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오된 항성의 자위

by 이동진

낙오된 항성의 자위


우리 집은 유독 우환이 많았다.

거의 엄마 쪽에 겹겹이 쌓이다시피 해서 엄마는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치셨었다.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 엄마의 마지막 오빠가 돌아가셨다.


간암이셨다. 돌아가는 과정이 너무나도 잔혹해서 글로 쓰기가 쉽지 않다.

나는 사람이 두렵다. 그래서 내가 무섭다. 산다는 게 무섭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한때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도 놀잇감이 될 수 있음에 무섭다.

그 사람이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란 게 더 무섭다.


엄마를 사랑해 줬던 윗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게 되었다.

삼촌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엄마가 정말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엄마는 몸을 가누지 못했고 가지 말라고 오빠 가면 나는 어떻게 살라며 절규했다.

화장이 치러지던 날 탈수로 엄마는 기절하셨다.

엄마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눈에도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나는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엄마 옆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걸

신을 믿지는 않지만 기도했다.

엄마가 마음에 안식을 취할 수만 있다면

악마든 신이든 뭐든 간에 상관없다. 우리 엄마를 살려 달라고

나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니 제발 우리 엄마만 살려달라고

무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엄마 말에 무조건 '네'라고 대답하는 거뿐이 없었다.

엄마 마음에 작은 부정도 끼지 않았으면 했다.

내 기도는 지독하게도 이기적인 기도였다. 엄마를 위함도 있었지만

엄마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는 나를 위한 기도였다.

기도조차 이기적인 아들이라 죄송합니다.


한 동안 우리 집은 삼촌에 관한 모든 단어가 금지되었다.

엄마는 평생 흘릴 눈물을 그 날 다 흘렸다 말하셨지만

엄마의 눈물샘은 고장 난 게 틀림이 없었다.

삼촌과 같은 기종을 쓰고 계셨던 아빠의 핸드폰을 보자 눈물을 흘리셨다.

고구마를 보고는 눈물을 흘리셨다. 화장실에 가는 도중에 눈물을 흘리셨다.

해가 밝자 눈물을 흘리셨다. 티브이를 보며 눈물을 흘리셨다.

수시로 삼촌의 기억이 찾아와 엄마의 눈물 댐을 부셔버렸다.

죽은 사람을 붙잡고 놓아주지 못하는 사람의 삶이란

이토록 처절했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며 가족도 같이 울었다.


나는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게 두렵다. 타인이 볼 때 나는 존재 조차 알지 못하는, 오래 보지 않는다면 움직인 사실조차 모르는 항성일지라도 우리 가족에겐 태양 같은 항성이다. 엄마에게 삼촌은 태양이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심지어 가족에게 조차도 작은 존재이고 싶다. 나로 인해 누군가 아파하거나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가져다준 행복과 웃음이 눈부시게 빛나더라도.


다행히도 내 기도가 닿았는지

엄마는 충주에 있는 한 명상센터에서 조금씩 회복을 했다.

둘째 삼촌이 돌아가셨을 때도 다녀오셨던 곳이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준다는 말.

인간이기에 잔인한 말이지만 나에게는 감사한 말이다.


엄마는 마지막 오빠가 돌아가시고 내 인생에서 다시는 웃을 일이 없다고 하셨다.

하지만 어느새 웃고 있는 자신을 보면 산다는 게 뭔지 곱씹는다 하셨다.


모든 걸 견뎌낸 엄마는 매 순간 죽고 싶다 하셨다.

전부 놓고 편해지고 싶다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죽지 못할 이유가 남아 있기 때문이라 하셨다.

그게 어린 내 동생과 나, 그리고 누나였다.

그리고 내가 죽으면 남아 있는 동생들에게

똑같은 경험을 시켜줘야 하는 게 두렵다 하셨다.


사람이 죽지 못하는 이유는 죽음이 두렵기 때문이 아니다.

죽은 후의 상황들이 두렵기 때문이다. 사람이 두려워하는 모든 일이 그렇다.

정말이지 산다는 건 단지 죽지 못할 이유를 늘려가는 시간일 뿐이다.


물론 우리 집만의 특별한 일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걸 안다.

그래서 난 사람을 사랑한다.


작년부터 엄마와 여행을 가고 여행지에서 나눈 대화와 사진 등을 엮어 책으로 만들고 있다.

나중에 아주 아주 나중에 먼 미래에

엄마가 없는 세상에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을 때

내가 죽지 못할 이유를 만들지 못했을 때
이 책이 그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엄마의 바람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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