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 숭배 과학

디스턴싱 001

by 홍승주
- 우울, 불안 관리를 위한 인지행동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 본 연재물은 출판사와 함께 위와 관련된 주제로 한 서적 출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리된 내용입니다.
- 게재된 글은 탈고를 거치지 않은 글로, 출간될 글과 비교하여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출간 이후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 글은 한 달에 약 1,000명 정도의 온라인 인지행동치료를 진행하는 저희 팀의 경험과 배경 지식, 그리고 정신과 의사, 상담사 등으로 구성된 디스턴싱 연구팀의 자료조사에 기반해 작성되었습니다.
- 다만 충분한 탈고와 본격적인 검수를 거치진 않았으므로 참고용으로만 가볍게 살펴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글은 이전 글과 이어지므로 제목에 있는 번호 순서대로 읽어주시면 좋습니다.
- 글에 나오는 예시는 모두 당사자의 동의를 얻은 후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상세 내용을 충분히 각색하였고, 이름은 의도치 않게 국내 특정 인물을 지칭할 수 있기 때문에 외국인 가명으로 변경하여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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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군은 남태평양의 일부 섬에 비행장을 만들었다.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은 비행기가 비행장을 오가며 신기하고 유용한 화물들을 가져오는 것을 보게 된다. 이후 전쟁이 끝나자 비행기는 섬을 떠났다. 하지만 원주민들은 신성한 화물이 다시 나타나길 원했다. 어떻게 했을까?


그들은 비행장을 재현하기로 한다. 활주로와 비슷한 것을 만들고, 불을 지펴서 유도등을 만들었다. 오두막으로 관제탑을 만들었고, 나무조각 두 개를 헤드폰처럼 만들어서 머리에 착용했으며, 대나무로 안테나도 만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본 장면을 최대한 구현했지만, 아쉽게도 이런 식으로 숭배한들 하늘에서 신성한 화물이 떨어질 리는 없었다.


위대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은 1974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이 이야기를 비유로 사용하여, 겉모습은 과학 같지만 실제로는 과학적 정신을 따르지 않는 연구나 활동을 ‘화물 숭배 과학(Cargo Cult Science)’이라고 불렀다.


마음의 치유를 이야기하는 다양한 주장들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많이 관찰된다. 유튜브에는 온갖 비과학적인 주장으로 마음의 구원을 이야기하는 콘텐츠들이 범람하고 있다. 때로는 과학적이지만 임상적이지 않은, 즉 과학에 기반하여 정확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것이 인간의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정확히 검증하지 않은 방법론들이 하나의 치료법으로서 인기를 끌기도 한다.


이와 같은 ‘화물 숭배 정신의학’이 만연하는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마음이 애초에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주제이기 때문이다. 가장 낮은 차원의 화물 숭배 정신의학은 추상성 자체에 의존한다. 마음은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오직 언어적 보고와 간접적인 행동 지표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마음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추상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고, 그 틈을 ‘그럴듯한 이야기’들이 쉽게 파고든다.


나는 시간만 주어진다면 제법 혹하게 들리는 엉터리 마음 이론을 수십 개도 만들어낼 수 있다. 당신이 분노하는 건 진짜 화나서가 아니라, 뇌가 ‘열받은 척 연기’하는 걸 자기가 속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분노는 일종의 1인극이라고 할 수 있다. 연극적 분노 이론이다. 흥미롭지 않은가? 나조차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이론이지만, 몇 가지 자연과학적인 원리를 덧붙이면서 진지하게 설파했다면 누군가는 설득되었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힘든 사람들은 이러한 화물 숭배 정신의학에 쉽게 현혹되기 쉬운 심리 상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고차원적인 화물 숭배 정신의학은 보다 과학적인 형태를 띤다. 특정한 자연과학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정신질환의 치료를 주장하는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주장들에 대해 논하는 건 조금 조심스럽다. 분명 정신의학은 자연과학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러한 자연과학적 지식이 실제 인간을 치료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정신건강 관련 자료들을 살펴볼 때 우리는 종종 뇌영상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의 발전은 뇌에서 어떤 영역이 활동하고 있는지를 관찰할 수 있게 해 주는 영상 기법이다. 기본 원리는 간단하다. 뇌가 활동하면 그 부위의 혈류와 산소 소비가 증가하는데, 이때 생기는 혈액 내 산소화 상태 차이를 측정하여 특정 뇌영역의 활동 정도를 색으로 표시해 보여주면 된다.

이는 분명 혁신적인 기술이다. 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신경과학과 정신의학 영역에서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뇌영상은 정신치료와 약물치료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 주고 있다. 나 또한 앞으로 그러한 연구를 많이 인용할 것이다.


하지만 특정 뇌영역에서 활동이 많았다는 건, 문자 그대로 그 부위의 혈류와 산소 소비가 증가한다는 뜻이다. 그 정도의 관련성이 있을 뿐이다. fMRI는 신경세포의 전기적 활동을 직접 측정하지 않는다. 즉, fMRI는 ‘뇌의 어떤 부위가 더 많이 일하고 있는가’를 추정하는 도구이지, ‘무엇을 생각하거나 느끼고 있는가’를 읽는 도구는 아니다. 따라서 실제 마음이 치유되는지는 또 다른 측면에서 별도로 검증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이러한 자연과학적 사실은 종종 교묘하게 임상의학의 지침으로 변질되곤 한다.


누군가 고양이를 주기적으로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불안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고 생각해 보자. 고양이를 쓰다듬으면 분명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걸 보면 그럴듯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이때 고양이를 쓰다듬었더니 뇌영상에서 A라는 뇌부위가 활성화되었다고 해 보자. 한편 A라는 부위는 불안장애 환자들에게서 과활성화되어 있고, 항불안제 치료를 받으면 이 부위의 활성이 줄어든다. 이제 이 사실들을 단순히 논리적으로 엮어보면 “고양이를 쓰다듬으면 항불안제를 먹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고양이 쓰다듬기 마음 훈련’ 이다. 누가 그런 주장에 넘어가겠냐 싶지만, 그럴듯한 과학적 발견들로 포장한 뒤, 정서적 촉각 조절 가설(Affective Tactile Modulation Hypothesis)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조금씩 숭배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뇌영상의 해석은 상관관계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식의 과잉 단정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정말로 고양이 쓰다듬기가 불안장애를 치료하는지 검증하기 위해서는 많은 조건들을 통제하고, 무작위성을 담보한 임상시험을 진행하여 정말로 원인(고양이 쓰담듬기)이 결과(불안의 완화)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 확인해야 한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검증했을 때 정말로 불안이 감소되는 게 확인된다면 그제서야 우리는 “고양이 쓰다듬기가 불안을 다스리는 데에 효과가 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흔히 만날 수 있는 자연과학적 주제 중 하나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다. 신경가소성이란 뇌가 경험과 학습, 손상 등 다양한 자극에 반응하여 신경회로의 구조와 기능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뜻한다. 과거에 우리는 뇌가 거의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대 신경과학 연구는 뇌가 평생에 걸쳐 새로운 연결을 만들거나 기존 회로를 재조정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발견은 기억과 학습, 재활치료 등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분명 신경가소성은 인간의 회복 가능성과 잠재성을 보여주는 희망의 개념이다.


하지만 신경가소성이 치료 효과의 보증서는 아니다. 때로 이 개념은 “무엇이든 가능하다”라는 식의 과도한 낙관적 환경론으로 이어지곤 한다. 임상적 근거가 부족한 치료법이나 조언도 신경가소성을 토대로 설명하면 제법 정당한 지위를 부여받곤 한다. 신경가소성을 언급하며 인간의 뇌에는 무궁무진한 유연함이 있다는 걸 말한 뒤, ‘이 방법’이 신경을 유연하게 만든다는 식이다. 종종 그러한 주장에는 “뇌 영상에서도 확인되었다”라는근거가 따라붙기도 한다. 그러나 신경 가소성이 그 모든 주장의 근거를 보장해 주는 건 아니다. 신경가소성이 무한한 변화의 잠재성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환경이라는 이름의 글자가 쓰이길 기다리는 ‘빈 서판(blank slate)‘이 아니다. 신경 가소성은 ‘학습과 발달의 원리’라는 또 다른 분석 차원에서 검토해야 할 문제이지만, 종종 어설픈 견해들을 신경학적 이야기로 치장하는 데에 남용되곤 한다.


어떤 주장이나 치료법이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그 주장이나 치료법을 적용했을 때 치료가 되는지’에 대한 인과관계를 직접적으로 확인하는 길밖에 없다. 뇌영상으로는 부족하다. 신경 가소성이나 후성유전학(epigenetics) 같은 멋드러진 개념으로도 부족하다. 동물실험의 결과도 마찬가지다. 쥐의 한쪽 몸통에서 털이 풍성하게 자란 사진과 함께 “드디어 탈모의 비밀을 밝혔다”라는 헤드라인이 걸린 기사를 수없이 많이 보았지만, 그러한 섣부른 결론은 결국 탈모약을 복용하고 있는 나를 포함한 수많은 남성들에게 희망의 눈물만 안겼을 뿐이다.


신경과학적 개념이나 뇌영상 결과들이 무의미하다는 건 결코 아니다. 이 책에서도 그러한 개념들이 많이 인용될 것이다. 하지만 자연과학적 발견들은 현상을 보다 잘 설명하는 데에 활용되어야지, 그 자체로 임상적으로 덜 증명된 특정한 작업이 마음을 치료해줄 수 있다는 직접적인 근거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일부 사람들은 자연과학적 상관관계를 임상적 인과관계로 둔갑시키는 점프 컷 을 통해 유명세를 얻곤 한다. 그러한 유명세는 마음이 힘든 사람들의 소중한 기회 비용으로 쌓아 올려졌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화물 숭배 정신의학적 점프 컷은 흔히 자연과학적 사실을 다룰 때 자주 발생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제법 매력적이다. 바닥에서부터 하나씩 정보를 쌓아올리면서 “우리의 뇌에서 이러한 사실이 관찰되었고, 이 구조는 이러한 부분과 연관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불안이 해결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주장은 얼마나 논리적이고 매력적인가. 하지만 역시나 정말로 그것이 인류를 괴롭게 하고 있는 우울과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지는 별도로 검증해 보아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자연과학은 ‘무엇이 일어나는가’를 설명하지만, 임상의학은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가’를 검증한다. 전자는 설명의 과학이고, 후자는 개입의 과학이며, 이는 별개로 검증해야 할 영역이다.


사실 현대의학이 활용하고 있는 수많은 치료법들은 아직도 그 정확한 기전을 밝히지 못했다. 흔히 사용하며 효과가 알려져 있다고 알려진 약물들 중 많은 것들이 우연한 발견에 의해 개발되었다. 알렉산더 플레밍은 1928년에 페니실린을 발견했다. 이 발견은 수많은 감염질환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켜주었다. 하지만 그 작용 기전이 분자 수준에서 명확히 규명된 것은 약 40년이 지난 뒤였다. 만약 40년 동안 이 축복 받은 발견을 주된 방법론으로서 받아들이고 소통하지 않고 특정한 자연과학적 사실에 입각해 추론해낸 방법론에만 의존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곧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현대 정신의학에게 페니실린은 약물치료와 심리치료 두 가지 뿐이다. 특히 심리치료 중에서는 인지모델(cognitive model)에 입각한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 CBT)가 압도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 구체적인 기법이나 지향점은 조금씩 달라도 대부분의 근거 중심 심리치료 기법들은 이 인지행동치료에서 파생되었다. 인지모델의 주장은 간단하다. 사람들이 특정한 외적∙내적 경험을 해석하는 방식이 그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유지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지구상 모든 종 중에서 유일하게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가능한 인간에게는 그 어떤 다른 종보다 더 광범위한 모습으로 정신건강 문제가 나타난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다.


인지행동치료가 가장 잘 입증된 심리치료 방법론임에도 불구하고, 인지모델에 대한 오해를 주입 받은 사람들은 종종 적절한 개입법을 놓치게 되곤 한다. 내가 만난 엘리자베스는 그런 관점을 가지고 디스턴싱을 시작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녀는 내게 디스턴싱이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인지이론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어디선가 생각이 바뀐다고 기분이 달라지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결국 나는 자연과학과 임상의학은 목표가 다르다는 것, 인지행동치료는 현대 인류가 가지고 있는 가장 광범위하게 입증되고 강력한 심리치료 기법이라는 점, 이때 이 인지행동치료의 원리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것이 인지이론이라는 점, 물론 이것이 인간의 사고와 정서의 모든 부분을 설명해 주지 않는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론과 치료법은 그녀가 겪고 있는 심리적 괴로움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 주고 해소시켜줄 것이라는 점을 거의 4주에 걸쳐 끈질기게 이야기하고 나서야 치료에 대한 그녀의 마음을 열고 본격적인 디스턴싱 연습에 돌입할 수 있었다. 그리곤 2주 후 그녀가 말했다. “요즘은 괴로운 생각을 마주해도 제법 덤덤히 지나갈 수 있는 거 같아요!” 이처럼 때론 잘못된 오해를 해결하는 데에 치료 작업보다 더 많은 자원이 쓰이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과학적 지식을 탐구하는 일을 매우 좋아한다. 종종 비생산적으로 보이지만 그러한 지적 향유는 삶에 새로운 흥미로움을 가져오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의 치유가 목표라면, 어떤 아름다운 자연과학적 진리 같은 이론을 찾아 헤맬 필요는 없다. 사실 그 어떤 접근도 모든 현상을 온전히 설명해 주진 않는다. 인간의 사고와 정서, 그리고 의식에 대한 대부분의 지식들은 여전히 아주 편협한 수준이며, 우리는 그중 아주 일부 조각들만 이해하고 있다. 특히 많은 지식들은 여전히 실험의 윤리적인 이유로 인해 동물 실험 결과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에 비하면 인간에 대한 연구는 극히 제한적으로만 탐색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많은 유튜브 영상들, 심지어는 일부 치료자들마저도 이론적 신념을 내세우느라 충분히 검증된 방법론들을 등한시 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질병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질병만 바라보면 좋은 치료는 요원하다. 그 질병을 설명하는 이론만 바라보고 있다면 말할 것도 없다. 적어도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게 목적이라면, 지적 향유에 심취하여 개별적으로 사람들에게 특정한 방법을 시험하고 있기 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입증되고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치료와 교육을 제공하는 데에 에너지를 쓰는 편이 나을 것이다. 반가운 사실은 정신질환의 정확한 원인을 설명하는 멋진 이론은 여전히 안개 속에 있지만, 그 치료에 대해서는 믿을 만한 지식이 충분히 많이 축적되어 있다는 점이다.


내가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제법 딱딱한 어조로 화물 숭배 정신의학을 언급하는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우선 나는 최대한 임상과학의 근거에 기반하여 이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 사람의 몸과 마음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절제력과 도덕성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이 건강 문제에 대해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때론 사회적 계약에 따라 그저 믿고 따를 수밖에 없는 영역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전문가도 환자도 신뢰할 만한 방법론이 필요하다. 절제력과 도덕성도 중요하겠지만, 개개인의 지력과 인품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때 근거는 우리가 가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이다. 실제 디스턴싱은 거의 대부분 근거가 명확한 심리치료 기법들에 기반하고 있다.


한편 화물 숭배 정신의학에 대한 언급은 일종의 자기 고백이자 자기 경계이기도 하다. 내가 진행하고 있는 디스턴싱 프로젝트는 정신건강에 대한 세 가지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질문에 답하며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어둠 속에서 지팡이를 내딛으며 가지 않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과학과 근거라고 하는 가장 정확한 지팡이를 사용하고자 했으나, 그럼에도 몇 걸음은 흐린 안개 속에 발자국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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