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스터 집사는 처음이라

자나깨나 햄찌 생각

by 현이

"지민아, 캐리어에 필요한 물건은 다 넣었니?"

"이제 챙길 거에요. 우리 초코송이한테 밥 좀 주고요."

" 우리 딸도 얼른 아침 먹자."

오랜만에 셋이서 아침을 먹었다. 늦잠꾸러기 아빠가 휴일에 일찍 일어난 건 정말 오랜만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빠의 잔소리를 들을 때도 전처럼 화가 나지는 않았다. 햄스터 집사 역할은 책임이지만 첫 해외여행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테니까. 잠시나마 집사도 휴가를 떠납니다. 유후. 두근대는 맘을 진정시키며 의자에 앉았다.


"지민이는 내일 햄스터 안고 비행기 타야겠다. 5일동안 햄스터 어떻게 하려고? 너가 키운다고 했으니 책임져야지."

"찬우네가 맡아주기로 했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다른 집을 알아보고 있어. 당신 혹시 맡길 데 있어?"

엄마는 아침부터 고성이 오가는 것을 차단하느라 이미 애쓰는 중이었다. 에휴. 아빠는 엄마의 노력을 알기는 할까. 그러면서 아빠 친구네 중에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누가 있었나 떠올려 보는 듯 했다. 조용히 생각에 잠긴 듯한 엄마의 눈빛. 하지만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눈치다.


카톡카톡

"오!! 기쁜 소식이야. 찬우네 할머니가 병원에 가셨는데 치료가 잘 되서 일찍 퇴원하셨다네. 햄스터 맡아줄 수 있다고 가져오라고 연락왔어."

엄마가 활짝 웃으며 기다리던 소식을 전하셨다. 야호. 이제 나도 여행 갈 수 있다.

"나이스!! 엄마 우리 찬우네 선물 많이 사 오자. 나 태국 못 갈 뻔 했어. 비행기에 누가 저 큰 케이지를 2개나 넣어주겠어요."

"다행이네. 그런데 봐 줄 사람 없으면 놔 두고 가야지 어쩌겠어. 그렇다고 여행을 취소할 순 없잖아."

"아빠! 초코송이도 생명이에요. 어떻게 5일동안 굶으라고 해요. 그건 동물학대라구요!"


" 아니 지민엄마! 뭘 이런 걸 사 오고 그래. 우리 애들도 햄스터 본다고 신나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덕분에 햄스터 며칠동안 키워보게 생겼어."

엄마와 나는 찬우형제와 찬우 엄마의 환대를 받으며 커다란 반투명 리빙박스 햄스터 케이지를 내려놓았다. 동네 김밥 맛집에서 사온 종류별 김밥도 백팩에서 꺼내 찬우 엄마에게 안겨주었다.

" 햄스터 집이 이렇게 크네. 먹이는 어떻게 주는 거야?"

찬우는 거대한 케이지 두 개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 작은 도자기 먹이통에 조금씩 담아주면 돼. 그리고 화장실 모래에서 햄스터가 볼일을 보고 더 고운 모래에서는 몸을 문지르면서 목욕을 해. 일종의 그루밍이지."

" 그럼 화장실 모래 갈아줘야겠네. 물면 어쩌지."

동생 찬서는 벌써 손가락을 내려다보면서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찬서는 겁쟁이구나. 헤헤. 모래는 누나가 다 갈아서 가져왔으니 먹이만 줘."

" 처음 보는 햄스터를 맡아주겠다고 하는데 겁쟁이라니. 내가 겁쟁이면 누나 햄스터 못 맡아주지."

" 찬서야 삐치지 마. 우리 초코랑 송이 잘 부탁해. 여기 갈색 골든 햄스터가 초코, 흰색 드워프 햄스터가 송이야."

찬우 형제는 케이지를 번갈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름을 외우고 있었다.

" 찬우 엄마 고마워요. 그럼 일주일 뒤에 찾으러 올게요."

" 초코, 송이 쳇바퀴 적당히 돌리고 있어. 시끄러우면 찬우형제가 밥 안 줄 수도 있어. 안녕히 계세요. "


딩동딩동

" 1주일동안 보느라 힘들었죠? 고마워요. 이거 코코넛 칩인데 적당히 달아서 맛있더라구요. "

" 지난 번에 김밥 줬으면서 뭘 또 사 왔어요. 담에 내가 밥 사야겠네."

" 조만간 햄스터 집사들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워봐야겠어요. 수고 많았어요. 갈게요."

" 감사합니다. 언제 한 번 저녁 같이 해요."

오늘은 아빠가 케이지 한 개를 드니 나는 빈 손으로 갈 수 있어 좋았다. 아빠 수영 잘한다고 칭찬 많이 했더니 여행내내 아빠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무려 케이지까지 들어주는 반전이 일어나 버렸다.

얼른 가서 우리 초코, 송이 목욕모래 깨끗이 갈아주고 나면 나도 침대에 뛰어들고 싶다.


태국수영장.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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