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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주 Jul 15. 2024

7. 생각은 부정확하다

생각과 거리두기

지금까지 이야기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선 1번부터 3번 명제까지는 생각 그 자체의 특성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생각하는 나’는 착각이고(명제 1), 생각은 마음속에 자동적으로 떠오를 뿐입니다(명제 2). 더 문제는 그러한 생각이 아주 상징적인 효과를 지닌다는 것이었죠(명제 3). 그 결과, 우리는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에 아주 취약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디스턴싱, 즉, 생각과 거리를 두는 일이 중요합니다(명제 4). 이때 거리를 둔다는 건 생각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을 뜻했습니다. 우리의 의제는 생각의 구체적인 내용 자체가 아니라 생각과의 관계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생각을 하나의 심리적 사건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명제 5). 그 방법으로는 생각의 강, 생각의 하늘, 생각의 공장을 통해 마음속에서 생각을 생각으로 바라보는 공간감을 마련하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한편 그렇게 생각을 관찰하다 보면 생각이 그저 단편적인 생각으로 떠오르기보다는 감정, 감각, 충동 등과 함께 뒤섞여 하나의 꾸러미처럼 떠오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명제 6). 이러한 생각은 제법 복잡하고 강렬해서 거리를 두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꾸러미를 마주하면 이를 상황, 생각, 감정, 감각, 행동/충동으로 분리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와 같은 ‘알아차리기’와 ‘분리하기’만으로도 생각을 마음속의 강, 하늘, 공장 저 편으로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영향을 받지 않고 흘려보내는 것이지요.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과정이 쉽지가 않습니다. 좀처럼 생각을 흘려보내기가 힘듭니다. 어떤 생각들은 유달리 흘려보내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생각이 본질적으로 우리를 현혹시키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생각 그 자체로 바라보지 못하고, 실제이자 현실, 그리고 사실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러한 생각들은 거리를 두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쉽게 빠져들기 쉽고, 그래서 거리를 두는 게 쉽지 않은 유형의 생각을 ‘생각함정’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앞으로 여섯 가지 종류의 생각함정을 배우고, 또 그러한 생각으로부터 거리두는 연습을 진행해 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반드시 이해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생각함정을 다루다보면 마치 생각의 내용을 다루는 것이 그 목적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즉, 어떤 생각들은 ‘틀렸으니’ 바꿔야 하고, 또 어떤 생각들은 ‘부정적이니’ 다른 생각으로 대체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디스턴싱의 개념과 목적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의 내용을 ‘교정’하고자 그 내용을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개별 생각들을 살펴보는 것은 생각이 얼마나 부정확하고, 또 때론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인지 진심으로 이해하기 위함이지, 더 긍정적인 또는 더 나은 생각을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앞으로 생각 함정을 설명할 때 이 부분은 반복해서 강조하겠습니다. 그때마다 우리의 초점은 내용이 아니라 관계라는 것을 되새기길 바랍니다.


첫 번째로 다뤄볼 생각함정은 ‘근거 부족’입니다. 생각은 부정확합니다. 아주 부정확합니다. 우리의 추론 과정은 얼마나 부실한지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들 중 절대적인 사실로 믿을 만한 것은 거의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생각이 부정확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단 몇 가지 정보만으로도 빠르게 결론을 내려 조치를 취하도록 진화해왔습니다. 잠시 시간을 거슬러 아주 먼 과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두 유인원이 넓은 들판 위를 거닐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수풀에 낯선 소리가 들려옵니다. 무언가 튀어나올 것만 같습니다. 한 유인원은 섣부르게 판단합니다. “뭐야? 위험해. 일단 피해야겠어.” 다른 유인원은 더 신중하게 판단합니다. “낯선 소리가 들려오네? 뭔지는 모르겠어. 그렇다고 꼭 위험하다고 할 순 없지. 크기는 큰가? 이빨은 날카롭나? 공격적인가? 조금 더 살펴보자.” 이제 시간이 충분히 지납니다. 이런, 두 번째와 같이 생각한 유인원은 모두 멸종해버렸네요. 자연의 선택을 받은 건 부족하거나 부정확한 정보만으로도 빠르게 결론을 내린 유인원들입니다.


이처럼 기본적으로 우리의 추론 과정은 부정확할 수밖에 없습니다. 충분한 근거가 쌓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결론을 내리면 우리는 일을 효율적으로, 그리고 안전하게 처리할 수 없습니다. 광활한 대지에서 살던 시절에는 더더욱이 그랬지요. 부족한 근거에 기반해 추론을 하는 우리의 특성은 생존에 필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 그 특성은 제법 큰 문제를 야기하곤 합니다. “아,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구나.”, “첫 번째 문제부터 어렵네. 이번 시험은 망했다. 나는 끝났구나.”, “오늘도 뉴스 기사에는 안 좋은 이야기밖에 없네. 세상은 끝없이 안 좋은 방향으로만 흘러가. 미래가 암담하다.” 이런 생각들은 끊임없이 마음속에서 되풀이되며 우리를 괴롭힙니다. 아주 사실처럼 보이기 때문에 거리를 두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근거 부족’ 생각함정은 특히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처럼 정신건강 문제가 있을 때 더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우울증을 앓는 건 마치 색안경을 쓴 것 같습니다. 나 자신, 다른 사람들, 그리고 이 세상, 그 모든 게 다 희망 없고, 부정적이고, 안 좋은 방향으로만 흘러갈 것 같습니다. 삶의 좋은 면보다는 나쁜 면이 더 많이 부각됩니다. 삶이 좋게 흘러갈 이유보다는 나쁘게 흘러갈 이유를 더 찾습니다. 언젠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과 이런 대화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세상은 어차피 나쁘게만 흘러가잖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근거가 있을까요?”

   “양극화는 심해지고, 빈부격차는 높아지고 있어요. 뉴스에서는 끊임없이 온갖 범죄들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오고요.”

맞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분명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정확히 정반대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 100년 간 인류는 끊임없이 진보해왔고, 개개인의 생활 수준은 아주 높아졌으며, 이제는 모두가 마리 앙투아네트가 누렸던 호화를 누릴 수 있는 시대까지 다가왔다고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얼마나 특정한 생각에 고착화되어 있는지,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조악한 근거 위에서 섣부른 결론을 내리는지’입니다. 특히 이러한 결론은 내면을 향할 때 더 치명적입니다. “내가 다 망쳤어”, “이번 실패는 치명적이야”, “내 삶은 망했어”,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게 분명해.”


좀처럼 거리를 두기 힘든 생각을 발견한다면, 그리고 그 생각의 내용이 어떠한 것에 대해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라면 다음과 같은 연습을 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우선 판단 또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 생각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해당 생각을 일반적인 명제처럼 바꿔봅니다. 이후 해당 명제가 성립하려면 어떤 요소들이 필요한지 적어봅니다. 마지막으로 해당 요소들은 나에게 얼마나 해당하는지 점수로 매겨봅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습니다.   

생각: “이번 실패는 치명적이야.”

일반적인 명제: 어떠한 시도가 치명적으로 실패했다.

명제가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 (나에게 얼마나 해당하는지)

        > 아주 큰 금전적인 피해를 끼쳤다 (60)

        > 다시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수 없다 (10)

        > 비슷한 실패 후 극복한 사람이 거의 없다. (10)


다음으로 할 일은 앞서 정리한 ‘일반적인 명제’와 정반대인 명제를 설정하여 동일한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습니다.   

일반적인 명제: 어떠한 시도가 제법 성공했다.

명제가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 (나에게 얼마나 해당하는지)

        > 아주 큰 금전적인 보상을 얻었다 (0)

        > 시도 이후 배운 것이 있다 (50)

        > 시도가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조금 더 명확하게 알려준다 (50)


마지막으로 할 일은 두 결과를 놓고 나의 생각은 얼마나 절대적인 사실인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예시에서 “이번 실패는 치명적이야”라는 생각은 어느 정도는 맞고 어느 정도는 틀린 것 같기도 하네요. 나는 제법 큰 금전적인 피해를 끼쳤지만, 또 그렇다고 비슷한 실패 후 극복한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명확히 배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고, 아직은 불명확하지만 그래도 어떤 점을 개선하여 다시 시도해야 하는지 힌트를 얻은 바도 있습니다.


위와 같은 작업의 목적이 ‘생각의 내용을 바꾸거나 생각이 틀렸음을 증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이해해야 할 메시지는 생각이 이토록 부정확하다면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에 곧바로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진심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생각과 거리두고, 생각을 흘려보내는 일이 더 수월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근거 부족’ 생각함정을 찾고 위와 같은 연습을 해보는 건, 이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생각은 부정확합니다. 그러니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에 강하게 영향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나의 생각에서도 ‘근거 부족’을 발견한다면 생각과 거리를 두고 생각을 그저 하나의 심리적 사건으로 대할 수 있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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