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몸을 기다리는 시간, 몸이 머리를 따라잡는 시간
어젯밤 자러 가기 전에 그림을 그렸다. 실은 그림을 그렸다기에는 단순한 선 긋기 연습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 배우기 책에서는 그림을 배우기 전에 가장 처음 자신의 서명을 만든다. 자신의 이름에 무언가 디자인적 요소를 곁들여 멋들어지게 써 보는 것이다.
그다음 그 책의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자, 너는 이제 그림을 하나 그려봤다!”
그런 의미에서의 그림이었다.
지난 여행에서 우연히 발견한 다채로운 색채의 한 차 카페에서 그림 놀이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림을 한 장 그린다’는 거창한 행위가 아니라 그저 작은 종이에 향내 나는 물감을 묻히며 노는 정도였다. 하지만 즐거웠다.
하얀 종이에 그려진 검은 선들. 그 선들을 보고 있으니 그 위에 내가 입힐 색채들이 저절로 떠올랐다. 한편 그 색들을 실제로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은 또 다른 작업이었다. 생각처럼 제대로 된 부분도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구상에서 크게 벗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일탈이 또 재미있었다. 어찌어찌 완성한 그림은 처음의 생각과는 아주 다른, 하지만 어딘가 비슷하기도 한 것이었다.
색칠을 하는 순간순간 내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무슨 선택을 하고 어떻게 행동에 옮겼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때 내 앞에 있는 완성된 그림이 그 순간들이 합쳐져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것뿐이었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결코 잘 그린 그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역시 화가인 카페 주인은 내가 그린 그림을 보고는 알 수 없이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태국인의 이 친절함이란), 나는 그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그 순간의 내가, 비록 부족할지언정 그곳에 담겨 있었으니.
그 여행의 순간을 일상에서 재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다. 매일 15분의 생활 예술 시간을.
저녁을 먹은 다음 먹은 것들을 다 치워 두고 나서, 오늘 하루의 할 일을 다 끝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스케치 공책을 편다. 타이머를 15분에 맞춰 두고 음악을 튼다.
오늘 그릴 것은 선과 원. 손목만 움직이지 않고 팔을 크게 쓴다. 어느 정도는 의식적으로 연필에 힘을 주어 선을 짙게 만든다. 선이 나아가야 할 목적지에 시선을 두고 손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게 한다.
생각보다 내 손을 의지대로 움직이는 일은 쉽지 않다. 생각처럼 똑바로 그어지지 않고 이상하게 습관처럼 휘어지는 선을 보면 웃기기도 하다. 분명히 직선을 그리려 했는데 어설프게 뚱뚱한 곡선. 그다음에 그린 선도 마치 쌍둥이처럼 어설픈 부분만 닮아 있다. 필압도 제멋대로 들쑥날쑥.
하지만 또 즐거웠다. 원 그리기 연습을 하다가는 놀기 시작해서 이런저런 꽃들을 그렸다. 해칭을 하다 생긴 네모진 공간들이 아까워 색칠을 했다. 휴대전화에서는 휘트니 휴스턴이 열창을 해 주었다.
항상 머리가 먼저 달려 나가 몸이 따라주지 않는 내가, 이 말을 잘 듣지 않는 몸을 부추기며 따라잡도록 기다려주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