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달아나는 딸을 붙잡고 싶은 아버지
쓰던 카메라를 팔아야 했다. 사진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장비 욕도 같이 생겼다. 나에게 가장 알맞은 장비를 고르다가 이거다 싶은 것을 골라 우선 구매해버렸다. 나는 뭐든 의미를 부여하는 버릇이 있다. 꽤나 오랜 시간 같이한 카메라라 그런지, 나에게 소확행에 의미를 알려준 녀석이라 그런지 보낼 때 꽤나 씁쓸했다. 아빠의 핸드폰은 구매함과 동시에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처럼 항상 새것 같은 외관을 유지하고 있다. 아빠의 성격을 반만이라도 닮았다면 미안한 마음도 덜 했을 텐데... 새로운 주인을 잘 만났으면 좋겠다.
중고나라와 소니 미러리스 클럽에 판매글을 올리자 여러 사람들에게 연락이 왔고 그중 가장 먼저 빠른 거래가 가능하신 분에게 판매를 하기로 했다. 몇 마디 후 쿨하게 거래를 하기 위해 내가 있는 곳까지 오신다는 아저씨였다. 따뜻한 목소리를 듣자 마음이 놓였다. 수화기 너머로 발랄한 공주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약속한 시간과 장소에 아저씨는 딸 하나를 데리고 오셨다. 토요일 업무를 끝내고 약속 시간에 맞춘다고 작업복 그대로 입고 오셨다. 아저씨는 평택에서 수원까지 운전해 오면서 딸과 끝말잇기를 하셨단다.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하는 중에도 끝말잇기는 계속되었다. 생각해 보면 운전 중에 딸과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는 그다지 많지가 않다. 누가 봐도 딸 바보시다. 초등학교 1학년 아니면 2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딸아이는 사랑을 무럭무럭 먹고 자라 밝다 못해 눈이 부셨다. 아저씨의 부탁에 혼자서도 아주 잘 논다. 혼자 놀기의 달인인 공주님을 보니 아저씨와는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나 싶었다. 카메라를 받으시고는 이것저것 살펴보시면서 그 간 어떻게 사용했는지, 주로 무엇을 찍었는지 등에 필요한 질문을 받으면서 성심성의 것 대답해 드렸고 만족하신 듯 보였다. 카메라와 렌즈를 마운트 한 후에 딸에게 포즈를 부탁하자 척이면 척 이쁜 것이 이쁜 짓을 그렇게 잘한다. 보고 있자면 자연스러운 미소는 절로 나온다. 내가 편한 인상이라서 그러셨는지 아니면 딸아이를 바라보는 모습이 마음에 드셨는지 아저씨는 몇 마디 눈치를 보며 말을 이어 가셨다.
주 6일 근무로 딸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는 못해요. 하루는 자고 있는 딸아이를 뽀뽀하고 출근을 했어요. 일을 끝내고 돌아오니 아니 그새 자라 있는 거예요. 믿지 못하시겠지만.... 제 기분 탓인지도 모르겠어요. 몇 년이 지난 지금은 하루하루 딸이 나에게 도망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무섭 더 고요. 사람들은 언제 자라서 효도할래, 언제 커서 아빠 도와줄래 하지만 저는 이대로 그만 컸으면 좋겠더라고요. 아니면 집이 좀 여유로워 커가는 딸의 성장과정을 함께 느끼며 살면 좋겠지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니까요. 애들은 너무 금방 커요. 학생 부모님도 나랑 똑같은 마음이실 거예요. 그래서... 계속해서 도망가는 딸을 제 나름대로 붙잡는 방법을 고민한 결과가 카메라예요. 넉넉한 형편은 아니라 새 것은 힘들 것 같고 찾고 있던 기종이 나왔는데 학생이 찍은 사진을 보고 꼭 사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사진과에요?? 어떻게 하면 잘 찍어요?
사진과는 아니지만 기본적인 지식만 공부를 해서 정말 기본만 알고 있었다. 정말 기본적인 거....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 친절히 설명드렸다.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되고 저렇게 하면 이런 느낌이 난다. 등등 궁금하신 거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오후에 약속이 있어 긴 대화는 나누지 못했지만 아저씨의 인자한 웃음을 보고 있자면 분명 멋진 작품을 오래오래 기록하실 것 같은 기분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달아나는 딸을 붙잡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란 무엇일까. 나로서는 알지 못한다.
우리 집에도 우리 삼 남매의 성장 비디오가 있다. 명절이 되면 그 비디오를 차례로 보며 깔깔 거리며 웃곤 했다. 언제부턴가 비디오를 보면 아득하게 슬퍼 도저히 보지 못하게 되었다. 옛날과 다른 나의 모습이 아닌 부모님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너무나도 무력하다. 무력한 나는 매일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고작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웃음 지어 보이는 거뿐이다. 부모님이 상상하시던 모습은 되어 드리지 못했으니.
그 날 돌아가는 길 엄마에게 전화해서 사랑한다고 말했다. 퇴근하고 돌아온 아버지를 안고 사랑한다고 말씀드렸다. 부모님도 사랑한다고 말해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