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울의 움직이는 성 배경, (ft. 브라이자흐) 2023.06.17
사실 이번 여행의 메인은 아트 바젤 방문이었다. 하지만 아트 바젤을 굳이 이틀이나 가고 싶진 않았고, 하루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풀로 하루 일정이 비었고, 뭘 할까 고민하다가 근교 당일치기- 다시금 국경을 넘어보기로 했다.
내가 묵었던 프라이부르크는 프랑스 그리고 스위스 국경과 아주 가깝다. 그렇기에 기차나 버스를 이용하면 쉽게 1시간 내에 국경을 마음껏 넘나들 수 있다. 그런 이점과 49유로 티켓을 이용해 스위스를 다녀왔고, 오늘은 다시금 그 이점을 이용해 프랑스로 국경을 넘기로-
콜마르까지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바젤로 가서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 법도 있고, 버스를 타는 법도 있고- 다양한 방법 중 나는 49유로 티켓의 장점과 막간을 이용해 독일의 소도시를 한군데 들러보기 위해 S 반 (지상철)과 버스 조합으로 콜마르를 가기로 했다.
내가 묶은 프라이부르크에서 근교 도시인 브라이자흐 Breisach까지는 S 반을 이용해 한 번에 이동이 가능하다. 독일 내 기차이므로 이 역시 도이칠란트 티켓 소지자에게는 무료!
나는 프라이부르크 중앙역이 아닌 숙소에서 조금 더 가까운 Freiburg-Klinikum 역에서 S 반을 탑승했는데 탑승 방향이 확실치 않아 망설이다가 기차올 시간이 다 되어가서 마침 플랫폼에 앉아계신 독일 할아버지께 여쭤보았다.
처음에는 짧은 독일어로 더듬더듬 여쭤봤는데, 뭔가 설명이 길어지기 시작;;; 그래서 영어 하실 줄 아시냐고 했더니 다행히 유창한 영어로 설명을 해주셨다.
할아버지 말씀, 내가 타야 하는 S1과 S11이 같이 붙어서 정거장으로 들어오다가 어느 정거장에서 기차가 둘로 나눠지며 S1은 브라이자흐로 S11은 다른 방향으로 간다는 것. 그래서 탈 때 기차에 써진 번호를 잘 보고 타라고 하셨다.
때마침 기차가 들어왔고! 할아버지 말씀대로 기차 두 대가 붙어오는데 붙어있는 번호가 달랐다.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S1 번호가 적힌 기차를 탔다. 영국도 종종 이런 경우가 있어서 기차가 갈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는 익숙하나, 독일에서도 이런 일이 있는 줄은 몰랐다. 여쭤보지 않고 탔으면 그대로 다른데 갔을 수도;;;
아침이라 그런지 제법 한가한 기차를 타고 20여 분 정도 달리자 금세 브라이자흐에 도착!
우선 내가 타야 할 버스 정류장과 버스 시간을 다시 한번 체크! 버스 정류장이 기차역 바로 앞에서 있어서 찾기가 아주 쉬웠다. 아직까지는 독일어권이라 그나마 짧은 독일어로 어느 정도 상황 파악이 가능했던...
버스가 오기까지 1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 잠시 브라이자흐를 둘러보기로 했다. 구글맵을 보니 기차역에서 시내까지 걸어서 10-15분 정도.
아직 나름 이른 주말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고 한산했다. 그나마 문연 가게도 많지 않고- 그나마 메인 광장으로 가자 광장 주변으로 카페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고, 정신도 차릴 겸 간단히 에스프레소 한잔 마시고 천천히 동네를 둘러보았다.
작고 아담한 동네. 주요 관광지를 들어가서 자세하게 관광할 계획이 아닌 이상은 1시간 정도면 천천히 산책하며 도시를 둘러보기에 충분했다. 작지만 아담하고 왠지 고즈넉한 분위기가 느껴졌던 곳.
다시 버스 정류장 쪽으로 돌아오니 그새 꽤 많은 사람들이 콜마르행 버스를 타기 위해 모였다. 기다리고 있는 한 무리에게 콜마르로 가는 버스가 맞는지 재차 확인한 후, 조금 기다리자 버스 도착!
버스 표는 운전기사님께 직접 구매가 가능하다고 들어서 바로 현장 구매. 6-8유로 정도라고 듣고 갔는데 가격은 4유로. 아주 저렴하다.
브라이자흐부터 콜마르까지는 1시간 조금 안되게 걸린다. (시간과 요일에 따라 중간노선이 약간 달라 빠를 때는 36분 정도, 조금 더 중간노선이 많을 때는 더 걸리는 듯하다)
뒷문이 있는 좌석에 앉아서 답답하지 않게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었다. 음악을 들으며 창밖 풍경을 구경하자 어느새 풍경들이 바뀌고, 표지판에 적힌 언어들이 자연스레 프랑스어로 바뀌기 시작했다.
콜마르에 도착. 콜마르는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 배경지로도 유명하다. 도시 자체가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워 관광객이 늘 즐비한 도시. 콜마르는 알자스라는 프랑스 지방에 포함된 도시 중 하나인데, 작년 스트라스부르크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알자스 지역 방문이 되었다.
콜마르 버스 정류장 역시 기차역 바로 앞에 있어 기억하기가 아주 쉬웠다. 버스에서 내려 구글맵으로 가장 먼저 쿠베르시장 Marché Couvert Colmar을 찍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마침 점심시간에 가까운 시간이었던지라 일단 먹고 움직이기로! 기차역에서 시장까지는 걸어서 대략 15분. 이제 프랑스로 넘어왔으니 도이칠란트 티켓은 잠시 안녕.
번화가가 나오기까진 골목골목 너무 조용해서 정말 이 도시가 관광도시가 맞는 건가 싶었는데...
번화가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사람이 그득그득. 바젤도 사람이 많다 느꼈지만 그래도 아트 바젤을 제외하고는 도시 자체가 붐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는데, 콜마르- 사람 정말 많다. 주말인데다가 날씨까지 좋아 더 많은 듯.
그리고 도착한 쿠베르시장. 쿠베르 시장은 인도어 마켓으로 식재료뿐만 아니라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레스토랑 등도 함께 있는 곳이다.
(* 참고로 중간중간 다소 아날로그 감성의 느낌이 나는 사진들은 토이카메라로 촬영한 것들이다)
시장은 바로 강 옆에 위치하고 있어 관광객이 엄청났다. 일단 내부로 들어가자 시장은 생각보다 아담. 어차피 식재료를 살 계획은 없기에 한 바퀴 휙- 돌고, 어딜 갈까 하다가 날씨가 좋아서 밖에 앉을 수 있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내가 간 레스토랑은 실내와 실외 모두 좌석이 있는 곳이었는데, 강 옆인데다가 날이 좋아 그런지 실외는 만석. 그래도 나 혼자 한 명이니 조금 기다리면 자리가 곧 날 것 같다고 해서 잠시 기다리는 와중에 운 좋게 바로 강가 옆 테이블이 비어 앉을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 레스토랑의 메뉴는 아주 단촐. 갖가지 다른 토핑이 얹어진 플람쿠헨 밖에 없었다. 플람쿠헨은 독일에서도 많이 먹는 일종의 피자 같은 음식인데 도우가 매우 얇고 바삭한 것이 특징. 독일에서 살고 있는 나는 뭔가 매우 프랑스스러운 음식을 먹고 싶었나, 결국 강가 뷰를 택하고 음식을 포기하였다.
하지만 앉았던 자리는 정말 좋았던! 강가라 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이고, 물이 맑아 물고기도 보이고, 가장 히트는 음식을 한참 먹고 있는데 백조 가족 무리가 옆으로 와 한참을 머무르다가 갔다. 마치 사람들에게 음식이라도 달라고 하는 것처럼 ㅎㅎ
사실 콜마르는 풍경이 아름다운 도시다 보니 딱히 어딜 딱 집어 구경을 한다거나 방문을 한다거나 그런 계획은 애초에 세우질 않았다. 그 말인즉슨 이때부터 무작정 발길을 따라 도시를 거닐기 시작했다. 어차피 그게 오늘 당일치기의 목적이기도 했으니까-
강가 옆이라 그런지 리틀 베니스라 불리는 곳도 있고, 도시 자체가 방금 그림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정말 아름다웠다. 지난번 스트라스부르크 갔을 때도 느낀 거지만, 알자스 지방- 정말 매력이 넘친다. 이런 곳에 한동안 살아도 좋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날이 너무 더웠다. 이날 베를린은 비가 와서 무척 시원했다던데- 30도가 넘는 무더위에 걷다가 지쳤는데, 마침 교회 앞에 큰 평상(!) 들이 즐비한 휴식 공간이 있어 잠시 쉬어갔다. 나뿐 아니라 관광객으로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낮잠을 자거나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그늘에 앉아있으니 바람까지 살랑살랑 불고, 제법 시원해졌다.
그래도 콜마르까지 왔으니, 유명한 그곳(!)은 가야겠다며 향한 곳.
그렇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바로 그곳!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있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유독 많았던 ㅎㅎ 정작 나는 그 애니메이션은 보지 않았지만, 같은 감독의 다른 애니메이션에서도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감성이 느껴지는 장소였다.
콜마르는 자유의 만든 분의 출생지라 한다. 그래서 바닥에 보면 종종 콜마르 자유의 여신상 표시를 볼 수가 있는데, 다른 블로그들을 보니 콜마르에도 자유의 여신상을 작게나마 만든 모양인데- 사진을 보아하니 도로 한가운데 떡- 있는 느낌이라 굳이 보러 갈 정도까진 아닌 것 같아 스킵! 자유의 여신상은 뉴욕 가서 보는 걸로 ㅎㅎ
점점 뜨거워지는 태양에 마침 목도 마르던 와중에 발견한 작은 와인 가게. 처음에는 그냥 스쳐가다가 웬 노부부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 망설이다가 따라 들어가 보았다. 가게 안에는 판매하는 와인과 예술작업들이 전시되어 있고, 뒤 뜰로 나가니 작은 공간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와인을 마시며 좋은 날씨를 즐기고 있었다. 재미있었던 사실은, 그 와인바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독일 사람들이었다는 것 (푸핫)
목이 너무 말라서 화이트 와인 중 청량감이 느껴지는 것으로 부탁하고- 왠지 와인바 분위기가가 좋아 구글맵에 표시를 해두려고 찾아봤는데. 평점이 테러 수준. 왠지 불길한 마음으로 리뷰를 읽어보자 대부분 "그들의 친절함에 속지 마라. 가격이 바가지가 너무 심하다."의 내용이었다. 한 리뷰는 심지어 "마치 영화 스위니 토드에 나오는 사기꾼 커플 같았다"라고... 왠지 불안한 마음에 이미 주문한 와인이니 어쩔 수 없다. 즐기자 하며 마셨는데, 와인 맛이 꽤 훌륭했다. 분위기도 좋았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와인을 즐기는 듯한 분위기.
한참을 있다가 계산을 하러 나왔다. 내 와인 한잔 가격은 6유로였는지 8유로였는지 가물가물하다. 생각보다 그렇게 비싸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와인을 잘은 모르지만, 요즘 한잠 내추럴 와인을 알아가는 중이라- 레스토랑의 기본으로 깔려있는 하우스 와인이 아닌 이상, 품질이 좋은 와인이나 내추럴 와인은 한 잔에 10유로 가까이하는 경우가 많아, 저렴하진 않지만 아주 바가지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나오다가 마침 와인을 추천해진 주인아저씨가 입구에 계시길래,
"궁금해서 그러는데 여기 손님 중에 독일 사람이 왜 이리 많아?"
라고 물었는데 그때부터 아저씨와의 엄청난 대화가 시작되었다. 주인장 둘(아마도 커플인듯하다), 여자분은 오스트리아 분, 남자분은 조지아 분이신데 두 분 다 작업을 하신단다. 남자분은 페인팅을 하시고 여자분이 독일어를 쓰고, 남자분도 독일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탓에 본인들을 알고 통해 오는 독일이 많은 편이라고. 베를린에 산다고 하자 베를린에 있는 레스토랑도 추천해 주시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주로 내추럴 와인을 취급하는 곳인듯했다.
장작 30분이 넘는 대화를 마무리하는데 아저씨의 마지막 추천은 조지아산 오렌지 와인을 마셔보라고 추천. 그러면서 오렌지 와인이 무엇인지도 간단히 설명 ㅎㅎ (결국 나중에 베를린 돌아와서 오렌지 와인 마셔봤는데 나쁘지 않았음!)
내가 감히 짐작하건대, 아마 관광객분들이 가볍게 한 잔에 5-7유로 정도 되는 보통의 하우스 와인을 기대하고 왔다가, 작은 와인 3잔에 30유로에 육박하는 가격을 보고 크게 놀랐던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나도 와인 전문가는 아니기에 그 집의 와인이 정말 품질이 좋은 것인지, 제대로 된 내추럴 와인을 취급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와인의 맛이 나쁘지 않았고, 내 와인보다 조금 더 좋은 품질의 와인을 골랐다면 한 잔에 어렵지 않게 10유로 가까이 나올 수도 있었을 것. 애초에 다른 기대감이 빚어낸 해프닝인지, 아니면 정말 사기꾼(?) 들인지는 물론 와인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ㅎㅎ
와인 한 잔 마시고 살짝 기분 좋게 마지막으로 도시를 둘러보고, 이제 버스를 타러 슬슬 기차역 쪽으로 이동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 기차역과 시내 사이에 공원이 있던 것이 생각나 잠시 들어보기로 했다.
날이 너무 더워 도저히 땡볕에는 앉을 수가 없었는데, 마침 할머니 한 분이 앉은 그늘진 벤치 한 부분이 비어 앉아도 되냐고 여쭤보고 그곳에 할머니와 할머니 강아지와 한참을 앉아있었다. 나중에 할머니 친구분도 오셔서 두 분이 불어로 엄청난 대화를 나누셨는데 안타깝게도 1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ㅎㅎ
공원에서 사람 구경, 마침 공연하시는 분들도 있어서 음악도 듣고- 한참 그렇게 멍을 때리다가 콜마르 역으로 돌아갔다.
문제는 버스가 생각보다 조금 늦게 도착하여 브라이자흐 도착시간이 늦어졌는데, 그 S 반을 놓치면 다음 열차는 무려 1시간 뒤에 온다는... 최악의 경우 브라이자흐에서 저녁을 먹자 생각했는데, 버스가 브라이자흐에 도착하고 내가 타야 하는 S 반이 이미 플랫폼이 와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전력 질주! 했는데, 역시 작은 도시라 그런지 S 반이 버스 승객들이 모두 탈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다. (나 왜 뛰었니 ㅎㅎ)
그렇게 문제없이 잘 프라이부르크로 컴백하고, 나의 당일치기도 마무리가 되었다.
아침에도 연어 베이글을 먹고 나갔는데, 점심까지 플람쿠헨을 먹으니 뭔가 1% 부족한 감이 있어 숙소 앞 마트에서 좀 칼칼한 국물 종류를 찾던 중 뜻밖에 한국 라면 발견!
전혀 처음 보는 브랜드에다가 가격도 저렴한 편이 아닌지라 반신반의하며 구입했는데, 한국 라면과 맛이 똑같다 ㅎㅎ 굳이 다시 사 먹을 것 같진 않지만 하루 종일 땡볕에 걸어다니 피곤+노곤해진 몸을 칼칼한 국물로 달래주니 투자 가치가 있었던 저녁이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