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진 Nov 06. 2020

버스

심리


버스


 어제 있었던 일이다. 우리 회사는 일주일에 하루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재택을 하는 날에는 비교적 시간이 자유로웠다. 감당된 일을 모두 마치면 퇴근도 그만큼 앞당겨져 약속을 잡기에 좋았다. 강남역에서 저녁 약속이 잡혀 있었다. 일을 마무리 한 시간이 4:30분 정도였다. 격식이나 체면 차릴 필요가 없는 형과 친구였기 때문에 편하게 나왔다. 나는 수원에서 강남역을 오가는 순환 버스에 올라탔다.


퇴근 시간이라 서울로 가는 버스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버스 시간에 맞추기 위해 조금 달렸던 나는 온몸에 땀이 살짝 나왔음을 느꼈다. 뒤에 앉는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오른쪽 4번째 창가 자리에 앉아서 가쁜 숨을 진정시켰다. 땀이 살짝 마르면서 나른한 기분이 들었다. 의자를 최대한 당겼고 목을 젖혀 창가 쪽으로 고개를 기대 었다. 남에게 피해를 최대한 주지 않으면서 내가 가장 안정을 느끼는 자세였다. 가방을 가슴팍에 안고는 눈을 감았다.


퇴근 시간이라 한 시간 반 정도는 버스에 안에 있었던 것 같다. 잠에서 깨어 보니 우면산터널 안이었다.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의 신음이 조금씩 들려왔다. 앞 좌석 통로 쪽에 어떤 여성분이 앉아 계셨다. 보는 사람도 시원하게 기지개를 켰다. 여성분은 몸을 다 푸셨는지 가지고 있던 에코백 안에서 손거울 하나를 꺼내 자신의 얼굴과 머리 모양 등을 살피기 시작했다. 베르사유 궁전의 벽 한 면을 가져다 놓은 것 같은 손거울이었다. 고의로 본 건 아니지만 내 자세가 너무 안정적이라 고치고 싶지가 않았다.

거울 안에는 한 여성이 있었다. 근대 어딘지 못마땅한 표정이다. 한껏 힘을 준 이마에 짙은 주름이 잡힌다. 뭐가 그리 그 여성을 화나게 만들었을까. 꿈이라도 꾼 걸까? 잠을 설쳐 컨디션이 별로 일까? 약속시간에 늦어 안절부절못한 것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화가 났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얼굴을 사정없이 살피고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손으로 대충 만지나 싶더니 둔탁한 빗을 들어 벅벅 긁기 시작했다. 머리도 대충 끝내고 다시 얼굴을 본다. 역시 화가 잔뜩 나있다. 손거울을 봉인이라도 하듯이 에코백 가장 깊숙한 곳에 사정없이 박아 넣는다. 손을 휘적휘적하더니 거울만한 아이폰 하나가 등장한다. 능숙하게 클릭 두 번으로 카메라 앱이 켜졌다. 액정 안에는 한 껏 부드러워진 한 여성이 있었다.


내가 알던 여성은 더 이상 없었지만 손놀림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얼굴에 구김이 없어졌다. 살짝 미소도 지어 보였다. 이쁜 여성이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어딘지 현실감이 없었다. 위화감마저 들었지만 당사자는 만족한 듯했다. 그 즘 강남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내렸고 그녀는 신논현 쪽으로 걸어갔고 나는 양재 쪽으로 걸어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