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턴싱 002
- 우울, 불안 관리를 위한 인지행동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 본 연재물은 출판사와 함께 위와 관련된 주제로 한 서적 출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리된 내용입니다.
- 게재된 글은 탈고를 거치지 않은 글로, 출간될 글과 비교하여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출간 이후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 글은 한 달에 약 1,000명 정도의 온라인 인지행동치료를 진행하는 저희 팀의 경험과 배경 지식, 그리고 정신과 의사, 상담사 등으로 구성된 디스턴싱 연구팀의 자료조사에 기반해 작성되었습니다.
- 탈고와 감수를 거치진 않았지만, 도움이 될까 싶어 미리 하나씩 공유해보는 것이니, 참고용으로만 가볍게 살펴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글은 이전 글과 이어지므로 제목에 있는 번호 순서대로 읽어주시면 좋습니다.
- 글에 나오는 예시는 모두 당사자의 동의를 얻은 후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상세 내용을 충분히 각색하였고, 이름은 의도치 않게 국내 특정 인물을 지칭할 수 있기 때문에 외국인 가명으로 변경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세계적인 스타트업 투자사인 와이 컴비네이터(Y-combinator)의 창업자 폴 그레이엄(Paul Graham)은 한 키노트 발표에서 재밌는 비유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주요 내용은 시작을 작게 하라는 것이었다. 전 세계 인구의 시간을 진공청소기처럼 흡입하는 초대형 웹사이트(페이스북)를 만들고 싶다면, 하버드대 학생들이 서로 스토킹할 수 있게 해 주는 웹사이트부터 만들어보라는 식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처음부터 너무 큰 야심을 가지는 것은 좋은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목표가 클수록 그 목표를 실현하는 데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바라보는 미래가 현시점에서 멀리 있을수록 틀릴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혁신가들의 모습처럼 멋진 비전을 그리고 그 비전에 어떻게 도달할지 생각하는 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보다 ‘서쪽엔 무언가 있다(There’s something to the West)’라고 말하고 ‘서쪽으로 가겠다(I’ll sail westward)’라고 말하는 콜럼버스처럼, 실제로 작동하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조금 더 나아갈 기회가 오면 그 기회를 붙잡아 도약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
내가 바라본 서쪽에는 세 가지 질문이 놓여 있다. 첫 번째 질문은 정신질환 문제가 왜 이렇게 보편적인가 하는 것이다. 생태계 모든 종을 통틀어, 왜 인간이라는 종에게만 그토록 광범위한 현상으로서 정신질환이 관찰되는 걸까? 우리는 종종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와 같은 거예요”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하지만 잠깐 멈춰서 생각해 보자. 감기 바이러스는 신체 접촉, 비말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쉽게 전파될 수 있다. 더군다나 지구상 바이러스 DNA의 총량은 인간 DNA의 총량보다 거의 1,000배는 더 많다. 사실 인간 DNA의 상당 부분은 바이러스로부터 유래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이 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중에는 분명 감기 바이러스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감기가 그토록 보편적인 질환이라는 건 쉽게 납득 가능하다.
하지만 정신질환은 왜 그토록 보편적일까? 정신질환의 평생 유병률은 약 30% 정도에 달한다. 세 명 중 한 명은 인생에서 한 번 이상은 정신질환을 앓게 된다는 뜻이다. 어쩌면 우리가 진단을 너무 남용하고 있는 걸까?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말이다. DSM-IV라는 정신과 진단 체계의 개발을 이끌었던 앨런 프랜시스는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Saving normal》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충분히 예상되고 감내되었던 삶의 일반적인 고충들을 질환으로 진단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의 관점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정신질환을 겪게 되는 현상의 원인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진단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만큼 많은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제어가 되지 않는 정신적 괴로움으로 인해 전문가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개인이 느끼는 주관적인 괴로움은 분명 보편적으로 실재하는 것이다.
어쩌면 어떤 운명적인 원인이 있는 게 아닐까? 예를 들어 암은 인간의 불가피한 숙명이다. 애초에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하며, 번식하려면 DNA는 어느 정도 불안정적인 구조로 존재해야 하는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일정한 확률로 DNA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것이 암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암의 원인으로는 다양한 세부 요인들이 있지만, 왜 암이 생기느냐에 대한 궁극적인 답은 “인간이 태어나길 본디 그러하다”라고 답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신질환에도 그런 요소가 있는 게 아닐까? 가령 누구든 높은 확률로 그러한 일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아주 합당한 추측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많은 지면에 걸쳐 이러한 고통의 불가피성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한편 정신질환이 그토록 보편적인 데에는 또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아주 빠르게 확장하고 있는 현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이 아주 강력한 피드백 고리에 기반하고 있을 때가 많다. 선순환이든, 악순환이든 말이다. 코로나와 같은 팬데믹의 발생에는 감염자가 다시 더 많은 감염자를 만드는 강력한 피드백이 작용한다. 사회과학 영역에서 밈(Meme)의 발생과 전파 또한 비슷한 경로를 밟는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용자 수가 늘어날수록 서비스의 가치가 높아지고, 그 가치가 다시 새로운 사용자를 끌어들이는 선순환을 뜻하는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는 전형적인 선순환의 예시다.
어쩌면 정신질환에도 그 자체적으로 아주 쉽게 발전하여 영속화될 수 있는 어떤 악순환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미국의 1세대 명상 지도자인 조셉 골드스타인은 “병이 가장 낫지 않는 경우는 병을 고치려고 먹은 약이 오히려 병을 악화시키는 때”라고 말했다. 정확히 같은 일이 우리의 정신건강 문제에도 보편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 심리적 괴로움에 대한 우리의 건강하지 못한 대처가 그 문제를 더욱 크게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을 설명할 것이다.
정신건강에 대한 두 번째 질문은 왜 다수의 정신질환들은 중첩되어 나타나고, 또 그 질환들 사이에는 위계 구조가 있냐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신질환은 다양한 질환들이 함께 중첩되어 나타난다. 이미 널리 알려진 것처럼 우울증, 불안장애, 수면장애 등은 아주 강력한 연관성을 보인다. 한 가지 질환을 앓으면 다른 질환을 앓고 있을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는 것이다. 다른 신체질환과는 달리 정신질환은 유달리 그러한 증상과 진단의 중첩이 아주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이들 정신질환 사이에 공통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어떤 메커니즘이 있는 건 아닐까?
더군다나 정신질환은 일종의 위계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단순하게 설명하면 위계의 가장 위에는 정신병(예, 조현병)이 위치하고 있다. 그 아래에는 순서대로 양극성 장애, 우울증, 불안장애가 있다. 위계의 위쪽에 있는 질환에 효과가 있는 약물은 위계의 아래쪽에 있는 질환에도 효과가 있다. 하지만 반대로 위계의 아래쪽에 있는 질환에 효과가 있는 약물은 위계의 위쪽에 있는 질환에는 효과가 없다. 때론 항우울제가 양극성 장애에서의 조증 삽화를 유발하는 것처럼, 오히려 그 증상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정신질환들은 독립적으로 구별된 현상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어떤 기능의 이상이 연속선상에서 정도에 차이를 두고 발현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개별 질환만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우울증을 생각해 보자. 어디부터 정상이고, 어디부터 비정상인가?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우울할 때가 있다. 그중에 누군가는 때론 제법 심각하게 우울하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보단 덜 심각하게 우울하다. 누군가는 13일 동안 우울하고, 누군가는 15일 동안 우울하다. 누군가는 우울하여 직장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어떤 예술가는 우울하여 가정이 파탄이 났지만 그 특유의 멜랑콜리함으로 작품 생활을 이어 나간다. 대체 정상의 기준을 어디에 그을 수 있는 걸까?
아무도 이 부분에 명료한 답을 내릴 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질환의 진단은 항상 그 문제가 “일상생활에 문제를 일으키는지”를 확인하는 주관적 판단을 포함하고 있다. 일정한 패턴의 문제가 일정 기간 이상 지속되고, 그 문제가 정말로 나의 일상생활을 크게 방해하고 있다면, 정신질환으로 진단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에 대한 답을 깊게 고민해 본다면 한 가지 결론밖에 낼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정신건강 측면에서 정상과 비정상이라고 하는 것은 흑백논리적으로 결론 내릴 순 없고, 정도의 차이가 있는 연속적인 개념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정신건강에 대한 마지막 세 번째 질문은 다음과 같다: 만약 대부분의 정신건강 문제가 어떠한 공통된 기전에 의해 발생하고, 그러한 기전은 단순히 흑백논리적인 유무(예, 있다, 없다)가 아니라 보다 연속적인 기능(예, 많다, 적다)과 관련이 깊은 것이라면, 그러한 기전을 조금 더 미리, 그리고 효율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이에 대한 나의 답이 ‘디스턴싱(Distancing)’이다.
앞으로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체계적으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긴 이야기에 앞서 그 결론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첫째, 그 끔찍한 정신질환은 사실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는 조금씩 미쳐 있다. 둘째, 다만 그것은 우리가 본디 그러한 구조를 가지고 진화했기 때문이지 개인의 나약함 때문은 아니다. 셋째, 다행히 삶을 개선할 멋진 방법이 있으며, 그러한 방법은 인간이라면 누구든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하고 고귀한 본성에 기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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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스턴싱은 비대면 인지치료 프로그램입니다.
- 서울의대 출신 의사 창업자를 비롯하여 많은 의사, 상담사 선생님께서 참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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