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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은있다 Apr 25. 2023

어제는 거식증, 오늘은 폭식증

식이장애 이야기





“밤새 잠을 미루고 폰을 뒤적이다, 거실을 배회하다, 잠시 창밖도 내다보다가 아침에 잠들어요. 일어나면 부모님은 출근하셨고 저는 부모님 방에 가서 다시 누워요. 부모님이 오시기 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안방 침대에 있어요. 배고플 때면 냉장고를 열어서 먹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빠르게 스캔해요. 먹을 수 있는 것은 샐러드뿐인데 그마저도 지금 먹으면 멈추지 못할 것 같아서 눈으로만 한참 바라보다 다시 안방 침대로 가요. 머리로는 공부할까, 운동을 갈까, 방청소라도 할까 하지만 생각뿐이에요. 그러다 부모님이 오시면 같이 식사를 해요. 종일 굶은 탓에 많이 먹게 돼요. 폭식하는 저를 보는 부모님의 시선에 괴롭지만 멈출 수가 없어요. 아시죠. 선생님? 부모님이 주무시러 가면 저는 침대 끝 부모님 발밑에 자리를 잡고 누워요. 부모님은 아주 싫어하죠. 방에서 가서 편히 자라고 잔소리를 하지만 전 부모님 발밑에서 부모님이 잠들 때까지 있어요. 그리고 텅 빈 거실에서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어요. 이게 지금 제 하루예요"           




그녀를 만난 건 5년 만이다.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기분도 괜찮고, 부모님이 전과 달리 공부하라고 강요하지도 않고 ,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니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처음 만났을 때 29kg에 핏기 없는 얼굴로 앉아있던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그녀는 이전의 시간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연신 "제가 그랬어요?"라며 희미하게 웃는다.      



5년 전에 거식증으로, 오늘은 폭식증으로 그녀를 마주했다.



식이장애의 특징 중에 하나는 진단의 이동이다. 어떤 상태에서 만나느냐에 따라 진단이 달라진다. 과도한 식이제한과 저체중 상태에서 만나면 거식증, 폭식을 동반한 체중회복(혹은 과체중) 상태에서 만나면 폭식증이라고 진단을 한다.           



맨 처음 만난 날, 냉소적인 첫인상과 달리 이내 마음을 열고 내게 의지를 많이 했다.

체중이 증가하면서 아이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한 주 동안 힘들었던 일, 엄마 때문에 화가 났던 일을 화산처럼 쏟아내며 슬픔, 분노, 억울함, 죄책감을 뒤죽박죽 분출하기 바빴다.



아이가 그럴수록 아이의 엄마는 상담실에 오지 않으려고 했다. '주차가 안되어서'라는 말로 매번 아이와 함께 얘기하는 것을 피했다.



어느 날  웬일인지 엄마가 혼자 상담실을 찾았다. 

아이의 엄마는 세련되게 다른 기관에서 상담을 받겠다고 했고, 이미 결심한 듯 웃고 있었지만 어떤 이야기도 전달되지 않았다. 내게는 '아이와도 이미 상의가 끝났고 다른 기관에서 치료를 시작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다'며 성급히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 모습에 나 역시 기운이 빠졌다. 최대한 설득해 보지만 청소년이라서 보호자 동의 없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몇 달 후 아이가 울면서 전화를 했다. "선생님 보고 싶어요. 저 좀 도와주세요" 근처였는지 아이가 약속도 없이 상담실로 찾아왔다.

아이는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있었고 압도당한 듯 횡설수설하며 진정하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다음 상담까지 20분 남짓 시간이 남아서 아이에게 알리고 진정하고 잠시 얘기를 나누자고 했지만 아이는 쉽사리 진정하지 못했고 다시 상담해 달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엄마에게 연락을 하자 엄마는 이전과 같이 근처에 와 있으니 아이를 내려보내달라는 말만 한다. 아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약속된 상담을 마친 후에 다시 만나기로 했지만 상담을 마치고 나니 아이는 가고 없었다. 아이와 엄마에게 여러 날동안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그게 아이와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리고 다시 훌쩍 커버려 성인인 된 아이는 나와 마지막 만남을 기억하지 못했다.      

감정 없이 하루 일과를 읊조리는 아이의 말과 표정을 따라 마치 영화에서 말한마디 하지 않는 주인공을 따라다니듯 관찰하는 느낌으로 나는 아이를 좇았다.    



  

가슴 한편이 저릿저릿 아려온다. '많이 힘들었겠다. 말만 들어도 외롭다'는 내 말에 이런 반응은 처음이라든 듯 당황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그녀가 저체중일 때는 공부도 잘 됐고, 친구들도 날 좋아해 주었고, 부모님도 제발 살아만 있어달라며 내가 원하는 것은 뭐든 다 해주었다. 사랑받는 느낌, 중요한 존재 같은 느낌, 원하는 것은 뭐든 다 해내는 유능감을 모두 다 느꼈다. 그러다 식단으로 중심으로 체중회복에 포커스 된 치료를 받은 그녀는 내면은 그대로인 채로 체중만 회복된 것이 문제였다. 저체중일 때 느꼈던 긍정적인 감정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찐 몸에 대한 느낌과 체중 변화에 대한 친구들의 달라진 태도에 그녀는 집으로 숨을 수밖에 없었다.    


  

저체중일 때 살아만 있어 달라고 애지중지하던 부모님은 이제 또래 아이들처럼 학교도 다니고, 공부도 하고, 평범하게 살라며 저체중동안 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빨리 만회하기를 바랐다.      

그녀 입장에서는 거식증에서 벗어난 것, 체중을 회복한 것에 대한 메리트가 하나도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다시 저체중으로 돌아가 그때 얻었던 많은 것들을 이루려고 종일 배고픔을 참아보지만 용수철처럼 저녁이 되면 식욕이 증가해서 폭식으로 가기를 반복하니 느는 것은 살 뿐이었던 것이다.      



그녀와 부모님에게 물었다. 꽤 오랫동안 식이장애가 유지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녀 자신도, 부모님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기보다 눈앞에 보이는 문제나 문제행동을 빨리 없애거나 바꾸려는 노력에만 열중했기 때문이다. 표면적인 문제만 해결해도 되는 문제도 있다. 그러나 식이장애는 단순히 체중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살이 빠진다고, 살이 찐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그녀의 하루는 온통 외로움이 묻어나 있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늘 외로웠다. 경제적으로 부유했고, 공부도 잘했고,  친구들과도 특별한 문제는 없었지만 그녀는 항상 혼자였다. 혼자 학교에 가고, 혼자 학원에 가고, 식사 시간에도 그녀는 늘 혼자였다. 어려서부터 항상 통통했던 그녀가 운동에 재미를 붙이고 살이 빠지기 시작하자 친구들은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그녀는 '혼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단순히 마른 몸이 아니었다. 29kg가 아니었다. 부모가 자신에게 절절 메며 애지중지하는 것이 아니었다.     

 

외롭지 않고 싶었던 것이다. 혼자라는 생각에 사무치게 슬픔을 느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 깊은 외로움이 '내가 사랑스럽지 않아서, 무가치한 존재라서'라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식이장애는 내가 모르는 것들을 나에게 말해준다.

오래된 사진첩처럼, 다이어트의 역사와 체중의 변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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