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아차산역 5번 출구에 나오자마자 보이는 빨간 소화전 그 옆에 힘없이 소리치고 있는 작은 강아지가 있었다.
나는 건너편 한 카페에 앉아 창밖을 응시 하고 있었다.
가끔 이렇게 앉아 있다 보면 세상은 참 재미있고 신기하다.
여자 아이 두 명이 강아지를 데리고 온다. 소화전에 끈을 묶고는 한참을 쳐다본다. 표정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꽤 감성적으로 보인다. 작은 팻말을 붙이고는 자리를 뜬다.
강아지는 멀리 가지 못하게 줄이 짧게 묶여있고 소리친다. 자신의 운명이 어찌 흘러가는 지도 모르고 뭐가 그리 좋은지 방방 뛰며 꼬리를 사정없이 흘들고 빙글빙글 돈다.
약속 시간도 잊은 채 2시간을 꼬박 그 자리에 앉아서 지켜봤다.
강아지를 이뻐 죽겠다며 쓰다듬는 사람, 버린 강아지라 그런지 얼씬도 하지도 않고 방관하는 사람, 만지지 말라고 핀잔을 주는 사람, 애초에 개가 짖는 말든 관심도 없는 사람, 계속 우니까 배가 고파 그런가 하며 주변 편의점에서 강아지의 먹거리를 조금 사와 먹여주는 사람, 반복되는 일상에 조금은 사소한 이벤트라도 되는 듯 사진을 찍으며 여기저기 전화하는 사람, 크게 이 정도의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정확히 2시간이 지났다. 처음부터 강아지는 거기에 있었던냥 이제는 그냥 하나의 배경처럼 익숙해졌다.
한 청년이 지나가다가 그 강아지를 보더니 바짝 앞에 앉아서 머리를 쓰다듬고 능숙하게 강아지를 앉고 여기저기 살핀다. 녀석 참 잘 따른다. 이내 다시 내려놓고는 강아지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뒷걸음질을 치고 나서 계속 강아지를 쳐다본다. 알 수 없는 눈으로. 그렇게 한 10분은 쳐다봤을까 강아지를 억누르던 족쇄를 풀고는 다시 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팻말을 뜯고는 함께 이동한다.
강아지를 버리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이고
강아지를 데리고 가는 사람의 마음은 어떨 것인가.
버릴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지는 않을까?
데리고 갈 수밖에 없던 사연이 있었나?
어린 시절 키우던 백구의 모습이 일렁여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 일까?
나는 버려진 강아지를 관찰하며 자문 한다.
나는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이 었을까.
보통의 사람들 범주에 속하는 사람일까? 그마저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일까?
나는 어떻지.
저기에 좋고 나쁨은 존재 하지 않는다. 그냥 누군가 강아지를 키우다 버렸고 버려진 강아지는 새 주인을 만났다.그걸 지켜 봤던 한 사내가 있을 뿐이다. 그 후 어떤 결말 또는 과정이 있을까? 혹시 모른다. 사라진 사내는 몇 시간 지나 다시 돌아와 강아지와 팻말을 도로 놓고는 홀연히 사라 졌을지도.
자연스럽게 나의 시간은 흐른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시간들도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