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장 떼고 실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시대가 더욱 다가온다
직급과 사번은 기업들의 위계적인 문화를 강화하는 대표적인 인공물이다. 나이와 연차에 따라 상하관계부터 따지는 한국문화에서 몇 년도에 회사에 입사해서 올해 몇 년차이고, 직급이 대략 어느 정도인지는 중요한 정보이다. 이걸 파악하고 맥락에 맞게 대처하는 게 기본적인 회사 생활의 예의처럼 여겨진다.
이런 인공물은 최근 수평적 문화를 지향하는 기업들의 추세와 어긋난다. 아무리 호칭을 님, 프로로 통일해도 회사 인트라넷이나 메신저를 통해 뻔히 입사 연도와 직급을 확인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기존의 연공서열 중심의 위계적 문화가 바뀌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직급과 사번을 볼 수 없게 하는 삼성의 조치는 그동안 깨져있던 인공물의 정렬을 다시 맞춘 사례라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호칭제도를 새롭게 도입할 때 함께 했었어야 하는 조치를 뒤늦게 이제야 하는 것이다.
기사에 나와 있는 한 직원의 말, "수년이 지나면 서로의 직급도 모르고, 또 중요하지도 않게 될 것 같다"처럼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정말 상대방의 직급과 연차를 알래야 알 수 없어서, 보다 수평적인 관계가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2년 전부터 팀 안에서 누누이 주장했던 사내 인트라넷에서 직급과 사번 정보 없애기가 다른 회사에서 실제로 실현되는 걸 보니 뭔가 아쉬운 마음이다. 쩝.
최근 삼성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본다. 조직운영과 수평적 소통에 강점을 보이는 경계현 사장의 선임부터가 하나의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연공서열과 짬바로 버티며 자기 계발을 소홀히 하던 연차 높은 직장인들은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계급장 떼고 실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시대가 더욱 다가오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평생학습은 조직 내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 되었다.
삼성이라는 회사가 우리 사회에 갖는 영향력을 감안할 때 삼성의 변화는 단순히 삼성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경계현 사장 선임 이후 새로운 성과를 낸다면(ex. "삼성전자 20XX년 최대 실적 달성, 비결은 조직문화 혁신"류의 기사가 나올 때) 더 많은 대기업도 삼성식의 변화관리에 힘쓰지 않을까, 예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