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에 띠링하고 울리는 알람 소리에 '나도 작가다' 공모전 공문을 보았다. 주제는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이라, 어려운 질문이라, 이 실력에 공모전이라니라는 생각에 뒤로 미루어 두었다. 하지만 하나의 물음은 나를 생각에 빠지게 했다. 무엇이 나답게 해주는 것일까? 그리고 나다운 게 뭘까? 살면서 누군가나 한 번쯤 해봤을 생각이다. 나는 사춘기 이후, 나라는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이런 생각을 종종 할 때가 있다. 그 계기는 사람들마다 나에 대한 생각, 의견, 평가, 정의가 너무나도 다를 때이다. 공통된 의견이 전혀 없진 않지만 '너는 이성적인 사람이야, 너는 감성적인 사람이야', '너는 계획적인 사람이야, 너는 즉흥적인 사람이야', 너는 큰 그림을 잘 보는 사람이야, 너는 디테일에 강한 사람이야'와 같은 상반되는 의견이 훨씬 많다. 그때마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왜 상반된 의견이 있는 걸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생각에 끝은 늘 항상 나는 나다라는 대답일 뿐이다.
그들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단지 자신에게 비교해 그렇다는 것이다. 그들의 의도는 '보통'이란 기준으로 말하지만 사람이란 무릇 자신에게 비댓어 말한다. 더욱이 자신을 상대하는 사람을 말할 때는 그럴 수밖에 없다. 세상의 모든 사람의 생각과 성향을 알 수 없다. 그러니 자신의 성향과 주어진 환경에 비슷한 사람들을 더 많이 접하게 되고 그것을 '보통' 또는 '평균'이라 생각하고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들의 평가, 의견, 기준에 맞춰 나를 정의 내릴 필요는 없다. 단지 나의 생각과 행동이 세상의 일에 대한 평가, 의견, 기준이 필요할 뿐이다.
태어나 살면서 많은 도전을 하게 된다. 그리고 몇 번의 성공과 그 보다 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나는 어릴 적 가졌던 꿈을 한때 포기했으나 우연히 그 길을 걷게 됐고 꿈의 일부를 이루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행복했던 시간보다 괴롭고, 힘들었던 시간이 더 많았다. 그리고 꿈꾸었던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현실에 놓인 많은 것들을 해결해야만 했다. 따라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 이상의 노력을 하기에는 내 몸과 마음은 한계에 다다랐다. 그 한계를 넘기에는 괴롭고 힘들었던 시간에 열정을 다 소비해 버려 남은 것은 없었다. 결국, 작은 결과에 만족하고 또 다른 꿈을 이루기 위해 걸어갔다. 어느 누군가에게는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으므로 성공으로, 어느 누군가에게는 완주하지 않았으므로 실패로 보일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생각한다. 계획, 실행에 대한 잘 못을 찾기도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우선시하는 것은 그 시간이 '행복했나? 재밌었나?'이다. 내가 이 세상을 사는 이유는 성공이 아니라 행복이기 때문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은 이러한 것들에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중요한 의견을 들었을 때, 도전 후의 성공, 실패라는 결과를 얻은 뒤에 여유를 가지고 나의 안으로 들어가 생각하고 나를 보는 것이다. 여유가 없으면 가장 빠른 길, 가장 많은 사람들이 권하는 길을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내 그 길을 걷는 나를 상상하는 순간, 내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래서 여유를 가지고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행동이 일부 남의 눈에는 실의 빠진 것처럼, 목표를 잃은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위로와 비난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다. 행동하기 전에, 결정하기 전에, 결과를 얻고 난 뒤에 생각하고 나 자신에게 물어보는 사람이다. 지난 일과 앞으로 할 일에 옮은 일인가, 옮은 과정인가, 옮은 결정인가, 행복한가, 재밌는가, 즉 나답게 생각하고 행동하냐고 말이다. 그리하면 나는 남의 의견에게, 생각에게, 행동에게 지배받지 않고 나 자신대로 행동할 수 있다. 즉, 나 자신대로 나답게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나 또한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이며, 이 사회의 일원으로 가까운 지인들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특히 다수의 사람들이 '다르다고, 틀리다고' 생각하고 말한다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고 행동을 조정해야 한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나에 대한 생각이 다르듯이 나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의견이 다르다. 어떤 이들은 '틀렸다'라고 말하고, '남들처럼 해라'거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나 답다고 부러워'하거나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심지어 특별한 이유 없이 '나라는 이유만으로 응원'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다른 의견들을 내 생각에 조금씩 보태어 나는 나다운 결정을, 행동을 하게 된다.
작가라는 다른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결정을 하게 된 것도 나에 대한 고찰이자 남이 나를 생각하는 의견과 정의가 반영되어 있다. 살아온 세월만큼 생각들이 복잡해져 고민하는 것 만으로는 생각들이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에 빠진 시간이 길어졌다. 그래서 글로 남기며 생각들을 정리하였다. 그런데 문득 떠오른 기억들이 있었다. 어릴 적 받은 상의 다수가 글쓰기였다. 그리고 내성적인 나는 친분 없는 사람들에게 온전히 내 의견을 말하는 방법은 말이 아니라 글이었다. 또한 주위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내 행동보다 내 글이었다. 그래서 글 쓰는 것이 나에게, 남에게 재미와 행복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생각이 정리되자 남들에게 물었다. 일부 반대하는 사람들은 좋은 취미라 말하고, 일부는 글과 상관없이 응원만 할 뿐이고, 일부 찬성하는 이들은 내 글을 읽어주고 의견을 주었다. 그리고 심지어 브런치를 알게 된 것도, 브런치 작가가 된 것도 나의 결정을 부러워하는 이가 권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 또한 나답게 해 주었다. 나답게 쓰게 된다. 내 글이 내가 쓸 때는 좋지만 남이 보면 좋다는 사람, 싫다는 사람으로 나뉜다. 그래서 남이 되어 한 발 물러서 보면 난해한 글이다. 특히 어릴 적 쓴 글은 지금보다 더 난해하다. 그래서 학교에서 배운 대로 주제어를 정하고 서론, 본론, 결론을 나누어 글을 고치면 재미가 없다. 특별함이 없다. 즉 내가 쓴 글이 아닌 것 같아졌다. 그래서 결국 처음 글쓰기를 가르쳐준 담임 선생님의 말씀대로 초고로 돌아가 내가 생각할 때 너무 튀어나 온 곳을 없애거나 다듬는다. 나답게 쓴 글이 더 재밌게 읽히고 싶고 더 자연스럽게 읽히고 싶다. 그래서 남의 의견을 보태어 나다움을 유지한 채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 글도 어쩔 수 없이 나답게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에 큰 파도가 칠 때는 나를 두고 파도 따라 휩쓸려 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강가에 가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노을을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다시 여유를 가지고 내 안에서 나를 찾아간다. 그리고 오늘 이 노을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함과 행복함을 느끼다 보면 휩쓸렸던 나는 얼마 가지 못하고 그 전의 나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 태양처럼 아름답게 지고 싶다고, 주위를 아름답게 해주고 싶다고, 그리고 내일 다시 떠오르길 기다려 달라고, 그때까지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해달라고. 바라보고 자신에게 다짐한다.
결국, 성공과 실패 뒤에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 세상의 기준 대로가 아니라 나답게 살아갈 수 된 것은 나다움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은 여유를 가지고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 내가 재밌고 행복한 마음, 그리고 이런 나를 좋아해 주고 걱정해 주고 지지해주는 그들의 생각과 마음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렇게 태어난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내가 좋고, 이런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나는 나다울 수 있고, 나답게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