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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RTh on view Jul 16. 2023

이를테면, 부산

아트부산 2023 

황금연휴가 맞물린 지난 5월 첫 주, 전국에 때아닌 호우주의보가 내려졌다. 강풍과 폭우는 부산 해안을 어김없이 강타했지만 도시에 군집한 국내외 미술애호가의 열정을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트부산 2023


아트부산 2023 전경 (제공: 아트부산)


5월 4일, 아트부산 2023 프리뷰 시작이 예정된 오후 2시가 채 되기 전, 벡스코(BEXCO) 전시장 입구에 몰려든 방문객들이 밀물처럼 안으로 밀려들었다. 지난 몇 년간 부산을 휴양과 예술을 결합시킨 문화도시로 성장시키는데 기여한 아트부산은 올해로 12년째를 맞이해 축구장 약 4배 면적에 달하는 공간에서,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됐다. 해외에서 부산을 찾은 34개 갤러리를 포함, 총 22개국 145개 국내외 유수 화랑의 부스들은 엄선된 작품을 앞세워 4일간의 여정에 임했다. 2023 에디션에서는 국제갤러리, 학고재, BB&M 등 일부 참여 갤러리의 경우, 대표작을 보여주는 ‘메인(Main)’ 섹션과 독창적인 시각 언어를 지닌 젊은 작가에 초점 맞춘 ‘퓨쳐(Future) 섹션을 한데 선보여 공간 제약을 받지 않은 구성과 촘촘한 기획으로 다양성을 불어넣고자 했다. 로버트 테리엔(Robert Therrien), 다니엘 뷔렌(Daniel Buren), 김종학을 비롯한 거장과 더불어, 박한샘, 장건율, 황원해 등 부산 지역 연고가 있는 청년작가, 인공지능(AI)과 관객의 뇌파가 공동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브레인 매핑(Brain Mapping)’에 이르는 다채로운 ‘커넥트(Connect)’ 특별 전시 프로그램 역시 전시장 곳곳을 메우며 한층 흥미를 더했다. 처음 도입된 인공지능(AI) 활용한 챗도슨트 프로그램도 화제였으나, 배움에 목마른 이들은 전문가가 전하는 도슨트 투어를 여전히 찾았다. 


갤러리현대 아트부산 2023 부스 전경 (제공: 갤러리현대)


갤러리현대는 한국미술의 과거와 현재, 나아가 세계 현대미술까지 아우르는 부스를 내놓았다. 오늘날 한국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김민정, 유근택, 신성희 등의 대표작부터 이우환과 도예가 박영숙의 협업한 자기 작업에 이르기까지 중견 및 신진 작가의 추상과 구상, 도자와 설치작이 두루 출품됐다. 영국 출신 작가 라이언 갠더(Ryan Gander)의 시간에 대한 시적 유희를 담아낸 작품, 마티스, 호크니 등 유명 예술가의 작품을 차용. 자신만의 방식으로 미술사를 유쾌하게 재해석하는 사이먼 후지와라의 서울 전시 미공개작, 케니 샤프의 조각 연작 등도 함께 전시했다. 아울러, 5월 26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첫 공개 후 오는 9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과 내년 1월 해머미술관으로 순회하는 《한국실험미술 1960-70년대》의 주요 참여 작가 이승택, 이건용, 이강소 작품이 소개되어 더욱 의미가 깊다. 


갤러리바톤에서 소개한 "미야지마 타츠오: 모든 것은 연결된다” 커넥트 특별전 전경 (사진: 황다나)


갤러리바톤은 특정 사조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채집한 이미지에 예술적 상상력을 가미해 온 작가들을 발굴하고 탐구하는 데 탁월하다. 이번 아트부산 2023에서는 배윤환, 리암 길릭, 허우중 등 국내외 현대미술작가의 작품을 전시한 갤러리 부스 외에도 최근 서울 공간에서 막을 내린 개인전의 주역 미야지마 타츠오를 내세워 특별전에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아트부산 한 켠에서는 인공지능이 관람객과의 소통을 시도하는가 하면, 디지털 시대의 상징 중 하나인 LED 숫자의 보편성에 주목해 시간의 개념, 생과 사를 관통하는 철학을 시각화한 미야지마 타츠오 작품은 끊임없이 점멸하고 변화하며 방문객과 조우한다. 5월 말 갤러리바톤 개인전을 앞둔 김보희 작가 작품도 페어장에 등장했다. 암흑에 가까운 검정 배경 속 꽃 그림 앞에서 마치 심연으로 빠진 듯 한참을 미동 없이 그저 바라만 보며, 필연적으로 피로감이 쌓일 수밖에 없는 아트 페어장에서 잠시 시간이 멈추는 묘미를 마주하기도 하는 것이다.


쥘 드 발랭쿠르, Reaching for the Light, 2022 © Jules de Balincourt Courtesy Thaddaeus Ropac gallery


2020년 아트부산 첫 진출 후, 이듬해 10월 서울 지점을 개관한 오스트리아의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는 국제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갤러리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아트부산 2023에서는 이불, 알렉스 카츠, 로버트 롱고, 데이비드 살레, 안토니 곰리 등 저명한 현대미술가들을 대표하는 갤러리다운 라인업을 제시했다. 고아한 색조합이 빛을 발한 쥘 드 발랭쿠르의 작품 외에도 올리버 비어(Oliver Beer)가 지속적으로 발전시켜가고 있는 <공명 회화(Resonance Painting)> 연작에 속하는 작품들이 비중 있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비어는 수평으로 뉘어진 캔버스 아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음파의 진동에 따라 물결치듯 연출된 목탄 혹은 안료들이 이동하고 흩뿌려지는 방식을 고안하고 제작 방식에 대한 연구를 이어 나간다. 작품에 대한 정보 없이는 결코 알 수 없는 이 예상치 못한 측면의 의식 과정에 대해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마주한 사람들이 그 작품을 만든 음악들을 떠올리기 바란다”고 덧붙인다. 


국제갤러리 아트부산 2023 부스 전경 (제공: 국제갤러리)


국내외 동시대미술의 주요 흐름을 이끌어온 국제갤러리는 아트부산 2023 에디션에 아니쉬 카푸어, 알렉산더 칼더, 우고 론디노네 등 해외 작가의 대표작을 출품했다. 루이스 부르주아와 엘름그림&드라그셋의 작품이 조우하도록 배치한 우아한 연출은 단연 돋보였다. 동시에 국내 대표 화랑답게 박서보, 하종현 화백의 단색화를 비롯해, 김용익, 안규철, 양혜규, 강서경 등 한국 대표 작가와 이희준, 박진아 외 젊은 작가의 작품을 다채롭게 전시했다. 올해 프리즈 서울 기간과 맞물려 국제갤러리 서울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는 최욱경의 작품 또한 소개됐다.


리안갤러리 아트부산 2023 부스 전경 (사진: 황다나)


이건용의 bodyscape 회화와 프랑스 기반으로 활동하는 윤희의 자연을 닮은 조각 여러 점을 함께 감각적으로 조화롭게 배치한 리안갤러리 부스, 백남준의 대작 ‘구-일렉트로닉 포인트’를 앞세운 학고재 부스 역시 오가는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전광영의 대작을 출품한 두손 갤러리, 평창동에서 추모전을 진행 중인 노은님 외에도 시오타 치하루, 심문섭의 작품을 내건 가나아트 부스 역시 눈길을 끌었다. 더페이지 갤러리의 경우, 필립 콜버트 단일 작가를 조명한 부스 외에도 벡스코 전시장을 벗어나 해운대 일대에서 작가긔 대형 랍스터 풍선 설치물을 공개했다. 


그 밖에도 독일 신진작가 세실 렘퍼트(Cécile Lempert) 솔로쇼로 참여한 이아 갤러리(IAH)와 또 다른 독일 신진작가 루카스 카이저(Lucas Kaiser)를 집중 조명한 디스위켄드룸 부스는 특색 있는 기획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아트부산을 통해 국내 첫 진출한 프랑스 바지우 갤러리는 동양의 서화전통 방식의 필묵으로 현대적인 작품을 창작했던 이응노 화백의 작품을 대거 공개했다. 구프람(Gufram)과 앤디 워홀 재단이 협업한 리미티드 에디션 인테리어 소품 혹은 소트사스 디자인 가구 등을 출품한 노발리스 아트 디자인(Novalis Art Design) 부스는 색다른 보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롯데아트페어 2023 부산 스피커 부스 설치전경 (제공: SPEEKER)


아트부산 기간과 맞물려 다양한 위성 전시와 아트페어, 오픈 스튜디오 등이 아트위크를 보다 풍성하게 만들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롯데아트페어 2023 부산’이 시그니엘부산에서 5월 4일부터 6일까지 사흘간 개최됐다. 순수 미술 갤러리들과 더불어, 신경균 도예가를 비롯한 공예 작가, 신미경 작가의 특별전 등 예술, 디자인, 공예를 아우르는 예술의 장이다. 시대의 라이프스타일, 패션 뷰티,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를 발굴해 함께 인큐베이팅하는 역할을 주도해 온 스피커(speeker)역시 이번 아트 페어에 참여해, 김영진, 신모래, 샤이니 키 x DHL 등의 작가를 소개했다. 


ertm 이알티엠 2023년 7/8월호 창간호 기고를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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