄리안 오피 <OP.VR@Kukje/F1963.BUSAN>


국제갤러리 부산점 줄리안 오피 개인전  설치전경 (제공: 국제갤러리)


서울역 맞은편 서울스퀘어 미디어 파사드 위를 걷는 군중, 부산의 대표 복합문화공간으로 부상한 F1963의 하늘색 외벽 앞 스크린을 밤낮없이 경쾌한 걸음걸이로 가로지르는 여인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상형문자와 교통 표지판, 고대와 최첨단을 넘나드는 시대를 초월한 영감 너머로 이미지 독해에 천착해온 오피가 일상 속 예리한 관찰로 말미암아 재현해 온 인물들이 일상에 슬며시 역침투했다. 영국 출신의 현대미술가 줄리안 오피의 작품은 우리에게 제법 익숙하다. 그의 이름은 모르더라도 사람, 동물, 풍경, 건축물 등을 간결한 형태와 짙은 윤곽선으로 표현해 대체로 평평한 회화, 조각, 애니메이션에 옮겨 놓은 표상은 누구나 한번 보면 기억에 남을 정도로 단연 독보적이다. 고유한 조형 언어를 갖춘 그의 작품을 보면서, 조금은 빗겨 나가길 바랐던 바람이 맞아떨어진 것일까. 그에 대한 다분히 확고한 시선에 파동을 일으킨 전시가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렸다. 오피의 행보는 매번 그의 작품 속 인물의 윤곽선만큼이나 선명하고 유쾌했으나, 대체로 예상 가능했다. 갤러리가 2018년 8월 부산에 진출한 이래 처음으로 석천홀까지 활용하며 공개한 4D VR 작품을 경험하기 전까지 말이다. 


F1963 석천홀 줄리안 오피 개인전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아트부산 개최와 맞물려 지난 5월 3일 개막한 <OP.VR@Kukje/F1963.BUSAN>은 그간의 작품 연작을 한층 더 명민하게 진화시켰다. 조각은 보다 입체적으로 펼쳐지고, 한층 나아가 오피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직접 작품의 일부가 되도록 초대한다. 잠시나마 운동까지 되는, 일석이조인 작품에 오르는 모든 이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고 즐겁다. 


줄리안 오피는 도시를 방문해 이동하는 사람들을 관찰해 단순화된 윤곽선으로 그려낸 개인 혹은 군중의 걷거나 뛰는 모습 혹은 풍경을 촬영해 회화 및 조각으로 재해석해왔다. 이번 부산 전시에서는 작가가 2022년 여름에 부산 해운대와 센텀시티 산책로를 지나는 보행자들을 대상으로 삼아 새롭게 선보이는 신작도 포함되었다. 런던에서 코로나 봉쇄 기간을 겪으면서 빠르고 동적인 느낌의 작품을 만들고 싶던 오피는 2010년대 유행한 셔플 댄스 영상에서 착안해 엄청난 빠르기의 비트에 몸을 맡기고 춤추는 사람들을 담아냈다. 이번 전시는 회화, 조각, 모자이크, 영상, VR, 그리고 라이브 퍼포먼스 등의 다채로운 작품군을 선보이며 디지털 매체와 새로운 기술에 대한 작가의 지속적인 관심 및 작품세계를 총망라한다. 조각은 보다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증강현실(VR)이라는 신기술에 힘입어 대상을 다시금 입체화한 석천홀의 체험은 놓치지 말아야 할 백미다. 일상에서 비일상을 찾고 특별함을 발견해 온 오피의 습관에 동참해 보면 어떨까.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 독일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과 함께한 <홈 스토리즈>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 독일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과 함께한 <홈 스토리즈> 전시전경 (제공: 현대 모터스튜디오)


국제갤러리와 같은 F1963 단지 내 자리한 현대모터스튜디오 부산이 지난 4월 개관 2주년을 맞아 공개한 <홈 스토리즈(Home Stories)> 전시에서는 192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100여 년 간 진화한 주거 문화의 역사와 궤적을 살펴볼 수 있다.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과 파트너십을 맺은 이래 두 번째로 함께 진행한 전시는 기존 관습에서 벗어나 라이프스타일에 변화를 가져온 20개의 혁신적인 인테리어의 아이디어를 펼쳐 보여준다. 에토레 소트사스가 디자인한 책장을 비롯해, 베르너 팬톤, 핀율, 루드비히 미스 판 데어 로에 등 디자인 역사에 획을 그은 인물의 주요 디자인은 물론, 지금 보아도 모던한 1920년대 프랭크푸르트 주방, 앤디 워홀의 실버 팩토리 작업공간 관련 자료, 이케아(IKEA)의 옛 아카이브 카탈로그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미래 자율주행 시대를 대비해 전기차 비전을 제시하는 <아이오닉 콘셉트카 ‘세븐(SEVEN)’>도 함께 전시해, 이동과 주거 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데, 주거 환경의 변화에 새로운 이정표를 던지고자 한 시도가 돋보인다. 자연의 움직임을 전기 에너지와 빛의 움직임으로 재현한 디자인 듀오 ‘스튜디오 스와인’의 신작 <흐르는 들판 아래>로 마무리되는 전시는 인류를 위한 진보(Progress for Humanity)’라는 비전 아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디자인을 주제로 소통해 온 브랜드의 다음 행보를 기대하게끔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오초량 <오! 분더카머(O! Wunderkammer)>   


오초량 <오! 분더카머> 전시전경 (사진: 황다나)


부산역 지척에 자리한 초량동 일식가옥은 등록문화재 제349호다. 등록문화재라 함은 기존 지정문화재와 달리, 근대 이후 제작 형성된 유산 중 보존과 활용 조치가 필요한 것을 등록한 것인데, 2001년에 비로소 시행되었다. 도시개발의 역사와 난관을 반추하듯 고층 아파트 단지가 삼면을 둘러싸고 있다. 1925년에 한 일본 사업가에 의해 세워져 격변의 전환기를 겪어온 가옥을 지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쓰였을지 가늠해 보기란 결코 어렵지 않다.


고층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여 있는 입구에 다다르면 이 공간을 보존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숨어있을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사진: 황다나)


시간의 흐름마저 잠시 멈춰 쉬어 가도록 하는 초량동 가옥은 2023년 5월, 복합문화공간 오초량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되었다. 16-17세기 유럽 지식인들이 진귀한 사물을 수집하고 진열하던 공간에서 비롯된 오! 분더카머(O! Wunderkammer) 재개관전으로 선보여졌다. 한 세기를 훌쩍 넘긴 가옥에 샤를로트 페리앙, 조지 나카시마, 한스 웨그너, 피에르 폴랑 등 대가가 디자인한 진귀한 20세기 빈티지 가구가 한국 동시대 창작 공예가들의 작품과 함께 전시된다. 해방 이후 한국인의 손길로 잘 보존된 이 목조가옥의 정갈한 마룻바닥, 유리창과 창살, 기와와 어우러져 이 아름다운 풀밭의 길목(초량의 뜻)에 호기심 어린 시선이 오래도록 머무르게 한다.


오초량 오! 분더카머 전시 관람 후 즐기는 차 한잔의 시간 (사진: 황다나)


숨은 공간 구석구석까지 찬찬히 전시를 둘러보고 나면, 작은 바구니 하나가 기다리고 있다. 헌 책과 차(茶) 한잔의 여유와 정원의 사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또 다른 경이로운 방이다. 이곳에서의 기억을 마음 그릇에 담고 가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한지에 인쇄된 전시장 공간 지도에 정원의 도토리나무, 모란, 배롱나무에 이르기까지 나무 이름까지 정성스레 기입해 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오초량은 향후 봄과 가을에 각각 새로운 전시를 기획하며 연 2회 기획전을 운영할 계획이다. 


부산시립미술관 어린이갤러리 <많은 사람들(Lots of People)> 


부산시립미술관 어린이갤러리 <김홍석: 많은 사람들> 전시전경 (제공: 부산시립미술관)


미술관은 늘상 관람객과 소통하고자 한다. 이 쉽지 않은 과제를 한 미술가와 함께 현명하게 풀어낸 전시가 열리고 있다. 부산시립미술관 지하 1층 어린이갤러리에서 김홍석 작가가 마련하고 관람객 협업으로 비로소 완성되는 참여형 전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김홍석 작가의 신작 12점 관람 외에도 어린이와 함께 온 가족단위의 관람객에게 스스로 작품을 제작하고 제목을 짓고 전시하는 기회를 제안한다.


김홍석 작가와 관람객의 협업으로 완성되는 참여형 전시는 보는 이로 하여금 일반적인 선입견, 개념을 앞세우지 않고 미술을 새로운 각도에서 일상적인 주제를 볼 수 있도록 초대한다. 경직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미술 형태에서 벗어나 스티로폼이라는 가볍고 파손되기 쉬우며 보존이 영구적이지 못한 재료로 작품을 직접 만드는 워크숍에 참여해 볼 수도 있다. 참여한 이들의 작품을 별도 공간에 “상명대학교 소속 김홍석 씨”가 만든 스티로폼 작품과 함께 전시한다. 부산시립미술관 어린이갤러리는 지하층에 자리한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자칫 놓치기 일쑤다. 하지만 만약 부산을 갈 계획이라면 놓치지 않고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날이 갈수록 매력이 넘치는 도시로 거듭나는 부산. 매일 마주하는 일상이라는 여행지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다면 부산행을 택해보자.


ertm 이알티엠 2023년 7/8월호 창간호 기고를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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