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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RTh on view May 03. 2024

한영수가 포착한 순수의 서울

기록을 넘어선 한영수의 순간

사진은 순간이다. 장면과 시퀀스로 이어지며 시간의 흐름에 관계를 버무려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영화에 비하면 사진은 정적이다. 한 장의 이미지에 시간이 멈춰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한국 사진 예술의 중요한 획을 그은 인물로 여겨지는 한영수(1933~1999)의 사진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느껴진다. 한국 최초의 리얼리즘 사진 연구단체 ‘신선회’의 창립 회원으로 거리로 나가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기 시작한 사진가는 시대상을 플롯처럼 펼쳐내며 사진 한 장에 시 한 편도, 단편 소설도 담아낸다.


서울 명동 Myeongdong, Seoul 1956-1963


한영수의 사진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선다. 특별하다는 흔한 말로는 채 형용하기 어려운 매력이 절로 배어난다. 1950~60년대의 곤궁했던 서울, 동족 전쟁이 할퀴고 간 상흔과 폐허 속에서도 우아함을 간직한 이들을 프레임 속에 포착한 거장의 사진전이 라니서울(RANEE SEOUL)에서 열리고 있다. 서울 유엔빌리지 내 계절마다 서로 다른 각도의 볕이 드리우는 고즈넉한 양옥에 자리한 라니서울은 사진과 추상을 넘나드는 기획 전시로, 도보로는 선뜻 다다르기 쉽지 않은 깊숙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입소문 나며 방문객이 서서히 몰리고 있다. 고요하지만 확실한 색깔을 지닌 이 공간에서는 벽난로,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소파와 데스크, 고운 빛깔의 명주실로 수놓은 병풍, 서가 등 일상 오브제가 곳곳을 채운 한영수 사진가의 작품과 함께 안온하게 어우러진다.


서울 남대문 Namdaemun, Seoul 1956-1963


국내 1세대 광고 사진가로도 활동했던 작가의 “노력, 아집과 대단한 열정”은 1956년에서 1963년 사이 전쟁 후 재건이 이뤄지는 힘든 시기에도 멋과 낭만이 넘치는 서울의 활기를 그려낸다. 피사체에 요구되는 그 어떤 정교한 설정도 없이, 우연이 빚어낸 절묘하면서도 극적인 서사가 생동감 넘치게 전개된다. 다양한 상황에 부닥친 인물의 몸짓, 표정, 감정은 대담한 구도 안에서 때로는 아련한 향수를 자아내기도 하고,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이들에게도 가난이 채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의 당당하고도 순수한 미적 공감, 초현실적인 경험마저 선사한다.


전시 전경, 한영수 사진전  (제공: 라니서울)


오늘날 보아도 세련된 감각과 시각으로 여전히 강렬한 감동을 전달하는 한영수의 사진 세계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 또한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2014년, 사진 분야에서 가장 인정받는 세계적인 아를 포토 페스티벌(Rencontres d’Arles photo festival)에 참가하고, 2017년에는 뉴욕국제사진센터(ICP, 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에서는 한국 사진작가로는 최초 개인전 개최 및 작품 소장 기록의 주인공이 되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한영수의 사진은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구도, 절묘한 타이밍, 사회적 환경에 대한 세심한 관심을 담은 그의 작품들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데이비드 세이모어(David Seymour), 마크 리부(Marc Riboud)와 같은 초기 매그넘 작가들의 작품들을 연상시킨다. 마치 오래전 잃어버린 한국인 사촌의 작품을 보여주는 듯하다." - ICP(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New York, 2017


전시 전경, 한영수 사진전 (제공: 라니서울)


현실의 진실한 모습을 기록한 한국의 대표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자신이 살아가던 도시, 공간 속에서 어떻게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범상치 않은 시선으로 세상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4월 27일까지 계속된다. 현장에 비치된 카탈로그를 통해 만나는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를 수 있으니, 여유를 두고 방문하길 권한다.


장소 라니서울 RANEE SEOUL (서울시 용산구 유엔빌리지길 224 1층)

기간 2024.03.15 - 2024.04.27


엘르 코리아 닷컴 #요즘전시 칼럼(2024.04.15 게재) 기고를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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