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에서 경험하는 엄마의 수치심

식이장애이야기

by 길은있다


낫지 않을거라는 것 알아요.
이전에 만난 정신과전문의, 상담사도 다 그렇게 말했어요.
선생님은 다르다길래 마지막으로 한번 와본거지만,
기대는 전~~혀 없어요.



내담자 없이 상담 온 부모님이 하신 첫 마디입니다.


내담자는 어린시절부터 다양한 정신건강상의 어려움으로 심리상담, 놀이치료, 미술치료, 사회성프로그램, 정신분석, 인지행동치료 등등 많은 치료를 받아왔다고 합니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아주 유명한 분들과 최근까지도 만나왔지만 하나같이 포기했다며,

이번에도 치료가 안된다고 해도

저를 원망하지 않는다, 제가 무능해서가 아니라고 합니다.


웃으면서 말하고 있었지만

이야기들 속에서 얼마나 많은 원망, 분노, 실망, 슬픔, 절망이 있었는지 절절히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내담자는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10년 이상의 장기간의 과도한 다이어트, 다량의 다이어트 보조식품,

일상생활이 무너질만큼 불면과 감정기복으로 고통스러워보였습니다.


겉으로는 학교와 직장생활을 유지하며 성과도 내고 있었지만

그 속은 말도 못할 만큼 곪아 있었습니다.


marija-zaric-sPg8paK5lLM-unsplash.jpg?type=w773 출처 : unsplash




부모님도 이렇게 절망하고, 치료 가능성을 믿지 못하는데 내담자는 오죽할까요?


내담자도, 가족도 오랜 치료 기간과 경험만큼 많이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아는 것은 단지 지적으로, 증상이나 심리치료 용어를 알고 있었을 뿐

정작 내담자를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는 전혀 파악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그저 내담자의 고통으로 인한 결과로 나타나는 짜증, 과도한 요구, 비난, 분노에 휘둘리며

눈 앞의 불끄기만 바빴습니다.


음식을 숨겨 달라면 숨겨주고

폭식을 못하게 하니 화가 난다고 하면 음식을 가득 채워두고

살찔까봐 불안하니까 다이어트 보조제를 사달라고 하면 사주고

성형만 하면 안심이 될 것 같다고 하면 성형을 해주었습니다.

치료를 받겠다고 하면 치료기관에 보냈다가

치료 소용없다, 안하겠다고 하면 금방 중단했습니다.

조금 좋아지면 너무 크게 기대했다가

다시 증상(다이어트, 폭식, 구토 등)이 나타나면 엄청나게 실망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가족들이 이렇게 대처하게 되는 것은 사실 매우 흔한 일입니다.

식이장애 내담자들의 고통의 결과로서 예민함과 요구들을 매우 심한 편인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치료 기간동안에 '어머니'가 경험하는 수치심과 죄책감입니다.




나 때문에 아이가 잘못되었다.
내 잘못이다.
나는 엄마 자격이 없다.
나는 모성애가 없다.
나는 실패했다.




상담하면서 만나는 많은 부모님, 특히 어머님들은 이러한 경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치료에 협조하고, 순응하며, 씩씩한 모습일지라도 내면은 이런 상태인 것이지요.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좋은 엄마’에 대한 기대가 매우 높습니다.

아이 문제는 곧 엄마 책임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상담실의 설명은 쉽게 자기비난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vitaly-gariev-p-Of4ousFGc-unsplash.jpg?type=w773 출처 : unsplash





엄마의 수치심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


1️⃣ 방어적 태도


수치심이 커지면 엄마는

치료자의 말을 부정하거나

상담을 중단하고 싶어지거나

“우리 아이는 원래 예민해요.”라고 외부 요인만 강조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아이는 안정적인 치료 환경을 잃게 됩니다.


2️⃣ 정서적 위축

“또 내가 잘못할까 봐…”

이런 불안이 생기면 엄마는 아이의 감정을 대하는 데 위축됩니다.

과잉 통제하거나, 반대로 감정적으로 거리를 둘 가능성도 있습니다.


3️⃣ 불안의 확대

아이는 엄마의 감정 변화를 매우 민감하게 느낍니다.

엄마가 상처받았다고 느끼면 아이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문제야.”

“엄마를 힘들게 하면 안 돼.”


이러한 생각은 아이의 불안을 더 깊게 만들 수 있습니다.




‘마더링 효과’란 무엇일까요?



영국의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컷은 ‘충분히 좋은 어머니(good enough mother)’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 아이의 감정을 담아주고

✔ 불안을 함께 견디며

✔ 점차 아이가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도록 돕는 엄마

이러한 정서적 돌봄이 아이의 안정감을 형성한다는 것이죠.


정신분석 치료에서는 이를 ‘마더링 효과’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아이의 불안이 관계 안에서 완화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중요한 것은 ‘비난’이 아니라 ‘이해’


위니컷이 말한 ‘충분히 좋은 어머니’는 완벽한 존재가 아닙니다.

실수하고, 흔들리고, 다시 회복하는 엄마입니다.

정신분석 치료에서 중요한 것은

엄마를 평가하거나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느끼는 불안과 수치심까지 함께 이해하는 것입니다.

엄마가 안전하다고 느낄 때,

아이도 안전해질 수 있습니다.





불안이 심한 아이의 치료는 아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엄마의 잘못도 아닙니다.

수치심은 관계를 경직시키지만,

공감받은 수치심은 오히려 관계를 회복시키는 힘이 됩니다.

상담은 엄마를 ‘바꾸는’ 공간이 아니라,

엄마와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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