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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RTh on view Mar 31. 2024

나누고 기억하다

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

기증 2, 3, 4관과 달리 2022년 12월에 미리 개관한 1관은 기증의 의미를 돌이켜 보고 한국의 미를 전반적으로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사진: 황다나)


파리 루브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런던 대영박물관 등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는 박물관” 목록 상위권에 매년 이름을 올려온 국립중앙박물관. 정작 한국 젊은이들의 발길이 뜸하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 등 높은 관심을 받은 전시와 대중과 공감하는 디지털 실감 영상 콘텐츠로 박물관 문턱을 낮추자, 가족 단위와 젊은 세대의 방문이 이어졌다. 관람객의 발길이 잘 닿지 않았던 상설관의 변화도 한몫을 했다. 2021년, 국보 반가사유상 2점을 나란히 전시한 넓은 공간을 비움으로 채운 ‘사유의 방’이 큰 호평을 얻었고, 2002년 말 새롭게 선보인 ‘청자실’도 고려 비색청자의 아름다움을 알렸다. 2023년 처음으로 연간 관람객 400만 기록을 돌파해, 1945년 박물관 개관 이래 역대 최다 연간 관람객 방문으로 2005년 용산 이전 후 누적 관람객 수도 5,400만 명을 넘어섰다.


이홍근 기증의 청자 퇴화 연꽃 넝쿨무늬 주자,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2024년, ‘모두를 위한 박물관’에 한 발 더 다가가려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변화를 반기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희소식이 전해졌다. 19년 만에 새 단장을 거쳐 올 1월 재개관한 기증관으로, 2022년부터 약 2년에 걸쳐 공들인 개편 사업의 결과물이다. ‘나눔의 가치를 발견하는 공간’이란 문구를 앞세운 기증관은 다채롭고 풍성한 전시 콘텐츠로 상설전시관 2층에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번 기증관 재개관을 관통하는 핵심어는 '한국의 미학'이다. 흔히 박물관에서 접할 수 있는 역사 순서에 따라 분류된 시기별 유물 배치가 아닌, 제목이나 설명을 읽지 않고 지나치더라도 온전히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구성을 펼쳐 보인다. 


"자기 나름의 기호나 취미로 사들인 문화재일지라도 그 지닌 생명이 온 민족의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 최순우(1916-1984) 국립중앙박물관 제4대 관장 겸 미술사학자 


2022년 12월, 먼저 문을 연 1관이 ‘나눔’을 중심으로 한국의 미를 테마로 한 호기심의 방을 방불케 하는 아카이브 공간으로 꾸려졌다면, 이번에 공개한 기증 주제 전시 3관은 기증자의 사연과 뜻이 담긴 공간이다. ‘문화유산 지키기와 기증’ 주제관인 2관에서는 20세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혼란기에서도 문화재를 정성껏 지킨 이들의 노력을 살펴본다. 3관에서는 ‘기증 문화유산의 다채로운 세계’ 주제로 옛 생활문화를 담은 문방과 규방 공예품, 흙과 금속으로 빚은 문화유산, 서로 다른 미감을 지닌 다른 나라의 유물들이 시공간을 초월해 공존하고 어우러진다. 4관은 ‘전통미술의 재발견’을 앞세워 예술가의 안목으로 옛 물건, 고미술품에 밴 아름다움과 숨은 가치를 공유하고, 전통미술품에서 받은 영감을 창작 활동의 원천으로 삼은 현대 작가의 기증품을 소개한다. 


기증관에 전시된 손기정 선수 기증의 청동 투구,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기증’은 문화재나 유물 등을 소장하고 있던 개인이 이를 박물관에 소유권을 조건 없이 무상으로 양도하는 것을 뜻한다. 문화재와 유물이 담고 있는 고유한 역사는 이를 한평생 모아 온 수집가를 거쳐 박물관에 전시되며, 이러한 나눔에서 비롯된 기억들은 우리 모두와 공유된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 월계관을 썼던 손기정 선수가 기증한 청동 투구는 그런 의미에서 더욱 각별하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에서 만들어져 한국의 문화유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라는 어려운 시기에 민족의 자랑이자 기쁨이 된 손기정 선생의 값진 우승을 기념하며 우리나라의 보물로 지정되었다. 한국인으로서는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손기정 선수는 당시 마라톤의 유래를 기념한 청동 투구를 받았으나, 비싸고 귀한 기념품을 받으면 안 된다는 규칙 때문에 이를 수여받지 못하고 귀국했다. 그 후 청동 투구를 돌려받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 1986년 베를린 올림픽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맺어졌고, 이 투구가 “나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손기정 선생의 뜻으로 나라에 기증되어 오늘날 누구나 만나볼 수 있는 기억으로 거듭났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손창근 기증,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이번 기증관 재개관을 기념하여 2020년 코로나19 확산에도 연이은 예약 마감으로 화제가 되었던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손창근 기증)와 더불어, 일본에서 귀환한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윤동한 기증)를 5월 5일까지 한시적으로 전시한다. 올봄, 박물관 나들이를 계획한다면, 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을 필히 놓치지 말자.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상설전시관 2층

기간 2024.01.12 - 상설전시 (세한도 및 수월관음도 전시는 2024년 5월 5일까지) 


엘르 코리아 닷컴 #요즘전시 칼럼(2024.03.11 게재) 기고를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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