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해남에 다녀왔다. 15일(목)-20일(화)
내려가기전에 방문묘 만든다고 난장판 버리다가 어쨌건 무거운 마음을 안고 버스를 탔다.
아침 9시 버스를 타서 낮에 도착했고 장보고 집밥을 먹으며 술을 마시며 블라블라.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침에 밥먹고 오전에 밭일 잠깐하고, 점심먹고, 황이 산책시키고, 서울 일 할거 재택으로 하고, 저녁먹고. 하루 끝/을 몇 번 반복한듯. (아 중간에 재재pd보러 전주가고 정읍에도 갔구나)
해남 사진을 sns에 올렸는데 '보기좋다'는 반응들이 있었다. 좋았지! 하지만, 한편으로 '아 내가 이런걸 전시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뭐 그건 너무나 당연한것이지만(그럴거 아니면 왜 올렸냐??) 행복함을 전시한다, 라는 느낌이 들어서 그것이 괜히 누군가에게 박탈감을 주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남의 인스타같은걸 보면서 그들의 눈부신 행복함에 깜짝 놀랄 때가 있어서. 이제 뭐, 그런것이 그 사람의 생활 속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있지만 뭐가 됐든 sns를 보는 시간은 하루에 한두번, 일정하게 정하는 게 좋은 것 같단 생각이 새삼 든다. 특히 밤에 자기전에 보는건 영 별로인 것 같단 말이지. 요즘 왜인지 (내 기준에선) 인스타그램을 자주한다. 스토리를 할 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뒷북을 울려라)
#1. 황이를 보면서는 '이름을 인식'한다는 것이 관계의 시작이라는 것. 사회적 개인으로서 약속에 편입되는 첫 단계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황이야'라고 불러도 그게 자기를 부르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우리의 천둥벌거숭이. 두리번거리는 눈빛. 이 세계안에 못박히는, 좌표를 갖게되는 것이 바로 타인이 나에게 부여한 '이름' 그것을 통한 관계의 시작이라는 것이 뭔가 '방치'가 왜 학대임을 다시금 생각하게하고. 사회적으로 길들여진다는 것은 이 세상안에서 나를 명명하는 '무엇'이 있다는 것을 나와 타인이 공통으로 아는 것이라는 점이 왠지 쓸쓸한 이유는 뭐지?
=> 아주작은개 치키티토가 다시 한번 생각났다.
곰순이랑 갔던 산책로를 함께 간 것도 인상적이었고, 황이가 지나갈때 동네개들이 보이던 반응(대문 밑으로 코를 쏙 내밀던)도 재미있었다. 야아. 곰순이 다닐때는 별로 신경도 안쓰더니 이놈들아ㅋㅋ
개를 훈련시키는 기초적인 방법을 알아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차, 흥분한 댕댕이의 입 근처에 손을 갖다대면 절대 안된다는 것(다행히 쎄게 안깨물렸다 ㅠㅠ 큰일날뻔)도 배웠다.;; 화요일 아침에 서울출발하기 전에 잠깐 산책하고 헤어지는데, 그리고 짐싸고 나오면서 차 타기 전에 인사를 하는데 황이가 나 가는거 아는 것 같았고 막 슬퍼하는 것 같았다 ㅠ_ㅠ 곧 보자. 예전에 널 보면서 '저렇게 짧은 줄에 매여서 일평생 산다면 자살할 수 있다면 그걸 선택하겠다'고 생각해서 미안해. 산다는 것은 오랜 인내끝에 잠깐 기쁨의 찰나가 있다는 것으로도 유지되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리고 마음 속에 계속해서 어수선하게 떠도는 황이가 개장수에게 팔려갈 수 있다는 불편한 현실...)
#2. 나 왠지 농사 잘 지을 것 같다. 근데 요즘 관심있는 것은 축산.
#3. 닭장이 있어서 가만히 그걸 지켜보는데 남들 말하는 불멍같은거랑 비슷한 효과가 있는듯도? 계속 뭔가를 한다. 신기해. 무섭고. 수탉이 있어서 어쩌고해서 낳으면 유정란이고 안어쩌고해서 낳으면 무정란이라고 한다. 수탉과 암탉의 비율은 1:15. 그냥 무정란 먹음될 것 같은데 왜??
#4. 심지어 월요일 저녁엔 스카이프 상담까지 했다. 아 이날 정말 많이 울었다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