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감상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진 May 08. 2016

지금도 있을지 모를 복제인간

#1 나를 보내지마(わたしを離さないで) 리뷰


나를 보내지마(わたしを離さないで)

Never Let Me Go




저는 책과 영화보다 일본에서 2016년 1분기에 방영한 드라마를 먼저 보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집필한 책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2005년에 발표하고 100만 부 이상의 판매율을 기록합니다. 그 힘으로 2010년 캐리 멀리건, 앤드류 가필드 주연으로 영화화되었지만 큰 흥행 기록은 하지 못 합니다. 드라마 또한  평균 6~7(%)로 시청률로 아야세 하루카 주연임에도 불구하고 많이 저조한 건 사실입니다. 많은 분들이 좋은 글을 좋은 영화로 변환시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냥 그 정도로 인정하고 영화를 봅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복제 인간의 장기 이식이 통용화 된 시대를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태어남과 동시에 사회와 완벽하게 격리된 채 인간을 위해 장기 이식이라는 목적만을 가지고 태어난 복제 인간. '제공자'란 사명감만을 주어주는 의문 투성이인 요우코 학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세 사람 쿄코(아야세 하루카), 미와(미즈카와 아사미), 토모(미우라 하루마)에 피할수 없는 운명을 그린 (휴먼) 러브 스토리입니다.



저는 어둡고 무거운 주재를 밝게 표현하려는 작품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잠깐 쉬어간다는 느낌으로 가끔 보지만 '나를 보내지마'는 희망과 절망을 가지고 주인공들을 철저하게 고문하는 칙칙한 분위기의 드라마입니다. 이런 분위기의 작품을 싫어하시는 분들은 다른 것들을 봐주세요. 저는 지금 책을 읽고 있습니다. 원작가와 많은 상의 끝에 각본을 했을 것입니다. 충분히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뚜렷하고 가까운 미래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드라마에서도 많은 생각들을 하기에 충분한 담담한 어조의 독백으로 초지일관 이어갑니다.


 드라마에서 감정선이 조금 흐트러지는 건 사실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일본 특유의 익살(억지)스러운 분위기와 대사들이 다소 존재하고 주변의 열연에 힘입어 열심히 하는 미우라 하루마(어른 토모)가 조금 안쓰러울 정도의 연기력... 그리고 연출을 5화는 요시다 캔(인간 실력, 아르제논에게 꽃다발을), 3화는 야마모토 타케요시(N을 위하여, 가족 사냥), 2화는 히라카와 유이치로(백야행, 나만이 없는 거리) 이렇게 총 10화의 드라마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온 결과인지 처음 타츠코 선생님의 이해할 수 없는 개연성 문제들이 눈엣가시처럼 계속 생각 납니다.



그럼에도 추천하는 이유는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들 때문입니다. 소재는 이름만 들어도 민감한 복제인간입니다. 옛날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에 관한 사건들도 사실 사건의 진위여부를 떠나서 존엄성에 크게 치우지게 되었던 걸로 기억납니다. 거울에 투영된 내 모습을 돼지, 소 보듯 가축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이야기입니다. 복제인간의 존엄성을 우리는 인정 할수 있을까요? 단지 반려견을 보는 시선이 아닌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서 말입니다.


가끔 미래 과학 뉴스와 잡지를 보면 '실제로 이런 게 있다는 거야?'라고 의심 하게 하는 것들이 대중화가 되어있지 않을 뿐 현실에 존재 합니다. 정보는 지나온 과거만큼 점점 거대해지고, 세상은 '편리함' 만을 외치며 지금도 실험의 실험을 거듭하고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호기심은 영원하고 확실한 활기 찬 마음의 한 특징이다.' 사무엘 존슨의 말입니다. 호기심은 활기찬 마음에서 시작되겠지만 만들어진 산물들을 사용하는 건 결국 인간이기에 올바른 쪽으로만 사용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작가는 드라마를 통해 복제인간의 대한 존엄성을 대한 문제, 가치 있는 삶은 어떤 삶인지, 영생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모두의 생각인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주인공들의 가슴아픈 사랑이야기를 통해 차분하고 감정없이 우리에게 말 합니다.


복제의 대한 연구는 지금도 행해지고 있을 것 입니다 어쩌면 이미 우리들의 옆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취득할 수 있는 평균 정보의 량은 우리 몸 안 100조 개의 세포 중 하나 정도의 량도 안될 거라 생각합니다.


브라질에서의 한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듯이 작가는 언젠가는 반듯이 어떤 형태로 다가올지 모르는 이 '복제인간'의 대한 충고와 당부를 작품을 통해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작가의 생각이 궁금하신가요??


Authorling   |  JaoL

Photograph |  JaoL








스포성이 다소 존재함으로

스포의 대하여 민감하신 분들은

윗글까지만 읽고 작품을 감상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를 보내지마 ost

Julia Shortreed

Never Let Me Go




1. 희망을 만들어 주는 교육.

처음부터 끝까지 교육의 중요성의 대하여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백지장 같은 아이들에게 사명감을 심어주기는 누운 말 타기처럼 쉬운 일입니다. 학원 밖 살인마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믿는 아이들을 보면서 5살 터울의 남동생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 동생에게 '너의 진짜 엄마는 부산에 있다. 그 증거로 나는 엄마, 아빠를 닮았는데 너는 아무도 안 닮았지 않느냐?!'라고 지금 생각해도 완벽한 시나리오로 거짓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동생은 정말 순수하게 엄마에게 울며 달려가 진짜 엄마를 찾게 도와달라고 했었습니다. 동생의 어릴 적 사진과 태어날 때의 사진을 보고 그때야 안심을 하고 쭉 엄마 옆에서 잤었습니다. 그만큼 아직 자아라는 것이 없는 시기의 아이들에게 신용받는 어른의 말은 그 아이들의 세계 전부가 됩니다.


동물을 교육하여 인간으로 만드는 건 불가능하지만 인간은 교육에 유무로 동물도 인간도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 영화화의 힘을 쓰고 있는 정글북의 모글리 같은 경우를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복제인간에게 교육이라고 말할수 있는 것을 하고 있는 시설은 요우코 학원 뿐이었습니다. 요우코의 뜻처럼 밝게 떠오르는 희망은 드라마 중간중간에 해뜨는 장면을 통해서 나옵니다. 요우코는 그런 아이들의 10년 20년의 세월의 데이터베이스로 가장 알맞은 교육을 펼치며 아이들을 지키고 있던 거지요. 최초의 복제인간 에미코 선생님도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교육뿐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교육은 드라마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밖에서 교육받고 있는 진짜 인간들의 아이들과 요우코 아이들이 받는 교육 그리고 그 외 시설의 아이들이 받는 교육

어쩌면 복제인간을 똑같은 인간이라고 봐주는 극 중 인물 중에는 타츠코 선생뿐인지도 모릅니다. 진짜 아이들과의 비교는 명제 자체가 안 맞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 요우코와 그 외 시설들의 교육을 비교하면 요우코는 희망을 계속 심어 줍니다. 그게 설령 없는 희망을 심어주는 거라고 해도 아이들은 꿈을 꾸고 그 꿈은 영혼을 비추는 그림으로 나타나게 되겠지요. 보물상자,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아주는 바다, 사랑의 조건적 유예, 영혼을 담는 그림 모두 요우코가 복제인간 아이들에게 주는 희망이라는 교육을 했던거지요. 실제로 요우코출신자들은 오래 산다고 말하는데 삶의 희망은 건강에도 긍정적 영향을 줍니다.



2. 끝이 보여도 우린 사랑한다.

희망은 살아갈 목적을 만들어 줍니다. 그것들을 하나 둘 묵사발 내버리는 드라마의 연출은 가슴 아프다 못해 찢어지고 눈물이 납니다. 저렇게 까지 주인공들을 가혹하게 해야 했나 싶을 정도로 가혹하고 처절합니다. 작가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복제인간은 똑같은 인간이다'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생각을 가지고 있는 복제인간 또한 생식기능은 없어졌지만 육체적 사랑과 정신적 사랑을 합니다. 쿄코와 토모와의 사랑, 쿄코를 향한 어쩌면 조금 와전된 미와의 사랑, 자신또 한 복제인간이면서 복제인간을 경멸을 해버리는 에미코 선생님의 복제인간들에게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 주고 싶은 사랑 여러 형태의 사랑이 존재하지만 포커스는 쿄코와 토모의 사랑으로 맞춰져 있습니다. 안 좋은 쪽을 더 안 좋게 생각하는 쿄코를 좋은 것을 더 좋게 생각하는 토모가 버팀목이 되어주고 마지막 희망까지 없어져 죽음뿐인 토모를 쿄코가 안아 줍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들 뿐입니다. 가축과 인간이 다른 이유는 단순히 모성애, 본능에 충실한 사랑이 아닌 이런 설명할 수 없는 사랑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3. 복제인간이 존재한다면 이렇게 만들어 주세요.

사실 미나미가 광장에서 하는 대사에서 복제인간의 대한 작가의 생각이 다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래 대사는 미나미의 광장에서 하는 대사입니다.


"나는 '제공자'입니다. 그래도 제발 조금이라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나는 어느 시설에서 자랐습니다. 그때는 아직 자신이 제공자라는 것은 모르고, 극히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여러분과 똑같이 놀거나 싸움을 하거나 극히 평범한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제공이라는 사명을 가진 천사라고 배웠습니다. 내 목숨은 누군가를 위해 있다고 배웠습니다. 눈도, 귀도, 흐르는 피도, 맥박 치는 심장도 이건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있는 거라고 바치는 것이 사명이라고 그러니까 너희는 천사라고 그렇게 가르침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상해 봤습니다. 정말로 좋아하는 친구에게 목숨을 준다고 친구가 괴로워하니까, 내 심장을 주는 게 가능할까라고 저에게는 무리였습니다.

비록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저는 제 목숨을 줄 수는 없습니다. 대신 죽는다는 건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천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뭘까요? 천사가 아니면 무엇인지 저는. 저는 보통의, 극히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저의 소망은 극히 보통의 일입니다. 예를 들면, 자유롭게 길을 걷고 싶고 예를 들면, 일이라는 것을 하고 싶고 이상의 장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 아이를 갖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 그런데 그런데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런 사소한 일 이 왜 인가요?

간단합니다. 우리들은 가축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소나 돼지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경도 쓰지 않아요. 이는 아마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나 만약 그래도 우리 같은 존재를 계속해서 만들어 낼꺼라면 제발!!! 부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게 만들어주세요.....

 자기의 목숨은 자신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도록...



이 대사를 듣는데 공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현재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우리는 언제까지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거미가 여러 곤충들을 사냥해서 먹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잔인하다고 생각할까요? 정말로 자연스럽고 상위에 있는 자격과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느 하나 균형이 깨진다면 공생할 수 없지요. 이런 시대의 살고 있는 나라도 똑같이 생각할 거라고 생각 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의 주인공들을 보면 그럴수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과연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게 만들어도 장기를 받을수 있을지는 그 때의 미련에 따라 다를 것 같습니다.


작가의 생각이 다 맞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60억 인류가 존재한다면 60억 만큼 생각들이 존재하겠지요. 어느 하나 정답이 없습니다. 나는 나데로 생각하면 됩니다. 이해를 바란다면 그건 욕심이 되겠지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감동을 받은 이유는 분명 존재 합니다.


작가는 각기 다른 인물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주제들을 여러가지 말하고 있습니다. 저 와는 다르게 느끼시는 분들도 많을 것 입니다. 드라마 보신 분 있으시면 같이 나누어요.


삶 또한 희망고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처럼 계속해서 희망을 주고 도달했을쯤 떨어 뜨리고를 반복하는 것들이 비참하고 처절한 것이 인간의 인생이고 그 것을 지탱해주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들을 보내지 말라는 제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분명 나를 지탱해주는 것들이 여러분들에게도 존재할 거라 확신합니다. 나를 보내지마는 '나'라는 말에 많은 것들이 포함돼있다고 생각합니다.





쿄코의 마지막 독백입니다. 자살하려 하지만 정말 거짓말 같은 일로 살아갑니다.

부모님께서 자주 그런 말을 해주셨습니다. 오늘의 하루가 모여 일주일이 되고 또 하루 들이 모여 1년이 되고 또 그 하루들이 모여 너의 인생이 된다고.

그냥 살아가는 것보다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물음표를 제시해 주는 작품 입니다.




Authorling   |  JaoL

Photograph |  JaoL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브런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