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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Feb 02. 2019

#45. 리더의 말 한 마디

[신동진의 와인에 빠지다] 11화 - 와인 등급의 기원

"와인 어떻게 시작해야 해요? 너무 어렵고 복잡해요 ㅠ_ㅠ"


요즘 점심 자리나 저녁 식사 자리에 가면 종종 듣는 말이다. 와인 연재를 하고 있다 보니 와인에 대해서 내게 물어오시는 분들이 있어서다. 난 그럴 때면 말한다.


"전 와인 전문가는 아니에요. 다만 와인을 좋아하고 와인 속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을 좋아할 뿐이지요"라고.


와인 전문가가 아니니 당연히 와인에 대해 평가하지 않는다. 그저 난 와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찾아내고 그걸 이해하는 재미를 즐길 뿐이다. 아울러 내가 찾으면서 이해한 내용을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에 걸쳐 찾아낸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풀어내다 보면 어색하거나 무거운 식사 자리 분위기도 금세 화기애애해진다.


많은 이들이 와인에 관심을 가지고 와인을 배우려고 도전한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포도품종부터 와인 예절, 뒷이야기 등 혀를 내두를 만큼 광범위하다 보니 어렵고 복잡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나 역시도 그랬다. '와인 공부해야지'라고 다짐했다가 포기하기를 수차례였다.

그러다 문득 와인에 얽힌 이야기를 찾는 것에 심취하게 됐고 와인을 공부한다고 거창하게 생각하기보다 '내가 마신 와인만큼은 알아두자'로 마음을 고쳐먹으니 와인이 보였다. 그러면서 와인에 대한 지식을 하나둘 습득하게 됐고, 지금은 와인과 얽힌 이야기라면 찾아보고 정리할 정도로 거부감이 없는 상황이 됐다.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와인을 즐기는 수준까지 오게 된 것이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 알아나가기 위해서는 애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궁금한 것을 찾아서 확인하는 수고로움이 수반돼야 한다. 그리고 내가 경험하고 공부한 정보를 나누는 즐거움도 중요하다. 특히 와인은 더욱더 그러하다. 물론 타인에게 와인에 관해서 소개하려면 어설픈 정보로는 안된다. 내가 알고 있는 바를 상대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줘야 한다. 준비가 필요하다.


어려운 이야기를 어렵게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쉽게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가 잘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해서는 안 되며, 상대방을 강제적으로 이해하도록 억압해서도 안 된다. 결국 이 수준까지 내 지식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기승전-암기'밖에 없다.


오늘 나눌 와인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와인 등급에 대해서다. 와인이라고 하면 프랑스 와인 그중에서도 보르도 와인을 떠올릴 수밖에 없어서다. 실제로 와인 가게나 마트에 가면 단연 눈에 띄는 프랑스 와인은 보르도다. 그중에서 와인 라벨에 메독(Medoc)이라고 적힌 와인을 쉽게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메독 와인이 유명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자 그럼 여기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메독 지역 와인이 왜 중요할까'라고 말이다. 그에 대한 답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나폴레옹 3세 시대로 시곗바늘을 되돌려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160여 년 전인 1855년 프랑스 파리. 프랑스는 세계박람회(世界博覽會) 준비에 한창이었다. 1851년 영국 런던에서 첫 박람회가 열렸고 두 번째 개최지로서 성공적인 박람회를 치르기 위해서다.


당시 세계박람회는 각 나라가 자국의 상품을 진열해 교역을 증진하기 위한 산업혁명에 따른 상품전시회였다. 그때에는 만국박람회(萬國博覽會, Universal Expositions)라고 부리기도 했지만, 현재는 세계박람회(World's Fair) 혹은 세계 엑스포(world expo)로 불린다.


19세기 중엽 프랑스는 세계 최대 와인 생산 수출국이었다. 그들에게 와인은 자존심과도 같았다고 한다. 당연히 와인을 주요 전시품으로 채택했다. 그런데 문제는 수많은 와인 중에서 어떤 와인을 전시할지였다.


사실 그럴 만도 하다. 나름 주요 수출품을 선정하는 것이니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예의주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선정되고 안 되고의 차이는 그들의 명예뿐 아니라 향후 수출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게 될 것이란 판단에서일 것이다.

나폴레옹3세(출처 : 위키피디아)

이런 고민을 한 방에 해결해 준 사람이 바로 당시 황제였던 나폴레옹 3세였다. 나폴레옹 3세는 보르도 와인 업자들을 불러, 메독 지방의 와인의 품질을 파악해 등급을 매겨 전시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 결과 메독 지방 와인 업자들은 며칠 만에 수백 개의 샤또 와인을 평가해 총 61개의 샤또 와인 생산자를 지정했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 보르도 그중에서도 메독 지역 와인의 등급인 '그랑 크뤼 클라쎄'의 기원이다.


그랑 크뤼 클라쎄는 특1등급부터 5등급까지 5개 등급으로 메독 와인의 품질 서열을 나누고, 총 61개를 등급에 맞게 선정했다. 와인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샤또 라뚜르, 샤또 마고, 샤또 라피트 로칠드 등이 프랑스 보르도 메독 지방의 5대 샤또가 바로 특1등급이다.


물론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 보르도의 5대 와인이자, 1등급 와인(PREMIERS CRUS Classe)으로 알려진 '샤또 오브리옹'이다. '샤또 오브리옹'은 사실 메독 지방이 아닌 그라브 지방 와인이다. 당시 '샤또 오브리옹'은 외국인들에게 프랑스 와인 하면 떠오르는 굉장히 유명한 와인이었고, 그렇다 보니 파리 세계박람회에서 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아마 이 순간 실무자의 심정은 이런 거 아니었을까 상상해본다.


'아무렴 어떠랴. 어차피 이번 행사의 목표는 성황리에 마무리하는 것이다. 메독 지방이 아니면 어때.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인데!!! 지방이 다르다고 해서 뺀다면 '샤또 오브리옹'을 보지 못해 아쉬워하는 이들이 생기면, 혹시 이들이 나폴레옹3세님과 친분이라도 있다면... 헉.... 에라 모르겠다. 일단 넣고 보자'


그리고 1855년도에 만든 이 서열은 160여 년 이상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여담으로, 현재 프랑스 보르도 메독 지방의 '5대 샤또'로 손꼽히는 샤또 무똥 로칠드는 1855년 당시에는 특2등급이었는데, 1973년 특1등급으로 승격됐다. 샤또 무똥 로칠드는 유명 아티스트 작품을 와인 라벨에 담았고, 샤또에서 직접 와인을 병입했다는 문구를 넣는 등 와인 업계에서 다양한 혁신을 한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추후 자세히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사실 와인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프랑스 와인 등급 하면 뭔가 대단한 역사가 있을 것 같은 환상을 품게 되지만, 결국 이 역시도 나폴레옹3세의 말 한마디로 1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치 진리처럼 전해지고 있다.


최근 경제 위기다, 지배구조 개혁이다 해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서민들은 부익부 빈익빈의 심화뿐 아니라, 갈수록 먹고살기 어려워지는 현실 속에서 근근이 버티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의 현재, 그리고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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