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엔 교정이 최고?

씹지 못하는 시간 동안, 몸은 줄었고 생각은 자라났다

by 광화문덕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내 몸무게는 73킬로그램이었다. 그러다 4월 말에는 61킬로그램까지 내려갔다.


4개월 동안 12킬로그램이 빠졌다. 일부러 굶은 것도 아니고, 독한 다이어트 약을 먹은 것도 아니었다. 헬스장에 등록해 매일 러닝머신 위에서 인생을 반성한 것도 아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교정...


교정치료를 시작한 뒤, 내 식생활은 생각보다 크게 달라졌다. 치아가 이동하는 동안 예전처럼 편하게 씹을 수 없게 됐고, 먹는 속도도, 먹는 양도, 먹고 싶은 음식의 종류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물론 요 며칠 사이에는 조금 나아졌다. 씹는 것이 예전보다 편해지면서 63킬로그램에서 65킬로그램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도 73킬로그램에서 63킬로그램, 다시 65킬로그램. 8킬로에서 10킬로그램이 빠진 몸은 여전히 내 몸에 남아 있다.


그래서 농담처럼 말하고 싶어진다.


“괜히 이상한 약 먹지 마라. 다이어트엔 교정이 최고다.”


물론 진심 반, 농담 반이다. 교정은 다이어트 방법이 아니다. 치아를 바로잡기 위한 치료다. 살을 빼려고 교정을 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나 역시 비타민치과에 다니기 시작한 이유가 살을 빼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 몸은 교정이라는 치료를 거치며 가장 확실하게 줄어들었다.


위고비보다, 마음고생보다, 어쩌면 교정이 더 강력했다. 적어도 내 몸에는 그랬다.


돌이켜보면 내게 살이 빠진 경험이 이번은 처음이 아니다.


40대 초반

직장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시기가 있었다. 두 달 가까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밤이 오면 잠이 아니라 생각이 몰려왔다. 눈을 감으면 쉬어야 하는데, 머릿속에서는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회의실처럼 계속 열렸다. 그때도 10킬로그램 정도가 빠졌다.


그런데 그건 다이어트가 아니었다. 그건 몸이 보낸 구조 신호였다. 마음이 버티지 못하니 몸이 먼저 무너진 것이었다. 이후 병원을 다니며 조금씩 마음의 평온을 되찾았다. 잠을 다시 자기 시작했고, 밥을 다시 먹기 시작했고, 몸도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73킬로그램. 정확히 말하면 몸무게만 돌아온 것이 아니라, 먹는 즐거움도 돌아왔다.


그리고 그 시절 나를 버티게 한 것은 또 하나 있었다. 금융치료. 쇼핑이었다. 내가 맥시멀리스트가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마음이 허할 때 카드를 긁으면 잠깐은 괜찮아졌다. 택배가 오면 하루 정도는 기분이 나아졌다. 새 옷을 입으면 내가 조금 새로워진 것 같았다. 물론 그것이 근본적인 치료는 아니었다. 그래도 그때의 나는 그렇게라도 버텨야 했다. 당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살은 빠졌지만 건강한 방식은 아니었다. 마음이 빠지고, 잠이 빠지고, 삶의 균형이 빠진 결과였다.


40대 중반

또 한 번은 뱃살을 빼겠다고 극단적으로 탄수화물을 끊은 적도 있다. 6개월 동안 거의 탄수화물을 멀리했다. 결과만 보면 다이어트는 성공이었다. 몸무게는 내려갔고, 배도 들어갔다. 하지만 병원에서 혈액검사 결과를 보고 알게 됐다. 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크게 올라가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탄수화물을 무조건 끊는 방식이 좋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때 깨달았다. 몸무게가 줄었다고 건강해진 것은 아니라는 걸. 숫자는 내려갔지만, 몸 안의 균형은 무너지고 있었다. 다이어트는 성공했는데 건강은 실패한 셈이었다.


47살 지금

그에 비하면 교정으로 인한 감량은 조금 다르다. 물론 이것 역시 마냥 건강한 감량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치아가 이동하는 중이라 잘 씹지 못하고, 먹는 행위 자체가 번거로워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먹고는 싶다. 그런데 씹을 수가 없다. 입 안에 음식을 넣으면 예전처럼 와구와구 씹는 즐거움이 없다. 고기를 먹어도 조심스럽고, 과자를 먹어도 예전 같은 쾌감이 없다. 바삭, 오독, 쫀득, 그런 소리와 감각들이 사라지니 식탐도 함께 줄어든다. 먹는 즐거움이 사라지면, 사람은 생각보다 덜 먹게 된다.


물론, 배가 고프면 먹는다. 하지만 예전처럼 “맛있으니까 더 먹자”가 잘 되지 않는다. 대신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 단백질은 먹었나.”
“너무 안 먹은 건 아닌가.”
“씹기 힘들어도 영양은 맞춰야 하는데.”
“이걸 삼켜도 괜찮을까.”


다이어트가 아니라 생존 전략에 가까워진다. 교정 전에는 먹고 싶은 것을 먼저 생각했다면, 교정 후에는 먹을 수 있는 것을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최대한 영양의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 예전에는 맛이 식사의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기능이 식사의 중심이 됐다.


씹지 못하니 삼켜야 하고, 삼키려면 부드러워야 하고, 부드러운 음식만 먹다 보면 영양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신경 써야 한다. 그러니까 교정 후의 식사는 묘하게 철학적이다. 먹는 즐거움을 잃은 자리에서, 몸을 유지하기 위한 책임감이 생긴다.


양치도 달라졌다. 예전보다 훨씬 열심히 한다. 안 하면 찝찝해서 견딜 수가 없다. 교정 장치 사이에 음식물이 끼어 있는 느낌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생활의 자신감을 빼앗아간다.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다가도 신경이 쓰인다. 웃을 때도 조심스럽다. 혹시 치아 사이에 뭔가 끼어 있지는 않을까, 상대방 눈에 보기 흉하게 보이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 대화도 소극적이 된다. 말수가 줄고, 웃음도 줄고, 표정도 어색해진다.


그래서 양치를 한다. 먹고 나면 닦고, 또 확인하고, 다시 물로 헹군다. 치과에 갈 때마다 교정 상태를 확인받는 일도 중요하지만, 결국 매일의 관리는 내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살이 빠지는 것보다 더 큰 변화는 어쩌면 여기에 있다. 입 안을 관리하는 일이 곧 나를 관리하는 일이 됐다.


이렇게 교정은 내게 생활 방식의 강제 리셋에 가까웠다.

물론, 다이어트는 예상치 못하게 따라온 ‘덤’이었다.


마음고생으로 빠진 살은 나를 무너뜨렸다. 극단적 식단으로 빠진 살은 몸의 균형을 흔들었다. 그런데 교정으로 빠진 살은 이상하게도 나를 조금 더 조심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먹는 일을 대충 넘기지 않게 됐다. 양치하는 일을 귀찮아하지 않게 됐다. 몸무게 숫자보다 몸의 균형을 더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전에는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씹는 즐거움”이 사실은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알게 됐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은 조금 장난스럽게 시작할 수밖에 없다.


다이어트엔 위고비보다 교정.
마음고생보다 교정.
식탐 줄이는 데는 교정이 최고.


살은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어떻게 빠졌느냐다. 스트레스로 빠진 10킬로그램은 나를 아프게 했다. 극단적인 식단으로 빠진 몸무게는 건강의 경고등을 켰다.


반면, 교정으로 빠진 8킬로그램은 먹는 일과 몸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놓았다. 결국 다이어트의 핵심은 몸무게가 아니라 몸과의 관계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열심히 먹으려 한다. 잘 씹지는 못하지만, 잘 먹으려고 한다. 먹는 즐거움은 줄었지만, 몸을 돌보는 감각은 조금 늘었다. 그리고 언젠가 교정이 끝나 다시 마음껏 씹을 수 있는 날이 오면, 그때는 아마 예전보다 조금 더 천천히 먹게 될 것 같다.


바삭한 과자 하나에도 감사하면서. 고기 한 점을 오래 씹으면서. 입 안에서 음식이 부서지고, 향이 퍼지고, 삼키기 전까지 머무는 그 짧은 시간을 다시 배워가면서.


그러니 교정의 시간은 내가 다이어트를 위해 선택한 시간이 아니었다. 교정은 내 치아를 움직이는 치료였지만, 그 과정에서 내 식습관과 생활의 리듬까지 함께 움직였다.


나는 요즘, 교정을 통해 씹는 즐거움을 잃고 나서야 먹는다는 일이 얼마나 큰 삶의 기쁨이었는지 비로소 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