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유전자

식이장애 이야기

by 길은있다



저는 참 못된 사람이예요.

고등학교 때 아무 잘못도 없는 친구를 왕따시켰어요.

친구가 없어서 항상 불안하고 외로웠는데 우연히 친해진 무리에서 리더격인 친구가 다른 한명과 사소한 오해가 있었는데 그후로 그 친구를 은근히 따돌리고, 약속이 있을 때 그 친구에게만 일정을 알리지 않아서 그 친구가 항상 혼자 다녀야했어요.

생각해보면 그 친구는 아무 잘못도 없어요.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항상 죄책감이 들어요.

저역시 가해자인거죠.

그 시절의 일들이 종종 떠오르는데 그럴 때마다 죄책감이 들고, 수치심이 들어서 폭식을 해요.




서경씨는 과거에 있었던 일을 자주 곱씹으며 주로 자책, 후회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항상 우울하고 위축되고, 자신이 또 과거와 같은 실수를 하게 될까봐 불안했다.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 표정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보였던 반응 하나하나까지 떠올리면서 의미를 판단하게 되니 그녀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었다. 친구들을 만나고 온 후에는 며칠간은 꼼짝 못하고 집에만 지내기 일쑤였다. 가족들과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나마 자기 방이 가장 편하긴 했지만 사실상 안전한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서경씨는 자신이 이런 생각이 들면, 우울, 불안, 죄책감, 수치심의 감정에 압도 당할 때 폭식하게 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러자 그녀는 제발 이 생각들을 멈추게 해달라고 내게 애원했다. 서경씨는 나를 만나기 전에도 여러 상담센터의 경험이 있었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며 시작부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녀에게 그 생각들을 끊임없이 해서 좋은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녀는 당황하면서 좋은 점은 하나도 없다며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하냐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 인간은 그냥하는 행동은 거의 없다고 해요. 대부분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기 유지가 되는 것이죠. 때로는 그 의미나 효과가 전적으로 동의가 되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의미가 있을 수 있어요. 다시 한번 살펴볼까요?"



잠시 후에 우리는 서경씨의 이런 행동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서경씨는 자신이 했던 행동들을 최대한 곱씹으로 체크하지 않으면 자신이 실수할 것이고 그러면 사람들이 자신이 싫어해서 결국엔 혼자 남겨질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관련한 기억을 탐색해 나갔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가족안에서도 항상 왕따라고 느껴왔다. 한살 아래 동생에게 양보하지 않는다고 엄마에게 항상 혼났고, 그때마다 억울해서 울거나 화를 내면 버릇없는 행동을 한다고 아빠에게 혼나기 일쑤였다.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나쁜 아이, 고집쟁이, 울보, 떼쟁이가 그녀의 별명이었다. 부모님은 항상 동생을 감싸고, 항상 안좋은 일은 서경씨 탓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억울함은 불공평, 부당함, 분노는 물론 무력감마저 느끼게 했다.



내가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믿어주지 않는다. 내 감정을 표현하면 사랑받지 못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나쁜 것이고, 사람들은 그런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들이 그녀를 가득 채워나갔고, 그녀는 가족 안에서의 이런 부정적인 느낌, 자신에 대한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 두려워 모든 사람의 감정을 살피며 눈치보고 맞추느라 항상 불안, 긴장한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서경씨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자신이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믿어주지 않고 자신을 미워하고 거절하는 엄마를 닮는 것이었다. 서경씨는 어려서부터 엄마를 꼭 빼닮았다는 말들을 많이 들었다. 외모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녀의 두려움이 '엄마의 외모, 성격, 이 모든 것은 엄마의 유전자다. 엄마가 내게 그랬듯 나도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엄마처럼 대하게 될지 모른다. 내 안에는 나쁜 유전자가 있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유전자를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을 점점 커지게 했다.


상담 과정에서, 서경씨는 자신이 얼마나 공감적이고, 배려심 넘치는 따뜻한 사람인지 발견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친구들, 동료들이 해주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처음에는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녀 곁에는 그녀를 인정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엄마와 함께 상담을 진행하면서 그녀가 엄마와 관계에서 경험했던 일들을 나누고, 사과와 이해, 화해의 회기들을 거쳤다. 서경씨의 어머니가 수회기 함께 동행하며 서경씨의 불안과 걱정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안아주었기에 가능했다.



이제 서경씨는 더이상 자신의 나쁜 유전자에 대한 불안, 혼자 남겨질 것에 대한 두려움에 압도 당하지 않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수년간 유지되던 폭식으로부터도 자유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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