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기술

디스턴싱 003

by 홍승주
- 우울, 불안 관리를 위한 인지행동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 본 연재물은 출판사와 함께 위와 관련된 주제로 한 서적 출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리된 내용입니다.
- 게재된 글은 탈고를 거치지 않은 글로, 출간될 글과 비교하여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출간 이후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 글은 한 달에 약 1,000명 정도의 온라인 인지행동치료를 진행하는 저희 팀의 경험과 배경 지식, 그리고 정신과 의사, 상담사 등으로 구성된 디스턴싱 연구팀의 자료조사에 기반해 작성되었습니다.
- 탈고와 감수를 거치진 않았지만, 도움이 될까 싶어 미리 하나씩 공유해보는 것이니, 참고용으로만 가볍게 살펴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글은 이전 글과 이어지므로 제목에 있는 번호 순서대로 읽어주시면 좋습니다.
- 글에 나오는 예시는 모두 당사자의 동의를 얻은 후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상세 내용을 충분히 각색하였고, 이름은 의도치 않게 국내 특정 인물을 지칭할 수 있기 때문에 외국인 가명으로 변경하여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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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중요한 이야기를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이야기에 약물치료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약물치료가 효과가 없어서일까? 그렇지 않다. 약물치료는 현대 정신의학이 가지고 있는 아주 중요한 도구 중 하나다. 근거에 기반한 정신질환 ‘치료’로서 고려할 수 있는 것은 약물치료와 심리치료 두 가지밖에 없다. 운동도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고, 수면도 중요하고, 영양도 중요하지만,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제외한 그 어떠한 것도 단일 개입으로서 충분한 치료적 효과를 증명하진 못했다.


그렇다면 왜 위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약물치료에서 찾지 않는 걸까? 우선 아쉽지만 나는 약물치료에 대해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 더 완벽한 약물을 찾아낼 수 있는 방법도 알지 못하고, 지금보다 몇 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으로 인식하고 약물로 이를 해결하라고 설득할 수 있는 현명한 방법도 알지 못한다. 물론 내가 모른다고 약물치료에서 혁신이 불가능한 건 아니며, 약물치료의 효과가 없다는 것도 전혀 아니다.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한편 내가 심리치료의 혁신에 더 집중하는 이유는, 약물치료도 만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약물치료는 마법의 총알이 아니다. 물론 약물치료가 효과 있는 것은 명확하다. 아주 엄밀한 검증 끝에 연구자들은 21종의 항우울제 모두가 위약(플라시보) 대비 효과가 있다는 걸 증명했다. 그러나 효과가 있다는 결론과는 별개로, 그 차이가 그렇게 극적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어진 다른 연구에서 실제 효과의 차이를 비교했을 때, 항우울제 치료자 중 15%는 실질적으로 유의미한 반응을 보였지만 나머지는 그러지 못했고, 전체적으로 봤을 때에는 항우울제 치료군과 플라시보군 사이에 우울 점수가 52점 만점 기준으로 약 1.75점 정도의 차이만 났다. 이 때문인지 세계적으로도 저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연구자인 데이비드 번즈(David D. Burns)는 그의 저서에서 “이런 약물들은 위약 효과를 뛰어넘는 임상적 결과를 거의 또는 전혀 보여주지 못한다”라고 말하며 광범위한 약물치료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표출하기도 한다.


사실 약물치료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오히려 약물은 종종 생명을 구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만 우리의 모든 심리적 괴로움을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으로 환원하여 약물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향에 문제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꼭 그 방법만 있는 건 아니다.


2024년 세계 최고의 의학 저널 JAMA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우울증의 일차 치료에 있어 치료 효과(effect size) 크기는 약물치료에 비해 심리치료가 더 높아, 경증-중등도 우울증에서 심리치료는 약물과 비슷하거나 때로 더 유리한 결과를 보인다. 따라서 대부분의 주요 가이드라인에서도 경증에서 중등도 수준의 우울증에서는 심리치료를 우선적으로, 중증 수준의 우울증부터는 심리치료, 약물치료, 또는 둘을 함께 시도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물론 심리치료도 만능은 아니다. 심리치료가 약물치료에 비해 효과가 좋다고 볼 수도 없다. 하지만 그 무엇도 만능이 아닌 상황에서 우울증의 일차 치료법으로서 심리치료의 치료 효과가 약물치료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고, 특히 경증-중등도 수준의 우울 문제에서는 심리치료의 치료 효과가 충분하며, 부작용이나 오남용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면, 인구 집단 수준의 정신건강 문제 측면에서는 오히려 심리치료의 역할이 더 크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심리치료는 보다 다양한 활용도를 가지고 있다. 이 또한 내가 약물치료보다 심리치료에 더 집중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앞서 나는 이 책을 통해 “정신질환이 아주 흔하게 발생하도록 하고, 정신질환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게 만들며, 대부분의 정신질환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기전”이 있고, 그 기전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 방법은 약물치료와는 달리 반드시 병이 본격적으로 발발해야 연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심리치료의 ‘마음의 기술’은 비교적 경미한 심리적 괴로움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그냥 그 자체로 제법 흥미롭고 유익한 공부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신질환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미리 마음의 기술을 익혀두고 있다가, 필요할 때 적절하게 활용하면 될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나는 이 마음의 기술이 비단 정신질환을 다루는 것을 넘어 우리 모두가 보다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데에 아주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는다. 약물은 구렁텅이에 빠진 우리를 꺼내주는 데에 효과적이지만, 심리치료라는 마음의 기술은 그 너머의 행복한 삶을 보여준다.

이에 나는 심리치료를 중심으로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갔다. 그 과정에서 또 하나의 화물 숭배 정신의학을 만들지 않고자 근거 수준이 높은 심리치료 기법들을 선별하고, 그것들 사이에서 공통점을 추출하고자 최대한으로 노력했다. 특히 실제 마음에 적용하는 것과 관련한 주장은 거의 대부분 근거가 확실한 치료법들을 활용하였다. 디스턴싱은 대부분 이러한 이론들을 잘 엮은 것이므로 디스턴싱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그 기원을 명확히 밝혀둔다.


디스턴싱은 아론 벡(Aaron T. Beck)의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 CBT)와 앨버트 엘리스(Albert Ellis)의 합리적 정서행동치료(Rational Emotive Behavior Therapy, REBT), 그리고 이를 계승한 조금 더 현대적인 버전의 회복지향 인지행동치료(Recovery-Oriented Cognitive Therapy, ROCT)를 포함한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지행동치료를 광범위하게 참조하였다. 또한 스티븐 헤이즈(Steven C. Hayes)의 수용전념치료(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ACT), 마샤 리네한(Marsha Linehan)의 변증법적행동치료(Dialectical Behavioral Therapy, DBT), 그리고 행동활성화(Behavioral Activation, BA)에서도 많은 힌트를 얻었다. 뿐만 아니라 마음챙김과 관련하여서는 다양한 종류의 마음챙김 기반 중재(Mindfulness-based intervention)를 참고하였고 특히 우울증 재발 방지에 활용된 마음챙김 기반 인지치료(Mindfulness-based cognitive therapy, MBCT)와 스트레스 관리 목적의 마음챙김 프로그램(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MBSR)을 많이 참조하였다. 또한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것과 관련하여 문제해결치료(Problem-solving therapy, PST)와 대인관계치료(Interpersonal psychotherapy, IPT)를 적극적으로 참고하였다. 이들 치료법들은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의 치료 가이드라인에 가장 우선적으로 포함되는 치료법으로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방법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그에 비해 아직까지 근거 수준은 부족하지만 기존의 접근법들을 잘 보완하면서, 동시에 디스턴싱이 바라보고 있는 통일된 관점에서 정리가 잘 되는 방법들 중에서 폴 길버트(Paul Gilbert)의 자비중심치료(Compassion-focused therapy, CFT)와 펫 오그던(Pat Ogden)의 감각운동 심리치료(sensorimotor psychotherapy, SP)를 추가로 선택하여 함께 정리하였다.


한편 치료법은 아니지만 충분히 도움이 되는 방법론으로서 자애명상(Loving-Kindness Meditation, LKM)과 비폭력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 NVC)의 현명한 접근도 참고하였다.


아울러 이 모든 내용들의 배경에 있는 철학적 함의로서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 스토아철학, 칼 로저스(Carl Rogers)와 매슬로우(Abraham Maslow)로 대표되는 인본주의심리학, 그리고 실존주의 심리학에 뿌리를 둔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의 로고테라피(Logotherapy)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지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프로이트, 아들러, 융으로 대표되는 정신분석은, 보다 현대적인 방식의 단기 정신역동치료(Short-Term Psychodynamic Psychotherapy, STPP)를 제외하면, 여전히 비지시적인 특성 때문에 보편적인 관점에서 근거 중심 심리치료법으로 인정되고 있진 않지만, 그래도 초기 선구자들의 통찰들은 철학적인 관점에서 부분적으로 참고하였다.


다음으로 아마 이것이 가장 낯설고 이질적인 주제일 텐데, 이 모든 내용의 논리적 전개를 완성하는 데에 있어서는 불교 철학의 지혜로움을 매우 적극적으로 반영하였다. 근거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웬 종교인가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종교를 설파하고자 함은 아니다.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나는 불교를 신앙하진 않는다. 하지만 과학으로서 신뢰할 뿐이다. 모든 문헌들을 검토해 보아도 마음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불교 철학의 논리 체계만 한 것이 없었다. 따라서 동양의 지혜와 서양의 엄밀함이 만나며 통섭적인 작업들이 많이 진행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만약 치료에 유효하다면 이제는 충분히 그 관점도 적극적으로 채택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아울러 불교 철학적∙사상적 관점으로 해설한 내용과 근거에 기반한 과학적 관점에서 증명된 내용은 애매하게 섞지 않고 분명히 구분하여 기술하였으니 큰 혼란은 없을 것이다.


이외에도 훌륭한 치료법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고, 나는 그러한 치료법들에서도 많은 지혜를 얻었다. 다만 양질의 무작위 대조군 연구(Randomized Controlled Trial, RCT)가 드물거나, 있더라도 표본 규모가 극히 제한적이거나, 추적 기간이 부족하여 그 타당성을 충분히 확신할 수 없거나, 비교 대조군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거나, 다양한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반복적으로 재현된 결과가 아닌 경우가 많아, 나의 개인적 사견만으로는 적극적으로 채택하기에 무리가 있었을 뿐이다.


언젠가 한 치료 방법을 적극 사용하고 있는 치료자가 디스턴싱은 왜 이 방법을 등한시하고 인지행동치료만 진리인 것처럼 설명하느냐고 연락해 온 적이 있었다. 특정 치료법을 폄하하고자 함은 아니다. 그저 나에게는 뛰어난 연구자들이 만들어둔 임상적 근거를 배제하고 무언가를 쌓아올릴 지혜가 부족한 것뿐이니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한다. 인지행동치료도, 그에 기반한 디스턴싱도 당연히 절대적 진리는 아니다. 특정한 교리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것보다는 때로는 유연한 마음을 가지는 게 참된 진리에 더 가깝다.


마지막으로 디스턴싱의 개념은 나와 디스턴싱 팀이 구축하여 운영하고 있는 디스턴싱 앱 서비스에서 배우고 훈련하는 내용에 기반하고 있다. 디스턴싱은 ‘전문가의 안내에 기반한 자기치료(Guided self-help)’ 프로그램이다. 간단히 말하면 ‘전문가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건강 학습지’라고 할 수 있다. 매일 자신이 직접 배우고 훈련해야 할 자료와 도구들이 주어지고, 그것을 활용함에 있어서 전문가가 가이드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가벼운 접근처럼 보이지만 해당 방식은 우울증, 준임상적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 강박장애, 섭식장애, 만성통증, PTSD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있어서 임상적으로 유의한 효과를 보이며, 더 나아가 대면치료 방법과 비교하여 비열등한(non-inferior) 결과가 반복 보고되었다. 이에 최근에는 공식적인 치료 가이드라인에서도 경증-중등도 수준의 우울증에 대해 권고하는 치료법으로 등재되기도 하였다. 본 책에 기술된 모든 내용은 그러한 근거 중심 방법론 위에서 근거 중심 치료법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해보며 충분히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내용들을 통일성 있게 정리한 것이다.


이와 같이 디스턴싱은 주로 근거 중심 심리치료 기법과 치료 방법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일부 아직 근거가 다소 부족한 영역의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그러한 부분에서는 한계를 분명히 밝혀두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한때 근거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을 때도 있었다. 근거를 엄밀하게 따르는 것만이 진리라고 말이다. 그로 인해 분명 특정한 치료나 관점이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를 배제했던 적도 있었다. 그때 내가 만약 과학자 행세를 조금만 덜 했더라면 그 사람에게 더 나은 도움을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디스턴싱도 마찬가지다. 디스턴싱이 근거를 추구하되 어느 정도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했기 때문에 그래도 그간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도움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안개 속에 있는 미지의 세계로 발걸음을 내딛을 순 없었을 것이다. 화물을 숭배해선 안 되겠으나 최대한 근거를 염두에 두되 새로운 화물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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