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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May 15. 2019

대장 내시경 첫 경험

프로포폴 첫 경험이기도 하다

나도 마흔이 됐다

그 말은 즉, 그동안 위 내시경만 해도 됐는데 이제는 대장 내시경을 해야 할 나이가 됐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다 난 오늘 대장 내시경 첫 경험을 하고 왔다.


이 또한 내게는 첫 경험이었기에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사실 올해 초 회사 메일로 한 통의 안내 메시지를 받았다. 건강검진을 신청하라는 것. 건강검진 예약을 하기 위해 여유롭게 두 달 뒤로 예약을 했고, 그날이 오늘이었다.


당시 추가 선택 사항으로 지난해에는 보지 못했던 대장 내시경이 있는 것을 보고 '뜨악'했다. 사실 겁이 났다. 지난 40년 동안 맵고 짜고 오만가지를 먹어댄 나인데, 그로 인해 혹사당해 혹들이 많으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또한 그동안 위 내시경은 잠깐 3분의 고통만 겪으면 된다는 의지로 수면으로 하지 않고 맨 정신으로 정신 승리를 주장해왔는데, 대장 내시경은 정신 승리로는 도저히 할 수 없다는 후기가 많았다. 물론 선택지에는 수면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내게 대장 내시경이란 존재는 어쩔 수 없이 '수면'에 의존하기 위한 '프로포폴'을 경험해야 하는 또 다른 두려움도 있었다.


사실 수면 내시경을 꺼리는 이유는 1박 2일을 보고 나서다. 1박 2일에서 멤버들이 수면 내시경을 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약에 취해 해프닝들이 벌어진 것을 보니 덜컥 겁이 났다. 혹시나 내가 추태를 부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컸다.

피할 수 없는 상황

그렇게 두 달 여가 후딱 지나가고 집으로 한통의 소포가 왔다. 대장 내시경을 앞두고 지켜야 할 것들과 전날 복용해야 하는 약들과 그 약들을 잘 마실 수 있도록 해놓은 500ml 하얀 통이 들어있었다.


우선 3일 전부터 식단 조절을 해야 한다. 사실 먹으면 안 되는 것이 워낙 많다 보니 내 경우 그냥 흰 밥에 계란 후라이를 섞어 먹었다. 소금으로 간을 했다. 이틀 동안 그렇게 먹다 보니 김치가 너무 먹고 싶었다. 하지만 대장 내시경 전날이 되니 흰 밥에 계란마저 그리워졌다. 전날 점심에 흰쌀 죽만 가능하고 그 이외에는 안된다고 적혀있어서다. 아니면 금식을 해야 한다. 


만약 내 경우처럼 화요일이나 평일에 대장 대시경 전날이라면 집에서 흰쌀 죽을 끓여서 도시락으로 싸가길 권한다. 죽집 가서 흰쌀 죽을 시켜 먹는 것이 비싸기도 하거니와 주위에서 화려한 죽을 먹는 것을 보면 너무도 부러워서다. 그냥 조용히 사무실에서 흰쌀 죽을 먹는 게 차라리 속편 하다.

전날 쏟아내야 한다

전날 점심에 간단히 흰쌀 죽을 먹고 그 이후는 금식이다. 이토록 식탐이 생기기는 또 처음이다. 전날 저녁 6시에 알약 2개를 먹고, 저녁 8시부터 15분 간격으로 약물 1.5리터와 물 500ml를 더해 총 2리터를 마셔야 하는데 이게 참 곤욕이다.


레몬맛나는 거라고 하긴 하는데, 뭔가 마실 때 울컥울컥 한다. 포카리스웨트라고 생각하고 아무리 나 자신을 속이려 해도 이놈의 목구멍이 자꾸 거부하니 참 힘들었다. 


이것을 잘 통과했다고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 배에서 요동치기 시작한다. '꾸르릉 꾸르릉' 배속에서 천둥번개가 치는 모양이다. 화장실 옆에 자리를 펴고 누웠다 일어났다를 반복한다.

시냇물을 졸졸졸졸...
고기들은 왔다 갔다....

어릴 적 불렀던 동요가 떠올랐다. 비유다. 상상은 금물이다. 더러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12시 반까지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며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나중에 되면 동요에서 SK텔레콤의 광고도 떠오르게 된다. 

'콸콸콸'


이게 끝이 아니다. 안내문에 따르면 새벽 4시와 4시 15분에 약물 500ml와 물 500ml를 마시고 마지막까지 대장을 말끔히 씻어내라고 되어있다.


12시 30분에 잠시 잠들었다가 알람에 깨어 안내대로 마시고 화장실 옆에 쪼그려 누웠다. 또다시 동요가 흐른다.


'시냇물은......... 콸콸콸'

비몽사몽 출근길

집에서 회사까지 50분 거리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환승하여 또다시 환승을 해야 한다. 겁이 났다. 중간에 '콸콸콸'이라도 한다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차를 가지고 가기도 그렇다. 안내문에는 수면 내시경 당일 운전대를 잡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어서다.


다행히 버스에서 지하철로 환승할 때 한 번 신호가 왔고, 잘 처리를 했다. 그리고 병원에 도착하여 한 번 더 일을 봤다. 오늘 하루가 참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어 상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어라? 이건 또 뭐여?

건강검진 등록을 하고 내 이름이 불렸다. 미리 작성한 문진표를 내고 '대장 내시경' 검사자들을 위한 옷을 받고 탈의실로 향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었는데........


엉덩이에 뻥 뚫려있다. 찍찍이를 내리면 신생아 우주복 같다. 건강검진을 위해 돌아다니는데 자꾸 엉덩이가 신경이 쓰인다. 앉으려고 하면 찍찍이가 소리를 낸다. 얄궂게도. 다시 찍찍이를 안심시키려 굳게 붙이고 조심스럽게 앉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내시경

이제 마지막 내시경 차례가 왔다. 오른손에 주사 바늘을 꽂은 채 내시경 실로 들어갔다. 옆으로 누워 웅크린 자세로 누웠다.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이 말을 한다. 


"이제 약 넣을게요"


눈을 감고 있었다. 눈 앞이 캄캄한데, 어두운 동굴 속을 걸어 들어가는 것처럼 점점 더 짙은 어두움이 느껴졌다. 어두움이 점점..... 더.......

여긴 어디지?

깨어보니 어딘지 모르겠다. 병원이고 난 누워있다. 다행히 약이 잘 받았고 큰 문제없이 위와 대장 내시경이 잘 진행됐나 보다.


일어나 내려와 걸으려고 하니 아직 몸이 덜 깼나 보다. 휘청거렸다. 조심스럽게 걸어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뿐이었다.

이제 마음껏 먹고 싶다

그동안 너무 쉽게 먹고 마시고 했던 것들을 3일 정도 끊고 살아보니 이렇게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는 것에 감사하게 됐다. 건강하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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