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해외살이 10+년차)
한국을 떠나 해외살이를 시작한 지 어언 10+년차에 접어들고 있다.
나의 첫 해외 사이였던 영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독일로- 그리고 독일에서 영국에서 지낸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지난 10+년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나도, 사회도, 세상도-
그중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를 체감하는 것은 외국 사람들의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인식 변화가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동아시아의 작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도, 어디에 붙어있는 나라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요즘은 어딜 가든 너무나 쉽게 한국 관련 문화와 물건들을 해외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지난 10년간의 변화, 지금, 그리고 과연 10년 뒤-
해외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바라본 외국에서의 '한국'에 대한 인식에 대한 나의 소소한 의견을 적어볼까 한다.
한국에서는 굳이 누가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으면 '남한'이라고 대답한 기억이 없다. 보통 한국, 혹은 대한민국.
내가 한국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거나 한국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굳이 '남한'이라 부르지 않고, '한국'이라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굳이 한국에 사는 한국 사람에게 '너 어느 나라에서 왔니?'라고 묻는 경우도 없었다.
영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이러한 나의 너무나 당연했던 'Korea'라는 대답에 'South'가 붙기 시작했다.
물론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지금도 농담(?) 삼아 굳이 북한에서 왔는지, 남한에서 왔는지 묻는 사람들이 간혹 있기는 하다만...
10여년전, 영국을 이제 막 갔을 때만 해도 'I'm from Korea'라고 하면 의례 North인 지 South인 지 묻곤 했다. 물론 외국에서도 북한 사람을 일상에서 만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님으로, 대부분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면 자연스레 남한이라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묻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특히 런던에는 - 만나본 적은 없지만 - 꽤 많은 북한 분들이 거주한다고 들었는데,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때만 해도 유럽에서 언론이나 미디어를 통해 유명한 Korea는 South가 아닌 North였기에-
그래도 이 정도는 양반이다.
대부분의 유럽 친구들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첫 번째, 정확히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북한으로 뉴스에서 한국이라는 분단국가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히 지리적으로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모른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반도인지, 섬나라인지, 대륙에 있는 나라인지-
기본적으로 관심이 없으니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유럽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인지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것.
두 번째, 한국에서 한국어라는 언어가 있고 사용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았다.
심지어 어떤 친구들은 나에게 일본 혹은 중국과 같은 언어를 쓰는지 묻는 사람도 있었다.
아니면 유럽 언어들 -예를 들어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가 매우 유사한 것처럼-처럼 가까운 나라들이 어느 정도 본인 나라의 언어를 각자 써도 의사소통이 되는지 묻기도 했다.
제일 황당한 건 비교적 최근에도 어떤 친구 (심지어 자기도 아시아 출신임)가 중국어를 보여주면 나에게 '너네는 대체 어떻게 이렇게 복잡한 글자를 문자로 보내느냐'라고 묻는 경우도 있었다. (맙소사...)
이건 사실 한국을 무시해서라기보다는, 그저 무관심 혹은 무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 번째, 한국 문화를 아예 모른다.
영국의 수도의 런던. 다양한 문화와 음식이 존재하는 그곳에도 한식당이나 한국 제품을 판매하는 식료품점들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런던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에는 그래도 싸이의 강남스타일로 인해 한국 혹은 한식에 대한 인식이 살짝 생기기 시작해서 (그래도 압도적으로 일식이 더 인기가 많았던...) 중심지에 한식당 (비비고 같은 대형 회사에서 차린 곳이나 원래 계시던 이민자분들 혹은 조선족분들이 운영하던 오래된 식당들)이 조금 있고, 식료품을 판매하는 한인마트는 1존에는 아주 작은- 그러나 매우 비쌌던- 곳 하나, 2존에는 그래도 한두 개, 본격적으로 장을 보거나 제대로 된 한식을 즐기려면 기차를 타고 30분 정도 떨어진 런던의 작은 한인타운이라 불리는 뉴 몰든 정도는 가주어야 제대로 된 쇼핑과 한식 즐기기가 가능했다.
새로운 문화나 음식에 대해 거부감이 없는 유럽 친구들은 종종 한식 레스토랑에 함께 가기도 했지만, 대부분 유럽식을 선호하거나 일식 레스토랑에 함께 가곤 했다.
한국 음식은 아무래도 일식에 비해 간이 세고, 맛이 더 다양하고 풍부해서 그런지 (개성이 강하다)- 그에 익숙하지 않은 유럽 친구들과 함께 한국 음식을 먹으러 가는 일은 드물었다.
되려 문화 교류(?)의 일환으로 서로의 집에 모여 한식이나 본인 나라 음식을 해먹거나 나누어 먹는 일이 종종 있었다.
유럽의 많고 많은 나라 중, 한국은 대부분 '유일한 분단국가' 혹은 '강남스타일'로 유명해진 나라라는 인식이 강했다.
삼성이나 현대, LG의 제품을 구입해 사용하고 있음에도, 그 브랜드들이 한국 브랜드들이라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물론 그때도 소수의 마니아(?)들은 있었으나, 모든 사람에게 한식이나 한국 문화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았었다.
지난 10년간, 정말 K 붐이 아닌 K 붐이 시작되었다.
뭐든 앞에 'K'붙는다.
K-pop, K-food, K-drama, K-beauty... (아마 너무도 많이 K-something....)
삼성과 LG의 합리적인 가격이면서도 성능이 좋은 가전제품/스마트폰, 현대의 자동차,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초석을 다지는 K-붐의 시발점이 되었다면-
BTS로 시작된 K-pop 그리고 이어진 한국 컨텐츠의 붐으로, 갑자기 한국 드라마와 한국 음식,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아주아주 높아졌다.
시작은 아마도 BTS?
사실 나는 처음에 BTS가 방탄소년단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RM (그 당시 랩몬스터) 이 문제적 남자라는 프로그램이 고정 출연진이라 방탄소년단이라는 그룹이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았으나, 그들의 노래도, 그들이 누군지도 잘 몰랐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내가 '한국 사람'임을 아는 지인들 혹은 그렇게 내가 어디서 왔는지 소개했을 때, 나에게 부쩍 BTS에 대해 묻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때마다 나는 (그렇게 유명한지 모르고) 그저 한국 보이그룹 중 하나겠거니 하며, 나는 요즘 아이돌들은 잘 몰라-라고 한동안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BTS가 점점 해외에서 인기를 얻고, 빌보드에 올라가고, 한국 미디어에 점점 더 역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그들이 방탄소년단이고, 해외에서 엄청난 팬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BTS 이전 많은 가수들이 해외에서 인기를 얻고, 활동을 해왔지만, (그리고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BTS도 있을 수 있었을 거라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다.) 대부분 아시아에서 인기가 많은 경우였고, 유럽 혹은 전 세계적으로 원 히트 원더가 아닌 팬덤을 일으키며 인기가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개인적으로는 BTS가 K-pop을 알리게 된 시작이었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국 문화를 자연스레 접하면서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된 게 아닌가 한다.
애플에 대적하는 삼성의 스마트폰?
물론 외국 (특히 미국)은 아직도 애플의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하지만 삼성의 스마트폰은 안드로이드 시장에서는 꽤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고, 애플과 굳이 대적할 만한 스마트폰 브랜드를 꼽는다면 당연 삼성이 아닐까 싶다.
내 주변 친구들도 삼성을 꽤 많이 사용한다. 특히 스마트폰과 가전제품은 일상생활에서 항상 사용하고, 함께하는 것들이기에 이러한 노출이 자연스레 한국이라는 나라를 조금은 더 가깝게 느껴지게 된 계기가 아닐까 한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도 (그리고 외국에서도) 과거에 일본 브랜드들이 많이 사용되던 시기가 있었다. 꽤 많은 파나소닉, 소니, 같은 일본 브랜드들이 일상 곳곳에서 사용되고, 그러면서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생각도 '동아시아에 있는 작은 섬나라'가 아닌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는 나라'로 자리 잡혀 간 게 아닌가 한다.
이러한 초석들이 다져짐으로써 점점 '한국'이라는 나라가 일상이 녹여들고, 자연스럽게 이 나라에 대해 알게 되는 흐름이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세대에 따른 갭이 있다.
나는 요즘 유럽 혹은 외국 친구들을 만날 때 그들의 나이대(?)를 대충 가늠할 수 있는 나름의 기준이 생겼다.
흔치 M이라 말하는 밀레니얼 시대 (특히 80년대생) 위로는 확실히 일본과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다.
어릴 때부터 보던 애니메이션과 망가, 아기자기한 일본의 문화, 그리고 담백하지만 맛있는 음식- 그런 추억들과 인식들을 간직하고 있는 세대에서는 '한국 문화'에 대한 인지가 높아지긴 했으나 아직 일본 문화를 선호하는 경우가 더 많다.
물론 모든 M 세대가 일본 문화를 한국 문화보다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만나본 사람들을 토대로 생각해 보면, 확실히 이전 세대에게는 일본 문화에 대한 선호와 추억이 있다.
Z세대는 다르다. M 세대의 일부 (90년대 중반부터) Z세대는 확실히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더 높다. 아무래도 요즘 K 문화가 트렌디하다 보니 그 흐름을 따라가는 것도 있지만, 지난 10년간 한국 문화가 외국에서 유명해지기 시작하며 그들의 10대 혹은 어린 시절에 한국 문화에 노출되며, 이전 세대가 같은 방식으로 일본 문화에 대한 향수가 있듯, 이들 중 한국 문화에 대한 기억과 추억이 있는 친구들이 많다.
어리면 어린 친구들을 만날수록, 나보다 더 한국 음악, 한국 드라마를 많이 듣고 보고, 나보다 한식을 더 자주 먹고 관심이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나도 만들어본 적 없는 김치를 직접 담가먹는 친구들도 꽤 많아졌다.
많이 바뀐 런던과 베를린
최근에 런던을 방문했었다. 그리고 아주 깜짝 놀랐다.
내 기억의 센트럴 런던은 한식당이나 한국에 관련된 비즈니스를 하는 곳이 많지 않았었는데-
제일 사람이 많은 번화가 큰 한인마트가 여러 개 입점되어 있어 한국 관련 물건들을 구입하는 것이 어렵지가 않았고, 그 외에 한식당이나, 분식을 파는 곳, 한국 관련 물건들을 판매하는 곳도 이전보다 아주 많이 보였다.
그 땅값 비싸기로 악명 높은 런던의 한복판에서 - 수요 즉 비즈니스 자체가 활성화되지 않아 이익이 없으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는 곳 - 한국에 관련된 다양한 비즈니스가 있고, 문화가 있는 것을 보고 참 신기하면서도 격세지감-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베를린도 마찬가지다. 물론 베를린에 왔을 때 이미 꽤 여러 개의 한식당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한국 분식, 한국식 치킨만을 판매하는 곳부터, 독일의 마트에서도 신라면 정도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들이 많아졌고, 제일 재미있는 건 K 뷰티가 붐을 일기 시작하면서 나름 과학적인 뷰티 브랜드들로 유명한 독일 시장에 꽤 많은 한국 제품들 (특히 마스크팩)이 수입되어 판매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유럽의 두 나라에서 10년 넘게 생활하며, 이전에 비해 K 붐은 그 어느 때보다 각광받고 있고, 사랑받고 있다.
처음 K 문화의 붐이 일기 시작했을 때, 일각에서는 강남스타일이 한때 인기가 확- 높았다가 잠잠해진 것처럼 이 흐름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몇 년에 걸쳐, K-pop으로 시작된 붐은 K-컨텐츠 (드라마, 영화 등)로, 그리고 K-푸드로, 지금은 K-뷰티까지 쭉- 그리고 길게 잘 이어져오고 있다.
주변에 예전보다 한국으로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혹은 다녀온 친구들도 많아졌다.
예전에는 아시아로 유럽에서 여행한다 하면 보통 휴양지 (태국이나 베트남) 같은 곳이나 일본 혹은 중국으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부쩍 한국 여행을 다녀오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물론 유럽에서 한국은 꽤 멀고, 특히 서울은 물가가 저렴한 곳이 아니다 보니 쉽게- 여행 계획을 세우거나 갈 수 있는 곳은 아직 아니다. (문턱이 높은 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가서 한국 문화와 음식을 즐기고 즐거운 여행 추억을 쌓고 온 친구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심지어 내가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인스타에 올리는 사진들을 보고 한국의 정취와 추억을 그리워하는 친구들도 꽤 많다. ㅎㅎ
이 K-붐, 과연 언제까지 갈까?
이건 아무도 모른다.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가 붐을 일으킨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자연스럽게 묻힐 수도, 더 큰 붐을 일으킬 수도- 이건 데이터로 정확한 예측이 가능한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인지도 높아지고 인기가 많아진 만큼, 한국 내에서의 좋지 못한 혹은 슬픈 뉴스들 (사건 사고나, 정치적인 일 등)이 더 이상 국내에서만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슈가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K 붐을 악용해 사기를 치거나, 턱없이 질이 낮은 가짜 상품이 나오기도 하고, 한국 여행 시 바가지를 쓰기도 하는 등-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이를 이용하거나 한국에서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어두운 이면들이 함께 드러나기도 하는 것 같다.
K-붐이 단기간에 끝난다기에는 현재 한국 음악이나 컨텐츠, 음식, 뷰티를 사랑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지금만큼의 수요는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이들은 아마도 살면서 어느 정도 K 문화에 대한 소비를 이어갈 것이라 생각된다. 예를 들어 지금은 일주일에 2-3번 한식을 먹으러 레스토랑을 찾지만, 그 붐이 잦아들면 지금만큼 자주는 아니어도 한 달에 2-3 정도는 혹은 외식을 할 때 한식이 하나의 옵션으로 고려되는 생활이 이어질 것이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한국 사람들의 높은 시민의식, 계속되는 고퀄리티의 컨텐츠들, 그리고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이 잘 지속된다면 K 문화는 그저 한때의 '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문화 혹은 그들의 일상에 계속 잔잔히 남아갈 것이다.
솔직히 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이라는 나라의 위상이 높아지고, 인식이 많아지고, 문화가 인기를 얻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다.
예전처럼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것보다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좋은 쪽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다만, 그만큼 개인으로써의 책임감도 늘어가는 것 같다.
내가 연예인이나 유명인처럼 영향력이 큰 사람은 아니지만- 나의 말 한마디, 혹은 그릇된 행동 하나가 '한국'이라는 나라에 부정적인 인식이나 기억을 갖게 만들지도 모르는 일이니 예전보다는 조금 더 경각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어쩌거나 저째거나, 우리나라의 많은 좋은 문화와 컨텐츠들이 더 알려지고, 지금처럼 더더욱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가끔 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국뽕에 차오르기도 하기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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