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 신동진
밤사이 알코올을 분해하느라 몸은 쉬지 못했다. 몸은 자기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이 화가 났는지 정신을 매시간 단위로 깨웠다. 몸의 질투로 정신은 짜증이 한가득했다.
정신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오늘 하루가 길겠는데..."
"바께 나가!!! 음마 음마!!!"
25개월 된 아들의 기상 명령이다. 알람 시간은 거의 똑같다. 신기하게도. 눈을 감고 생각했다. '이제 오전 7시쯤 됐구나...'라고...
알람 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진다. 버틸수록 나만 손해다. 바로 일어나지 않으면 눈물 콧물 불호령이 더해진다. 아들의 얼굴 역시 눈물 콧물 범벅이 된다.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진다.
아들이 감정이 상하기 전에 일어나야 한다. 감정이 상하기 전에... 난 주말 동안 최상의 컨디션인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그게 내게 주어진 삶이다.
재빨리 일어났다. 마치 프로레슬링에서 다운된 선수가 날렵하게 몸을 일으키듯...
운명을 거스르지 않았다. 담대히 받아들였다.
주말 육아 시작
주말 육아는 내 몫이다. 아들이 일어나면 무조건 일어나야 한다. 예외란 없다. 자비도 없다. 주말 육아 미션을 잘 수행해야 가정이 행복하다. 그리고 다가오는 한주도 상콤하게 맞이할 수 있다. 난 결혼 4년 차... 이미 이 정도쯤은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몸을 일으켜 세우자 메스꺼움이 용솟음쳤다. 화장실로 달려갔다. "우웩 우웩" 구역질을 몇 차례... 거울을 쳐다봤다. 밤사이 많이 늙었다. 숙취는 내 몸속 수분을 다 훔쳐간 듯했다. 말 그대로 내 몸은 사막이었다.
타들어 가는 속을 부여잡고 아들에게로 갔다. 몸이 천근만근이다. 후회가 밀려왔다. 왜 어제 그토록 달렸을까... 늘 하는 후회다. 미련하게도...
배고퐈 배고퐈
아들이 또 운다. 배고프단다. 이제 요리를 해야 한다.
"뭐해줄까? 양파볶음해 줄까? 오믈렛해 줄까? 달걀 볶음밥해 줄까?"
아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몇 번 더 물어봤다. 묵묵부답이다. 이쯤 되면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해야 하지만 오늘은 내가 정한다.
오믈렛 해줄게!!!
냉장고를 열고 보니 파프리카가 있었다... 하지만 양파만 꺼냈다. 달걀 2개와... 이것저것 다 신경 쓸 체력이 아니었다.
"아들, 미안하다..."
호텔 조식으로 해주는 오믈렛을 머릿속에 그렸다. 양파를 작은 사각형 모양으로 잘랐다. 호텔에 세팅된 것처럼. 달걀을 풀고 소금 간을 했다.
우워어어어어어.............
소금이 조금 많이 들어갔다... 신이 나를 만들 때 이미지가 떠올랐다.
"아들 다시 한 번 미안하다..."
양파를 넣고 섞은 뒤 오믈렛을 만들기 시작했다.
짜잔...
생각보다 괜찮은 모양이다. 숙취로 힘든 상황에서 이 정도 비주얼이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맛도 괜찮았다. 하지만 난 더 맛볼 수가 없었다. 내겐 얼큰한 해장용 국물만이 필요했다...
아들이 맛을 봤다. 입을 더 벌린다. 역시 입맛에 맞나 보다. 본격적으로 먹이기 위해 오믈렛 배를 갈랐다........
헉...............
음...........
어..............
겉에만 익고 속은 안 익었다...............
"아들아 또... 미안하다......"
스크램블 해줄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프라이팬에 오믈렛을 다시 넣었다. 골고루 익히기 위해 오믈렛을 분해했다. 처참하게...
요리를 다시 하는 사이 아들이 기다리다 지쳤는지 식탁에서 내려갔다. 책을 보러 갔다. 얼굴 표정은 별로 안 좋다. 다 익힌 뒤 아들에게 밥 먹자고 공손하게 다시 청했다. 아들은 대답 없이 책만 봤다. 식욕이 그사이 사라졌나 보다....
"미안하다 아들......"
아내는 코감기가 심해 안방에 누워있다. 멀리서 쳐다보니 안쓰럽다. 당연히 감기 숙주는 나였다......
아내는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고 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주중에 아들을 돌보느라 식사를 제대로 못 하고 노동만 한 결과다... 결혼해서 고생만 시키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주말에 내가 육아를 해야 하는 이유다. 숙취가 내게 좀만 더 누워있자고 유혹해도 응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은 처가에 가기로 한 날이기다. 180km를 달려야 한다. 빨리 숙취를 떨어뜨려야 한다. 오전 중으로 숙취와 헤어져야 한다... 기필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