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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리어드 Oct 17. 2023

퇴직 후 공부해야 하는 이유

58년 개띠의 공부도전기 (7)

작년 봄, 친하게 지내던 후배가 퇴직을 했습니다. 경쟁이 치열하고 기술의 변화가 심한 중견 IT업체에서 고위 임원으로 지내던 그는 퇴직 몇 달 전 만났을 때는 양호한 실적 때문에 몇 년은 더 버틸 수 있을거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강제퇴직을 당했습니다. 원래 ‘임원’이라는 직책은 ‘임시직원’이라는 우스개 말로 통하곤 하지만 잘나가던 후배가 그렇게 갑작스레 퇴직을 당할 줄 몰랐습니다. 위로차 만난 후배는 실적도 양호한데 왜 짤렸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배신감을 토로했습니다. 그때 나는 버트란트 러셀의 <철학에 관하여>라는 책에 나오는 ‘닭장 안의 닭’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닭장 안의 닭은 오래 전부터 주인이 사료를 주고, 물도 주고 하며 잘 관리해왔고 어제까지도 주인은 여전히 잘 관리를 해주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잘 관리해 줄거라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갑자기 주인은 닭장 안의 닭을 잡더니 단칼에 목을 베어버리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철학에서 귀납법의 모순점을 지적하기 위해 만든 예화이지만 어쩌면 현대의 직장인 신세와 똑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현대의 직장인은 ‘닭장 안의 닭’과 똑같습니다. 회사가 지금까지 잘 대해주었으니 앞으로도 잘 대해 줄거라고 믿었다가 어느 날 졸지에 쫓겨나게 됩니다. 내 후배에겐 50대 중반까지 직장을 다녔으니 요즘같이 살벌한 세상에 오래한 거라고 위로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9개월 후 후배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런데 9개월이 지난 후의 후배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현직에 있을 때의 민첩함이나 총명함은 사라지고 불안감, 우울함, 무기력한 분위기가 후배를 감쌌습니다. 내 후배는 직장 다닐 때 소위 억대 연봉자였고 나름대로 개인연금에 가입하는 등 노후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한 상태였습니다. 노후준비때문에 다시 생계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동년배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물질적으로 걱정이 없는 그가 이렇게 무기력한 모습으로 변한 것을 보고 놀랬습니다. 후배는 나에게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습니다. 직장 다닐 때의 자존감이 퇴직 후 다 무너지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그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삶의 의미와 자신의 정체성입니다. 직장을 다닐 때는 회사일로 정신이 없어 그런 것을 고민할 시간이 없었는데 퇴직 후에는 그런 것이 자신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앞으로 30년 정도 더 살아야 하는데 지금처럼 살 생각을 하니 암담하다는 것입니다. 아마 먹고 살기에 바쁜 사람들에게는 내 후배의 고민이 배부른 고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고민을 듣고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태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이 쓴 <심리의 발견>이라는 책이 생각났습니다. 그 책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사회의 물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면 곧 신경증도 자연히 사라질 거라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요. 물질적인 문제가 해결이 된 다음에야 실존적인 의문들이 본격적으로 인간의 의식에 파고들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사람들은 스스로를 관조하고 내면의 문제, 존재의 문제를 인식하게 됩니다.”


내 후배를 보면서 우리나라 베이비 부머의 실상을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베이비 부머는 당장 물질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합니다.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인 노후문제 해결에 집중합니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가 우선입니다. 그러나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내 후배의 경우를 통해서, 그리고 빅터 프랭클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바로 존재의 문제가 따라옵니다. ‘나는 이 사회 또는 가정에서 의미있는 존재인가?’,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왜 사는건가?’ 등의 존재론적 질문이 따라옵니다. 회사인간會社人間으로 평생을 살아오다 어느 날 회사라는 조직에서 떨어져 나갔을 때 느끼는 좌절감과 고립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오는 존재의 의미에 대한 생각은 더 불안하고 우울하게 만듭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과정은 모든 퇴직자들이 거쳐야 하는 일종의 관문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관문통과에 실패해 불안, 우울, 초조, 질병 등으로 심신이 피폐해지고, 어떤 사람은 이 관문을 잘 통과해 나머지 삶을 의미있게 보냅니다.


저 역시 이런 관문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문 통과의 방법은 ‘공부’입니다.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를 하면서 삶의 목표와 의미를 찾았습니다. 그렇다고 제 경우처럼 다 대학원에 진학하라는 건 절대 아닙니다. 혼자서도 공부할 수 있습니다. 회사 다닐 때 바빠서 미처 할 수 없었던 분야, 또는 평소에 관심이 많던 분야를 공부하거나 배우면 됩니다. 


저는 제 후배에게 공부할 것을 권유를 하였습니다. 제 후배가 제 조언을 따를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 경험을 통해 볼 때 퇴직 후 공부를 권하고 싶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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