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하지만 가는게 너무 싫은 곳
당신에게 가는 길
3월 첫 날, 그에게 간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고, 프리지아 꽃다발을 사서 그에게 간다. 그에게 가는 길이 그리 반갑지 않다.
아이들도 나도 애써 흥을 내어 보지만 이내 흥은 사라져 버린다. 가서 얼굴이라도, 목소리라도 듣고 오면 좋겠는데, 볼 수 있는 건 사진 속 밝히 웃고 있는 그의 얼굴뿐이다. 사진 속 우리는 참 해맑다, 아이들도 나도 웃는 모습이 참 예쁘다. 그도 그렇다. 투병 중이었지만 참 단단해 보였다. 얼른 이겨 낼 것 같은 강인한 힘이 그의 얼굴에 드러난다. 참으로 인생은 허망하다. 이렇게 빨리, 그가 우리 곁을 떠나게 될지 정말 몰랐다. 아픈 거 하나 없이 건강 하나는 자부하고 살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급히 떠나게 된 건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마른 수건을 챙겨와 그의 얼굴을 닦는다. 춥다는 이유로 그에게 오는 것을 게으름을 부렸다. 먼지가 제법 쌓여있다. 그의 직장 동료들이 왔다 갔는지 담배 두 개비가 태워진 채 덩그러니 남아있다. 그는 알려나,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다녀갔다는 사실을, 하늘에서 보고 있으려나, 급, 궁금해진다. 먼지를 닦고 아이들이 가져온 꽃을 장식하고 밤새 우리가 아빠를 위해 쓴 편지를 떨어지지 않게 붙여둔다. 읽을까? 읽겠지, 읽을 거야. 아빠 사진 앞에 옹기종기 모인 우리는 ‘지나의 행복’이라는 찬송을 틀어두고 그를 소환한다. 그의 입원부터 임종까지 남편과 함께했던 찬송이다. 전주부터 먹먹하다. 행복했던 지난 날 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눈물 날 일 많지만, 기도 할 수 있는 것,
억울한 일 많으나 주를 위해 참는 것,
비록 짧은 작은 삶 주 뜻대로 사는 것
이것이 나의 삶에 행복이라오”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온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는다. 시댁 식구들과 점심을 하고 왔지만, 어느새 허기가 진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내려 탁자 위에 올려둔다. 커피를 마시지 않지만, 커피 향기가 나에게 힘을 내게 한다. 잠시 아무것도 하기 싫은 사람처럼 늘어져 있다가 순간 딱 하고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남편과 함께 운동했던 길을 걸어본다.
그와 함께 걷던 길이지만 그는 없다. 그의 옆에서 종알거리며 웃어대던 내가 보인다. 싸늘한 바람이 나를 감싼다. 날씨도, 내 마음도 아직은 겨울인가 보다. 몸을 웅크리다 낯선 색이 눈에 들어온다.
‘오, 새싹이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나온 싹이다.
대견하다.
참 대견하다. 너도 꼿꼿하게 잘 이겨 내고 있구나.
새싹이 나 같고 내가 새싹 같다는 생각이 들자 픽 웃음이 나온다.
‘그래, 또 살아가야지.’ 나는 옷깃을 다시 여미고 아이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래, 또 살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