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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지, 버텨야지. 어쨌든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니까.

사실 그 말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by 광화문덕

4월의 오후는 늘 그렇듯, 망설임으로 물들어 있었다. 회색 구름이 낮게 깔린 하늘 아래, 캠퍼스의 나무들은 어설픈 연둣빛 잎을 달고 있었다. 바람은 차지 않았지만, 뺨을 스치면 순간 움츠러들게 하는 냉기를 품고 있었다. 그 바람 속에서 나는, 강의실로 가는 길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형, 요즘은 뭐에 집중하세요?”


후배의 물음은 가볍고 해맑았다. 마치 그저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툭 던졌지만, 그 말은 내 안에서 오래 맴돌았다.


나는 대답 대신 웃으며 말했다.

“공부해야지. 결국엔 실력이 남는 거야.”


그 순간, 바람이 옷깃을 넘겼다. 내 말이, 내 목소리가 어딘가 멀게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지금, 그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언젠가부터 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꾸준히 해야 한다"

"지금 하는 게 나중을 만든다"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도 보여줘야 한다"고.


그 말들이 나쁘지 않다는 걸 안다. 오히려 옳고 정직한 말이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말들은…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아니었을까?


“공부해야 해, 포기하지 마, 결과물을 보여줘야 해.”

그건 내가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나 스스로를 설득할 때마다 속으로 되뇌는 말이었다.


며칠 전, 새벽까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던 날이 떠올랐다. 아무도 없는 집, 창밖은 잿빛이고, 형광등 불빛만이 책과 종이 위로 고요하게 쏟아졌다.

나는 원고 한 줄을 쓰다 멈췄고, 그래프 하나를 분석하다 한숨 쉬었고, 메일을 열었다가 닫았다.


‘이걸 왜 하고 있지?’


그 질문은 늘 머리맡에 있다. 누군가 물은 것도 아닌데, 스스로 되묻는다. 그러다 다시 앉는다. 아마도,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그럴 때마다 나를 붙잡는 말들이 있다.


“해야지, 버텨야지. 어쨌든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니까.”


나는 그 말을 내게 너무 많이 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말을 후배들에게 건네고 있다. 마치 오래된 노래를 다시 부르듯.


“형은 늘 열심히 하시는 것 같아서 좋아요.”


후배가 웃으며 말했을 때, 나는 조금 슬펐다.

그 ‘늘’이란 말속에는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내 진심을 숨긴 채, 표정 없는 얼굴로 견뎌왔는지가 묻어 있었다.


진짜 내 마음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고, 때때로는 쉬고 싶고, 포기하지 않는 나 자신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왜 늘 부족하냐고 묻고 싶었던 감정이었다.


오늘도 나는 말한다.

“열심히 해야 해. 과정이 아니라, 결과로 증명하는 거야.”


그리고 속으로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 말, 사실은… 지금 나에게 하고 있는 거야.

괜찮아. 네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면, 아직 무너지지 않은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더 가보자.


어쩌면 진짜 공부는

세상이 아니라, 내 마음을 설득하는 일이 아닐까.
오늘 하루를 지나며 다시, 나에게 묻는다.


“넌 지금도 계속 가고 있는 거야?”

“그래, 아직은. 조금 느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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