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방학을 앞둔 18개의 떡잎들에게

From. 1년 농사를 끝낸 초보 식집사가

by 나쁘지 않은 교사


2024년 3월 4일, 교실에서 너희들을 처음 만났지. 갓 5학년이 된 너희는 솔직히 씨앗이라 하기엔 좀 컸지. 그런데 다 자라서 꽃을 피웠냐 하면 너무 작았고. 씨앗 껍질에서 벗어나 힘겹게 흙을 뚫고 세상에 각자의 모습을 내보이는 떡잎 정도 였던 것 같아


이 교실이라는 작고도 큰 화분에 함께하는 1년을 첫 시작하던 날 내가 어떤 마음으로 문을 열었는지 너희는 알까? 마치 무슨 꽃인지 모르는 23개의 씨앗을 선물받은 초보 원예사가 된거지. 동시에 너희도 나의 화원에 너도 모르게 들어온거고.


잎 하나를 맺는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아서 너희는 웃자라서 커지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연약한 마음을 지니기도 했어. 너희를 담기엔 이 화분이 너무 작았는지 뿌리가 얽혀 영역다툼을 하기도 했고. 가끔은 새 화분으로 떠나거나 다른 화분에서 새 떡잎 친구가 옮겨오는 소소한 이벤트도 있었지.


나는 그런 너희에게 쭉쭉 뻗어나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영양제가 되고 싶었고, 해충으로부터 지켜주는 방충제이고 싶었어. 부디 그러지 않길 바랐지만, 혹시 너희의 성장환경에 햇빛과 물이 부족하다면 자연의 것보다는 부족해도 식물등과 분무기가 되어주고 싶었어.


그러나 나는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식물백과를 뒤져보기도 하고 식집사 전문가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어. 이런 초보 식집사를 만난 게 너희의 선택은 아니지만 그래도 화분을 이리저리 옮기고 물을 덜 줬다가 더 줬다가 노력했다는 걸로 조금만 생색을 내도 될까?


때론 너희의 가시에 마음을 찔리고 재배 방식을 당최 모르겠어서 헤메는 날도 많았어. 같은 화분에 있어도 원하는 햇빛과 물의 양이 다 달라서, 나는 그저내가 최고라고 생각하는대로 너희를 돌볼 수밖에 없었지. 아마 그 과정에서 누구는 과습으로, 누구는 수분부족으로 고생했을 걸 생각하면 미안해져.


그래도 얘들아, 나는 떡잎을 본 것만으로도 너희가 어떤 꽃이 될 지 너무 기대됐어. 알아내려고 열심히 관찰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누가 해바라기고, 장미고, 튤립인지는 모르겠더라.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부족해서 몰랐던 건 아닌 것 같아. 너희는 어떤 꽃이든지 될 수가 있는거야. 마음먹으면 풍성한 모란이 될 수도 있고, 훨훨 날아갈 민들레가 될수도 있고 잔잔하게 피어난 들꽃이 될 수도 있어.


피고 지는 시기가 다르고 향기가 다르더라도, 너희는 결국 모두가 꽃으로 피어날 아이들이라는 걸 나는 알아. 그러니 햇빛과 물과 영양을 듬뿍 먹고 예쁘게 피었을 때, 아직도 너희의 정체를 궁금해하고 있을 초보 식집사에게도 알려주렴. 기다릴게.


봄방학 잘 보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