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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한 정류장을 내달렸다

봄이 왔고 나는 달렸다 그 덕에 소화불량을 얻었다

by 광화문덕

새벽 공기는 아직 차가웠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봄기운이 스멀스멀 스며들고 있다.


미세하게 풀냄새가 났고, 나무 가지 끝에는 연둣빛이 피어오르려는 기척이 느껴진다. 은은한 봄바람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고, 겨울의 그림자가 물러나고 있다는 것을 내 몸은 먼저 알아차렸다.


'봄이다'


어느덧, 출근길 아침에도 봄이 내렸다.

오늘도 나는 평소처럼 새벽 5시 50분에 눈을 떴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떠진 눈이었다.


나의 하루를 시작하는 고정된 루틴은 늘 같다. 뉴스 기사들을 스크랩하고, 간단히 아침을 먹고, 반려견 우니에게 밥을 주고, 설거지를 마치고.


오늘은 평소보다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음식물쓰레기. 냄새가 나기 전에 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오늘 내 아침 루틴에는 한 가지가 추가됐고, 난 그 덕택에 출근길 버스를 눈앞에서 놓쳤다. 그 사소한 1분, 아니 40초쯤 되었을까. 그 차이 때문에...

정류장에서 떠나는 버스를 보며 사거리 신호등 앞에서 나는 멍하니 서 있다.


‘신호등만 건너면 바로 버스 정류장인데... 아, 이렇게 하루가 어긋나는 건가.’


생각보다 마음이 허탈했다. 하루의 톱니바퀴 하나가 어긋난 느낌.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건 그냥 ‘버스 한 대’가 아니었다. 내 질서, 내 리듬, 내 아침의 작은 성취를 놓친 듯했다.

그런데 그 순간, 문득 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한 정거장쯤 뛰면 따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


말도 안 된다는 생각과, 혹시 모른다는 기대 사이에서 한 치의 망설임이 있었다.

‘그건 무리야. 네가 그걸 뛸 수 있을 리가…’


사실은 체념에 가까웠다.


그런데 내 앞의 신호등이 바뀌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나는 뛰기 시작했다. 봄바람이 지나간 길 위를 내 두 다리가 미끄러지듯 달렸다. 허둥대는 속도, 울렁이는 배, 출렁이는 뱃살, 제멋대로 흔들리는 호흡. 갑자기 뱃속에서 아침밥이 항의하듯 요동쳤다.


‘이럴 거면 왜 밥을 먹은 거냐고!’


속에서 누군가 소리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이상했다. 전혀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도착해야 한다는 믿음뿐. 마치 이 정거장을 놓치면 오늘 하루가 통째로 뒤틀릴 것만 같았다. 아니, 그것보다도…


‘지금 포기하면, 오늘 하루 루틴이 깨져서 하루가 엉망이 될 것 같았다’


그게 진짜 이유였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을 무렵, 저 앞에서 버스가 정차한 모습이 보였다. 땀과 숨을 뒤섞으며 간신히 버스에 올라탔다.


출근 버스 속에 고요함을 둘러싸고 난 허리를 반쯤 숙인 채, 헉헉거리며 섰다. 버스 속 적막함 그리고 사람들의 체온이 스며든 온기가, 내 이마의 식은땀을 말려주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내 삶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지레 포기하고 있던 건 아닐까.’

안 될 거라고, 힘들 거라고, 늦었다고 생각하며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일들. 사실은, 단 1분의 용기와 믿음이면 닿을 수 있었던 것들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아침 버스를 타기 위해 뛰었지만, 어쩌면 그건 '내가 나를 증명해 보이는 짧은 시험대'였을 수 있다.


오늘 아침, 그 달리기는 아무도 모르게 나에게만 의미 있는 작은 승리였다.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지만, 그 누구보다 간절했던 나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덕택에 난 오늘 루틴에 깨지지 않았다. 물론 소화불량을 얻었지만...

봄이 오고 있다. 나뭇가지 끝에서, 내 가슴 깊은 곳에서도.

올해 나의 봄은 놓친 버스가 아닌, 붙잡은 나의 용기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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