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연애

- 오늘부터 1일

by 그래

여느 날과 다름없었다.

그때처럼 내 자리는 사무실 출입문 안, 진도하는 그 뒷자리였다.

책상마다 자리 한 파티션이 시야 곳곳을 가려 주지만, 우리는 괜스레 주변을 자꾸만 살피었다.


[이따 점심 같이 먹어요.]

진도하의 메시지이다.

모니터 구석에 켜 놓은 메신저의 작은 대화창은 내내 진도하뿐이었다.

[네, 좋아요. 근데 어떻게 빠져나가죠?]

[어떻게는요? 당당히 나가는 거죠]


우리 회사는 이제 막 시작한 IT 스타트업이었다.

비록 하는 일이 달라, 부서가 달랐지만, 부서라고 해 봤자 각 부서당 2~3명이 전부였으며

총인원이 15명이 안 되는 작은 회사였다.


때문에 점심시간은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우르르 몰려 나가기 일쑤였다.

이런 사내 문화에서 각 부서의 막내 두 명이 빠져나간 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나만 믿어요]


배짱 두둑한 진도하의 메신저에 난 또 피식 웃음이 나고 만다.

무슨 일이든 별것 아닌 듯이 대하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든다. 움츠리고 눈치 보기 일쑤인 나는

의연해 보이기까지 그의 대답이 늘 편안하다.



"선배님, 오늘 식사 안 하십니까?"

"어~! 도하 씨, 벌써 점심시간인가?"

뒤편에서 진도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오늘 점심은 혹시 어떤 거 드세요? 저는 오늘 시원한 냉면을 먹을까 합니다. 그렇죠? 지원님?"

"네??!!!"

갑작스러운 내 이름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파티션 너머로 살짝 비치는 과장님을 보니 만만치 않게 놀란 눈빛이다.

그런 나를 보며 진도하가 씩 웃는다.

"둘이 오늘 무슨 날이야?"

"아뇨~ 지원님이 저한테 빚진 게 있어서 고맙다고 밥을 사신대요."

"아~ 그런 거였어? 그럼 오늘 점심은 둘이 먹어야겠네?"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 먼저 다녀오겠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그래그래~ 다녀와요."

"지원님 가시죠!"


진도하는 어느새 사무실 출입문 가까이에 서서 문을 반쯤 열고는 나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여기서 내가 할 일은 그의 뒤를 따라 조용히 나가는 것뿐이었다. 정말 나는 그만 믿으면 되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맛있는 식사 하세요."

진도하의 뒤를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이내 우리는 문을 닫고 둘이 나섰다.



"휴........"

"지원님, 내 말 맞죠?"

"뭐가요?"

"나만 믿으라고 했잖아요"

"아... 하하 네, 맞아요. 그래서 오늘 난 그 빚을 갚는 자리인 거죠?"

"오! 전 이래서 정말 좋은 선배를 두었다고 생각합니다."

"오! 전 정말 무서운 후배를 두었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진도하가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본다. 웃으며 걷던 나도 그의 멈춰 선 발걸음에 속도를 늦춘다.


"아니다. 우리 선배, 후배, 지원님, 도하님 이거 이제 그만해요."

"네?"

"지원아,라고 불러도 돼요?"

"네에????! 갑자기요?"

"안돼요?"

갑작스러운 그의 물음에 발걸음뿐만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이 멈춰버린 기분이었다.

아직 우리가 이렇게 나란히 걷는 것도 어색한데, 호칭까지 바뀔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여긴 회사 근처고, 우린 사내연애 중임이 들키면 안 됐고... 이런저런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친다.



"안돼요...?"

"네, 안돼요."

나의 단호한 대답에 이내 풀이 죽은 듯한 그의 두 눈이 살그머니 내려앉는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걸까?

다시 발을 떼며 걸으려는 그에게 나는 말했다.

"지원아 안되고, 누나까진 봐줄게요."

"네?? 누나요??"


진도하의 기다란 눈이 유난히 동그랗다. 좀 전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뒤돌아 선 진도하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에게 되물었다.


"네, 누나요. 그것까진 봐줄게요."

"하!"


하늘을 보며 이마를 짚은 그의 손이 유난히 하얗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를 보자니, 묘하게 웃음이 난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움직인다. 유난히도 상쾌한 가을바람에 내 마음도 구름같이 따라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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