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아침
전쟁과 같은 아침의 주먹밥
<오늘의 조식, 짜계치와 주먹밥>
맛있는 짜장라면에 치즈와 달걀프라이로 마무리 한 짜계치.
밥과 김자반으로만 만든 주먹밥.
주먹밥 하면 전쟁
나는 주먹밥을 참 좋아한다. 요즘 유행하는 오니기리(삼각김밥), 무스비 같은 것 말고, 주먹만 한 크기로 동글동글 만든 주먹밥. (물론, 삼각김밥과 무스비도 좋아하지만.) 김자반에 조물조물 만든 주먹밥도, 맨 밥에 깨소금, 참기름만 넣어 만든 주먹밥도 좋아한다. 전쟁과 같은 바쁜 아침에 엄마가 빠르게 만들어 준 손 맛 버프일까?
꽤 오래전이라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매년 6월이 되면 학교에서 급식에 주먹밥 혹은 찐 감자가 나왔던 것 같다. 최근에도 6.25 체험 혹은 호국보훈의 달 기념으로 주먹밥 & 찐 감자 급식이 나와 논란이 일었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급식 사진을 보고 "오히려 좋은데?" 했던 나는 꼰대일 수도.
바쁜 아침의 전쟁통 속에 먹던 주먹밥 때문일까, 아니면 영화, 드라마와 같은 다수의 매체에서 전쟁을 다룰 때 한 번쯤은 꼭 주먹밥 씬이 등장해 세뇌를 당한 걸까. 어떤 이유가 됐건, 나에게 주먹밥은 전쟁 혹은 재난이 떠오르는 음식이 되었다.
역덕의 주먹밥
소심하게 밝혀본다. 나는 사실 역덕이자 국뽕 만렙이다. 역덕답게 사극이란 사극은 영화, 드라마 가릴 것 없이 열심히 찾아본다. 작품에 나온 사건 혹은 인물을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에서 타고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기본 옵션이다.
그중에서도 몇 개의 최애를 골라보자면, 드라마 <정도전>, <뿌리 깊은 나무>, <불멸의 이순신>, <태조 왕건>, 영화 <사도>, 그리고 <황산벌>. 의미 없는 첨언을 하자면, 내 기억 속 가장 오래된 사극은 <태조 왕건>이다.
그중, <황산벌>은 어른이 된 후에야 내 최애 사극에 등극했다. 어릴 적, 시험이 끝나고 나면 마치 포상처럼 주어지던 국사 시간의 영화였다. 그때의 <황산벌>은 코미디 영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국뽕 만렙 어른이 되고 난 후에는 단 한 장면으로 내 최애 사극 영화가 되었다.
영화 속에서 계백 장군이 아내와 자식들에게 "명예로운 죽음"을 강요한다.
"길게 끌면 추해지오, 깨끗하게 갑시다."
라는 계백의 말에 그의 아내는 울화통이 터지며, 속사포 랩을 쏟아놓는다.
아내의 대사 한 줄,
"나라가 쳐 망해불든가 말든가! 그것이 뭣인디 니가 내 새끼들을 죽여분다 살려분다 그래야!"
역사 덕후로서의 즐거움이 아니라, 생활 속의 나의 관점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다.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는 역사, 그래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이야기였다.
"황산벌의 계백, 맞서 싸운 관창. 역사는 흐른다."
우리는 보통 역사 속 위인들에게 열광한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속에 소시민은 거의 없다. 우리는 황산벌 전투를 공부하면서 계백의 아내와 그의 자식들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들이 절개를 지키는 마음으로 엄숙하게 죽었을 것이라 "당연스레" 생각한다.
생때같은 자식들의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일 어미가 어디에 있을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전개는 오히려 이 쪽일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
實相. 모든 것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우리는 실상을 잘 알지 못한다. 실제로는 어떤 상황인지, 실제 그 사람은 누구인지. 사실 관심 자체를 주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겉으로 보여지는 대로 받아들이고 내 관점에 맞춰 재단한다. 그저 내 멋대로, 나 좋을 대로 생각한다.
그녀의 울부짖음에 나를 비춰본다.
나는 누군가의 실상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