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동, 이명우 치과의원을 기억한다

아들의 마음속에선 비타민치과가 그런 기억으로 자라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by 광화문덕

오늘은 오후 시간차를 내고 일찍 퇴근하는 날이다. 병원에 가는 날이다. 치과의원. 3주에 한 번씩 교정치료를 받는다. 그리고 오늘이 그날이다.


지난해 12월, 치아 교정을 시작한 이후 내 삶에는 생각보다 많은 변화가 생겼다.


좋은 점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4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내 몸무게는 73kg에서 오늘 새벽 기준 63kg까지 줄었다. 정확히 10킬로그램.


회사 사람들은 묻는다.


“왜 이렇게 말랐어요?”
“비결이 뭐예요?”


그럴 때마다 나는 꽤 당당하게 말한다.


“위고비 그런 거 필요 없습니다.”
“다이어트하실 거면… 치아교정 하세요.”


그러면 누군가는 웃으며 말한다.


“저 어릴 때 교정했는데요?”


그럼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한다.


“그럼 또 하세요.”


농담 같지만, 반은 진심이다.


다이어트만이 아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나에게 술을 마시자는 말을 잘하지 않는다. 입안에 박힌 스크류, 그러니까 나사를 슬쩍 보여주면


“아… 그럼 다음에…”


저녁 약속이 점심으로, 점심은 다시 티타임으로 바뀌는 일이 자연스럽게 벌어진다. 그래서인지 요즘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얼굴 좋아졌네요.”
“피부가 맑아졌어요.”


그럴 때면 나는 웃으며 말한다.


“그건 피부과 덕입니다. 광화문 그랑서울 앞, ‘트윙클 피부의원’. 피부과가 고민이면 제게 말씀해 주세요~ 원장님이 참 좋으셔요~”


사실 나는 매달 레이저 관리를 받는 남자다.


살은 빠지고, 피부톤은 밝아진 덕택에 한때 배가 나와서 입지 못했던 정장을 요즘은 다시 꺼내 입는다. 그 옷들은 내가 가장 지쳐 있던 시절, 스트레스를 돈으로 풀던 시절의 ‘금융치료 결과물’이다. 그 옷을 다시 입고 출근하는 요즘, 나는 종종 생각한다.


‘나의 40대 후반이 그래도 괜찮은 방향으로 내 삶이 흘러가고 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과에 가는 시간은 40대 후반인 지금도 여전히 조금 무섭다. 교정이라는 건 결국 제멋대로 자란 치아를 억지로 제자리에 앉히는 일이라 힘이 가해지고, 압박이 생기고, 통증이 뒤따른다. 치료는 결국 치료다.


1시간 남짓 선생님께서 내 치아를 치료해 주셨고, 무사히 진료를 마쳤다. 잘 참았다. 교정 치료 시간이 고되긴 하지만 그래도 진료 후 달라진 치아 배열을 보면 통증은 금세 잊힌다. 결과가 눈에 보여서다.


다만 오늘은 달랐던 게 있다면, 치과 문을 나서던 순간 잠깐 멈춰 섰다. 입안에는 뻐근함이 남아 있었고, 혀끝에는 마취 특유의 얼얼함이 맴돌았는데 이상하게도 전혀 다른 시간의 냄새가 떠올라서다.


미아동. 삼양사거리의 풍경. 그리고, 이명우 치과의원.


나는 미아동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20대 초반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그 시절, 치과는 ‘아프면 가는 곳’이 아니라 ‘정말 어쩔 수 없을 때 가는 곳’이었다. 돈이 들었으니까. 아주 많이.


그래서 사람들은 참고, 또 참고, 정말 견딜 수 없을 때서야 문을 열었다. 그때는 집으로 찾아와 치료를 해주던,

이른바 ‘야매’ 진료도 흔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지만, 그때는 그게 현실이었다.


그런 동네 한복판에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치과가 하나 있었다. 명우 치과의원.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곳이다.


간판에는 ‘서울대’라는 글자가 붙어 있었다. 어린 나는 그 의미를 몰랐지만, 그 글자가 주는 묘한 신뢰는 느낄 수 있었다.


당시 기준으로는 꽤 깔끔한 병원이었고, 아마 개원 초기부터 다녔던 것 같다. 물론 자주 간 건 아니었다. 아플 때마다, 몇 년에 한 번씩. 하지만 그곳의 선생님은 늘 따뜻한 분으로 기억된다. 말투는 다소 무뚝뚝했지만,

그 안에는 이상하게도 나를 가족처럼 대해주는 기운이 있었다.


“어, 또 왔네.”


선생님은 나를 기억했다. 그건 어린아이에게 꽤 큰 일이었다. 내 이름을 기억해 주는 어른. 내 치아를 기억해 주는 어른. 그 기억 하나로 나는 그 치과를 다시 찾고 싶어 졌고, 그것만으로도 덜 무서웠고, 조금 더 안심할 수 있었다.


아말감이 굳어가던 냄새, '윙~~~'하면서 돌아가던 낮은 소리, 입안에 남던 묘한 이질감. 지금이라면 싫어했을 것들이, 그때는 이상하게도 괜찮았다. 아마도, 그 공간에 있던 사람이 좋았기 때문 아니었을까.


나는 종종 생각했다.


‘저 의사 선생님은 왜 미아동에 계실까. 서울대 치대를 나오셨다면 더 좋은 동네, 더 큰 병원,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있었을 텐데. 왜 하필 미아동이었을까’


그 질문은 어린 나에게 답이 없는 질문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어렴풋이 안다. 누군가는 ‘잘 되는 곳’이 아니라 ‘필요한 곳’을 선택한다는 것을.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미아동은 변했다. 내가 6살 어린 시절부터 뛰놀던 '뱀길'이라고 불리던 골목은 사라졌고,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기억들도 함께 밀려났다.


내가 20대 초반이 되던 시절 우리 가족 역시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그 이후, 내가 경험한 치과는 더 이상 따뜻한 곳이 아니었다. 최첨단 장비, 반짝이는 인테리어, 논리적이지만 냉정한 설명.


“이건 해야 합니다.”

“이건 안 하면 큰일 납니다.”


때론 설득이 아니라 강요처럼 들렸던 나날들. 그리고 어느 날, 충치 하나 때문에 갔던 치과에서 ‘눈탱이’를 맞았다. 그날 이후, 치과는 내게 ‘가면 안 되는 곳’이 됐다. 정말 필요할 때만, 어쩔 수 없을 때만, 이를 악물고 가는 곳. 나는 그렇게 30대를 보냈다.


그리고 지금, 40대의 끝자락. 나는 지금 치과에 다니고 있다. 비타민 치과의원.


사실 이곳은 아내가 아들의 치료를 위해 꼼꼼하게 알아보고 선택한 곳이다. 문을 열면 항상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분들이 있다.


“오셨어요.”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도 마음을 놓이게 한다. 그리고 내 치아 진료를 해주시는 박래준 의사 선생님은 치아만 보지 않는다. 사람을 본다.


“이건 관리 좀 하셔야겠어요.”

“잘하고 계시네요.”


혼도 내고, 칭찬도 한다. 이런 정감(?) 가는 소통들 덕택일까 '신뢰'가 생겼다. 그리고 교정을 시작한 지 4개월.


나는 문득 깨달았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 따뜻함. 익숙함. 안도감. 이 모든 것이 어린 시절 명우 치과에서 느꼈던 것과 똑같다는 것을.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 아들의 마음속에도 그와 비슷한 기억이 쌓이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래서일까. 오늘, 진료를 받다가 그 장면이 떠올랐다.


삼양사거리. 나를 기억해 주던 그 목소리.


서른 중반쯤, 나는 이명우 치과의원을 다시 찾은 적이 있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선생님은 많이 늙어 계셨다. 치과도 그대로였다. 인테리어도, 분위기도 내가 어릴 적 보던 그 모습 그대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변한 건 우리 둘의 나이뿐이었다. 진료를 받고 나오면서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하지만...


“감사합니다.” 이 짧은 한 마디를 끝내 선생님께 말씀드리지 못했다.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숙이고 문을 나왔다.


그리고 오늘, 비타민 치과 문을 나서며 그 기억이 다시 나를 붙잡았다. 그때의 나. 그때의 침묵. 그리고

전하지 못한 말.


치과는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두려운 곳일 것이다. 비용이 걱정되고, 혹시 또 당할까 불안한 곳. 하지만 결국 우리는 가야 한다. 그리고 알게 된다. 좋은 병원은 시설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사실 나는 운이 좋았다.

어린 시절, 좋은 치과를 만났고 지금, 다시 그런 곳을 만났다.


그래서 이 글을 남긴다.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그때 그 치과의 그 선생님께 이 마음이 닿을 수 있다면...


“선생님. 저, 그때 미아동에서 치료받던 아이입니다. 덕분에… 잘 컸습니다. 그때, 정말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