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NDWANA Sep 02. 2019

신화의 재구성

[황금가지] 프레이저



소문대로 이 책은 어마어마한 책이다. 120년 전에 어떻게 이 많은 자료들을 모아서 모티브와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는지 불가사의할 정도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종교의 위력은 대단했기 때문에 이런 책을 쓴다는 자체가 쉽지 않았다. 지금은 '시대정신' 같은 책에서 공공연하게 이야기되고 있긴하지만 당시로써는 교회가 감추고 싶은 초기 기독교의 모습과 이집트, 그리스로마 신화와의 유사성 같은 이단적인 내용도 듬뿍 담고있다. 그래서 이 책은 오랫동안 금기시 되기도 했다.  



이 책의 모티브는 단순한 신화로부터 출발한다. 로마 근처 네미숲에 대한 짧은 내용이다. 디아나의 신전이 네미숲에 있었는데 그곳을 지키는 사제는 '숲의 왕'이라고 불린다. 그 사제는 자신을 죽이러 오는 그 다음 사제와의 대결을 대비해야한다. 디아나 신전의 사제가 되기를 원하는 자는 먼저 '황금가지'라 불리우는 겨우살이 나뭇가지를 꺽어야만 사제와의 대결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사제를 죽이게 되면 자신이 디아나 신전의 사제가 되어 자신을 죽이러 오는 또 다른 사제 후보자에게 죽임을 당할때까지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이다.



저자인 프레이저는 이 단순한 신화를 지구상에 무수히 많은 종족과 마을의 주술, 신화, 풍습, 종교에서 수집한 내용과 비교하면서 네미전설에 숨겨진 고대인들의 의도를 치밀하게 추론하여 재구성해낸다. 책의 대부분이 서양과 동양, 오지와 문명사회, 미개인과 문명인에 기록으로 남아있거나 관찰된 수많은 풍습을 설명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 조선에 대한 기록마저 찾을 수 있다.



왜 신을 지키는 사제는 항상 죽임을 당하는 위치에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많은 종족들의 왕을 살해 하는 풍습으로부터 풀어나간다. 예로부터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한 해 농사가 잘 되느냐였다. 흉년이 들어 소출이 적어지는 것은 마귀나 악한 기운이 장난을 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막아주는 것은 자신들의 수호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호신이 마귀보다 힘이 약하면 농작물을 지킬 수가 없으므로 수호신을 교체할 필요가 있었다. 고대인들은 신들도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약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재빨리 젊고 튼튼한 신으로 교체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왕은 신과 동격으로 취급되거나 대리하는 자였기 때문에 왕을 죽여서 교체하는 풍습을 가진 많은 종족과 문화를 프레이저는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장소가 왜 하필 숲인가 하는 의문은 토테미즘과 애니미즘으로 부터 시작된 자연숭배사상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자연현상과 동물, 식물에 대한 수많은 터부가 있었고 그 터부가 지켜지는 곳은 거주지를 제외하면 대체로 숲이었다. 숲은 많은 신비로운 것을 잉태하고 있는 곳이었으며 수렵채취의 터전이자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정령들의 장소인 것이다.



'황금가지'는 참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를 말한다. 나무에 기생할때는 연두색이지만 그것을 꺽어서 말리게 되면 황금빛이 된다. 사제직에 도전하는 자가 황금가지를 반드시 꺽어야 되는 이유는 사제의 영혼이 겨우살이에 외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로 부터 특정 인물은 자신의 생명을 어떤 동물이나 식물과 동일시 했다. 자신의 영혼이 외재된 동물이나 식물이 죽게되면 자신도 죽는다고 믿는 것이다. 물론 프레이저는 고대인들의 전설이나 설화중에 외재된 영혼에 관한 수 많은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네미전설의 사제는 도전자가 황금가지를 꺽지 못하게 막아야 하며 도전자는 황금가지를 꺽어야만 비로소 사제와 대결할 수있는 자격이 주어지게 된다.



인간은 주술적이다. 많은 현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스스로 금기를 만들어 내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주술이 미신 취급을 받는 현대에도 길을 걸어가면서도 보도블럭의 테두리를 밟지 않으려고 하거나 나뭇잎을 한장 한장 떼어내면서 '된다, 안된다' 주문을 외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을 성취하려면 초자연적인 힘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 힘을 불러내거나 거스르지 않기 위해 특별한 의식을 행하거나 스스로 행동에 제약을 가하는 것이다. 이런 주술적인 힘이 모이게 되고 공동체가 공유하게 되면 풍습이 되고 그것을 넘어가게 되면 무속신앙이 되거나 원시종교가 된다. 그리고 의식과 제사행위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종교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런 과정을 거쳐 인류는 과학의 시대까지 도래하게 된 것이다.



언급된 많은 종족과 민족의 방대한 에피소드중 흥미로운것이 너무 많아서 그것을 하나하나 읽어가는 재미에 정신을 못차릴 정도다. 고대로 부터 행해진 인간들의 흥미있고, 끔찍하고, 우스꽝스럽고,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고, 좀 이상하기도 한 너무도 다양한 모습들이 인류역사를 채워 온 것을 생각하면 인간문화의 역사를 조망하는 인류학이란 학문이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이전글 거대도시의 가장 깊은 그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