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나를 사랑할리가 없지

식이장애 이야기

by 길은있다



매일 저녁 폭토를 해요.

폭토를 안하는 날을 세는 것이 훨씬 빠르죠.

배달음식을 엄청 많이 시키고 다 없애고 게워내고

또 새벽에 나가서 편의점을 털어와요. 또 먹어치우고 게워내죠.


토사물과 눈물, 콧물에 울그락붉그락 해진 제 얼굴을 정말 끔찍해요.

그때 제게서 나는 냄새는 정말이지 역겨워요.



다행히 아침은 출근준비로 바빠서 공복으로 집을 나서요.

제가 가장 안심하는 순간이예요.

출근하면 동료들이 내가 식이장애라는 것을 알까봐 아무 문제 없는 척 먹어요.


제가 많이 먹으면

'저러니까 뚱뚱하지'라고 할까봐 눈치가 보이고


제가 적게 먹으면

'적게 먹는데 왜이리 뚱뚱해'라고 할까봐 수치스러워서

저는 항상 주위 눈치를 보느라 편히 먹은 적이 없어요.

눈치보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일을 해요.


차라리 바쁜 날이 더 좋아요. 음식 생각이 안나니까요.

일부러 더 바쁘고 힘든 업무에 자원하고

다른 사람들의 업무도 제가 가져와서 해요.

사람들은 제가 착해서라고 생각하지만 폭토할까봐 이러는 걸 알면 저를 분명 싫어할거예요.


제대로 된 연애를 해 본 적도 없어요.

친구들은 많지만 소개팅을 별로 해주지 않더라구요.

제가 뚱뚱하고 못생겨서 누구 소개시켜 주지 창피하겠죠. 이해해요.

참여하는 사교클럽도 많은데요. 그때도 엄청 눈치봐요.

얼굴을 굳어져 있고 뱃살이 도드라보일까봐 온몸에 힘을 주고 있노라면

누구랑 대화를 하거나 춤을 추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해요.



누구를 만나도,

상대가 내게 친절하게 대해도,

저는 늘 불안해요.

저같은 못생긴 뚱보를 다시 만나고 싶겠어요?

이런 날 사랑해줄리가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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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모범생에, 서울에서 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는 그녀는

모든 관계에서 <내일은 없다, 다음은 없다>고 생각한다.


못 생기고 뚱뚱한, 매력없는 자신을 다음에도 또 만나줄리 만무하기 때문에

그녀는 항상 모두에게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항상 타인에게 전적으로 맞추느라

엄청난 긴장상태로 지내게 된다.


그래서 거의 식사도 못하거나, 종일 굶거나,

혹은 조금만 먹어도 긴장때문에 소화가 안되어 더 먹기도 어려운 지경이다보니

매일 저녁 신체적 배고픔과 정서적 배고픔이 동시에 폭발하면서

매일 저녁 폭식과 구토를 반복한다.



동성 친구들과는 수시로 비교하며 수치심을 느끼고

이성관계에서는 자신을 좋아해줄리가 없다는 생각과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스스로 먼저 자기비난을 한다.

자신에게 무례하게 구는 이성을 만나도 다 받아주곤 했다.


'내 주제에 감지덕지지! 그러니 내가 더 잘해야지'라며

자기혐오의 말과 함께 그녀는 수치심 덩어리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자신이나, 관계, 미래에 대해서 희망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그녀의 폭토는

못생기고 뚱뚱한 자신에 대한 자기처벌이며


누구도 나를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을거라는

존재 자체로서 거부당하는 내면의 공포를 쏟아버리는 정화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을 때 내가 존재한다는 것 조차고 느껴지지 않게 하는 마취제 이기도 하다.





폭토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의지의 부족이나 조절을 못하는 것만으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폭토의 유지는

내면의 엄청난 고통을 견뎌내고 있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하고, 지방흡입, 성형수술이 의미나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폭토가 갖는 의미나 효과는 무엇인지

어떤 순간에 폭토를 하게 되는지,

폭토 후에 자신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경험하고 있는지,

우리는 고통스럽더라도 마주해야 합니다.



고통스럽고, 수치스럽다고 외면하면 할수록

해결되지 않은 불안과 공포들이 폭토의 수레바퀴로 우리를 이끌수밖에 없습니다.





내면의 깊은, 지독한 수치심은

오랫동안 전문가와 다루어 나가야 합니다.


그 수치심의 기원이 어디인지,

나 자신에 대해서 갖고 있는 부정적 생가과 감정들은 어떤 것들인지,

내가 나를 어떻게 느끼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길을 열어가야 합니다.



과거를 살펴보지만

과거에 얽매이고 과거의 고통을 재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현재의 삶에 적용하며

과거와는 다른 미래를 꿈꾸고 길을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고통과 수치심 속에서 폭토로 고통스러워하는면서 수치심과 죄책감의 쳇바퀴에서 머물지

내면을 탐색하며 경험하는 직면으로 고통스럽지만 성장통을 경험할지

당신만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고

그 길을 헤쳐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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