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인디 음악 차트에 대한 소고

이 세대의 만성적인 우울에 대하여

by 이젤

다른 글을 쓰면서 왜 이 시대의 음악들은 따뜻해도 쓸쓸한지, 기운이 없는건지, 음악 추천 알고리즘 때문인건지 고민하다가, 요즈음의 인디음악에 대한 단상.


대단한 인디 음악 애청자는 아니지만, 문민 정부가 들어선 직후 1990년대의 인디가 말하던 혼란이 분노와 반항, 자아찾기(팽창적)였다면 지금의 인디가 말하는 혼란은 분명 우울하고 수용적이다. 이 점은 인디 차트 [1][2] 에서도, 관련 논문들 [3][4][5] 에서도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 느낌이 순전히 나의 취향 변화 또는 추천 알고리즘 탓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1] 1990년대 락/인디락 차트
[2] 올해 인디 차트
[3] "1990년대 인디 씬을 상징하는 단어가 ‘반항’, ‘분노’였다면, 2000년대의 인디 씬은 ‘일상’, ‘서정’등의 단어들로 대표된다." 국내 인디음악의 전개 과정에 관한 연구(2012), p. 120.
[4] "1990년대 인디음악의 중요한 지점이었던 펑크는 뮤지션들의 각각 그 세부적인 특징은 서로 다르나 이들의 이러한 사회 반항적인 메시지와 가사는 동시대성을 담아내는데 성공하였고 이는 이들의 음악이 대중성을 확보하는데 기여하였다." 국내 인디음악의 전개 과정에 관한 연구(2012), p. 69.
[5] "1990년대 펑크는 IMF로 인하여 난폭하게 재구조화되는 사회의 현실 앞에서 설득력을 잃어가게 되었다." 한국 인디음악의 변화와 음악적 특징에 관한 연구(2010), p.14.


크라잉넛, Our Nation 1 앨범 커버, 1996. 12.


도대체 넌 뭐냐? / 크라잉넛, Our Nation 1, 1996. 12.
넌 이름을 바꾸지 새로운 것을 볼때마다 넌 마음을 바꾸지 그것에 따라서 움직이지
난 여기에 머문다 원하는 것은 많지만 난 여기 난 펑크락커!
내가 개지랄한다고 널 위해 하는건 아냐
넌 나에게 말하지 미래를 보라고 내게 비젼없다 말하라 생각하지만
더 좋은걸 위해 자길 바꾼다면 더 좋은건 뭐니? 분노한다


90년대 인디음악이 전복적이고 반항적이었던 것은 80년대 민중가요와 잔잔바리하게 남은 운동권 문화, 문민정부 이후 누리게 된 문화적 자유, 역대 최고의 경제 성장 직후 겪은 역대 최악의 금융위기(IMF)로 인한 분노와 혼란함의 영향이라고 본다. 2000년대 이후의 인디음악과의 차이는, 경제 팽창기를 거치며 느낀 불안감과 경제위기를 겪고난 뒤 닫힌 사회를 거치며 느끼는 불안감의 차이에서 온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성취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을 때'와, '노력해도 성취할 수 없을 것 같을 때'의 불안감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그 차이가 90년대 즈음의 인디음악과 현재의 인디음악을 가른 듯 하다.

10cm, 빛나는 서울의 밤 앨범 커버, 2021. 5. 13.


빛나는 서울의 밤 / 10cm, 빛나는 서울의 밤(싱글), 2021. 5.
이곳의 밤은 원래 항상 건조한가요 창밖엔 비가 오는데 나는 목이 말라요
나를 외롭게 만드는 저 불빛이 처음부터 싫었던 건 아니지만
밤새도록 빛나면 나는 잠들 수가 없는데
(중략)
하나둘씩 잠이 드나요 우리만 빼고 이 도시는
아니길 바라지만 역시 내일도 오늘처럼

* 사랑노래 빼고 차트 안에서 고르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다.


나는 그게 세대적 가난에서 온다고 보는데, 현재 막 성년에 들어선 세대는 부모 세대인 베이비부머 세대와 비교했을 때는 물론, 바로 직전의 세대와 비교하더라도 부의 축적이 29% 적은 상태로 독립을 시작한다고 한다. [5] [6] 현재 막 성인기에서 독립을 시작한 세대는 누구보다 풍족한 유년기를 보냈으나 아웃풋을 낼만한 토양은 분명히 적다. 가정 내에서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이런 삶을 버텼고 성취했는데 너는 왜 나약하냐, 왜 성취가 없느냐, 는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분명 많을 거다.

[5] "20대·30대에 해당하는 밀레니얼세대가 직면한 환경은 부모세대인 베이비부머와 큰 차이가 있는데, 경제성장률은 낮고 자산축적 기회가 적을 뿐만 아니라 근무기간은 짧고 고용안정성도 낮은 편" (보험연구원 KIRI 리포트, 2021. 7. 5., 9p)

[6] 이제 막 생애단계에서 가정을 꾸리는 시기에 들어선 1990년대생을 기준으로 보면, 이들은 1980년대생들과 비교하더라도 같은 나이대의 순자산 격차가 29% 낮다([1990년대생의 25~29세 평균 순자산 6,317만원]/[1980년대생의 25~29세 평균 순자산 8,897만원], 서울연구원 데이터인사이트리포트 제5호, 2021. 11. 2., 53p)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가정 내에서 그리고 여타의 조직 내에서 패러다임은 아직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경제 팽창의 시대를 지나온 베이비부머 세대는 확률적으로 자본을 많이 축적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그들의 향후 노후를 책임질 수 있는 수준인가에 대한 논의와는 별개 - 베이비부머 세대는 부모와 자식을 동시에 부양해야하는 낀 세대이기도 하다 - 로, 노동이 자본을 넘어설 수 있는 시대는 꽤나 지났으니까.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위에서 인용한 서울연구원 데이터인사이트리포트 제5호에 잘 소개되어 있다. 흥미로운 리포트이니 관심 있으면 읽어보시길 추천) 그렇기 때문에 말 잘 듣는 자식으로, 수용적인 부하로 남는 것이 분명히 경제적으로는 이득이다. 가시적으로 보이는 체급의 차이는, 반항이나 전복을 꿈꾸기보다는 체념하는게 쉽고 편할만한 수준을 넘어섰다.


그러니까, 이 세대의 만성적인 우울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미 체급이 높은 윗 세대에게 순종적으로 행동해서 공격당하지 않기 위한 수단. [7] 그렇지 않은 일부가 존재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우울은 무엇보다 전염성이 강하다.


[7] "영국의 정신가 의사 존 프라이스는 닭들을 세심하게 관찰하다가 우울증 증상의 중요한 기능을 발견했다. 싸움에서 져서 서열이 낮아진 닭들은 사교적인 활동에 적게 참여하고 순종적으로 행동해서 서열이 높은 닭들에게 또다시 공격당하지 않도록 한다." "프라이스는 사바나 원숭이 무리에서도 같은 현상을 목격했다. (중략) 으뜸 수컷 원숭이가 다른 수컷과의 싸움에서 패배하면 ... 몸을 둥글게 말고 앞뒤로 흔들거린다. 잘 나서지 않고 우울한 모습을 보이며 고환도 흐릿한 회색으로 변한다. 싸움에서 패배한 수컷 원숭이는 자신이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새로 으뜸이 된 수컷 원숭이의 공격을 피하는 것이다." / 이기적 감정(Good Reasons for Bad Feelings), Randolph M. Nesse, 2019, 187p

* 우울이나 조울, 병적 불안과 같은 증상도 유전자가 생존과 재생산을 위하여 진화한 결과라는 취지의 책이다. 한 문장으로 축약하면, "감정은 당신의 행복에는 관심이 없다." 읽고 나면 감정은 흘러가겠구나 하면서 약간 안심되면서도, 인간 개체를 종족 번식의 수단으로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자연에 대해 조금 화가 날 수 있다. 인식의 지평을 조금 넓힐 수 있는 책. 추천.


다음 세대는 또 어떻게 될까. 변화가 있다면 그 분기점은 뭐가 될까. 변화가 있다면 조금 더 희망적인 변화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변화의 문턱에서, 내가 변화를 느낄 수 있고 지켜볼 수 있을 만큼은 덜 꼰대스러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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