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열대] 레비스트로스
성경의 다니엘서에 의하면 바빌론시대를 황금시대라 규정하고 이후로 인류는 계속 타락해왔다고 이야기 되고 있다. 이 이야기의 원전으로 보이는 헤시오도스의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세상의 초창기라 할 수 있는 크로노스 시대에 아무런 걱정도 고통도 없는 황금의 족속이 살았으며 역시 세상은 그 이후로 점점 타락해갔다고 이야기 되고 있다. 중국역사에서도 역사의 초창기인 삼황오제시대의 요순임금이 다스리던 시절을 태평성대라고 일컫으며 사람들이 가장 살기 좋았던 시대라고 이야기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인류는 신석기시대가 가장 이상적인 상태였다'라는 루소의 결론을 예찬한다. 루소는 인류문명의 방향을 통찰하고 있었으며 그 결과와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신석기시대에 인류는 정착해서 농경을 시작하고 가축을 키웠으며 또한 집단을 이루게 되어 더 이상 야생동물에 쫒기지 않았고 배를 곯지 않았다. 거친 자연을 이용하는 법을 터득했고 더 이상 부족한 것은 없는 그런 시대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동기가 발명되었고 곧 철기시대가 도래한다. 이후 유라시아대륙의 문명은 2천년에 걸친 변화를 이루게 된다. 한편 지구 반대쪽의 또 다른 대륙의 문명은 신석기시대 그대로 남겨지게 된다. 그리고 콜롬부스에 의해 너무도 서로 다른 양대륙의 문명은 서로 조우하게 된다.
신대륙에 도착한 백인들은 원주민들을 보며 이들이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종은 아닌지 겁을 내게 되고 원주민들은 백인들을 보며 이들이 신이 아닌지 겁을 내게 된다. 둘 다 어리석은 오해를 한 것이었으나 원주민들이 훨씬 인간적인 반응이라고 레비스트로스는 말한다. 신석기시대 이후 달라진 두 문명의 한 쪽은 인간의 가치를 매우 떨어뜨려 놓고 타인에 대해 적대적으로 변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문명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신대륙 정복은 수 천년을 이어온 원주민들의 모든 것이 궤멸되는 과정이었다. 부락단위로 영위하던 그들의 섬세한 문화는 야만취급을 받게 되고 유럽에서 건너온 각종 질병으로 심각하게 인구가 줄어 더 이상 전승이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레비스트로스가 원주민과 같이 생활하면서 그들을 조사하기 위해 브라질 내륙으로 들어간 1930년대에 이미 외부에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부족이란 거의 없었고 원시부족의 인구마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밀림을 점점 조여오는 문명과 개발의 발걸음 앞에 원시부족의 미래는 암담함 그 자체였다.
인류학자로써 자신이 최초로 발견하는 순수한 원시부족을 만날 수 없다는 아쉬움과 문명에 의해 파괴되어가는 원시부족의 전통과 암담한 그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레비스트로스는 이 책에 '슬픈열대'라는 제목을 붙였을 것이다.
문명이 식인풍습을 야만이라고 규정하는 것처럼 시신을 해부실습으로 쓰는 것은 원주민들이 보기에는 경악할 일이다. 문명에서는 "해부실습은 나중에 다른 인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의사들을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일 뿐이다. 이건 과학이다."라고 항변할 것이고 식인종은 이렇게 항변할 것이다. "시신을 먹는 것은 그 사람의 일부를 내 몸속에 체화함으로써 그를 기리거나 그의 능력을 얻기 위한 주술적 과정이며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하여 식인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명에서 먹을 것이 없는 기아의 상태에서 사람들끼리 서로 잡아먹은 역사기록이 있지 않느냐?"
문명과 야만은 이렇게 서로를 보는 관점자체가 다른 것이다. 어느 쪽이 더 선한 것이냐 라고 누가 묻는다면 그에 대한 대답은 '당신과 신석기 시대의 농부 중에 누가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느냐?'가 될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책의 말미에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비교한다. 500년 간격으로 생겨난 이 종교들은 지금 인류의 3대 종교가 되어있다. 하지만 더 늦게 생긴 종교일수록 남성적이 되고 지배자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종교가 되었다. 불교에서는 현재에 있어서의 개인의 깨달음과 진리를 추구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이번 세상은 그냥 이대로 살고 내세의 천국을 약속한다. 이슬람에서는 한 술 더 떠서 내세에서도 현재의 권력과 지배구조는 그대로 이어진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문명은 점점 인간성을 잃고 염치없는 것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 있다. 발가벗은 상태로 땅바닥에서 잠을 자지만 자연과 사람들 사이의 조화를 이루면서 사는 원주민이 야만적인 것인지 과학기술이 가능하게 만들어준 도구들에 치여서 인간의 가치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야만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책의 마지막장을 넘기면서 인류의 문명과 야만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에 접근하게 되고 보다 높은 차원의 인류애에 눈을 뜨게 되는 감동을 뭐라고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