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헤어진 커플

북극곰과 고래

by 김자유


‘어, 웃어?’

좀 전까지만 해도 삼십 분째 휴지로 눈물을 찍어내던 여자였다. 빨개진 눈으로 카페를 가로지르던 여자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마치 역할극 몰입에서 빠져나와 현타라도 온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자가 테이블 안쪽 소파에서 일어나 카페 문을 열고 나가는 동안, 문을 등진 채 앉아 있던 남자는 10초 정도 꼼짝도 안 하고 팔짱을 낀 채 앞만 바라봤다. 그러다 핸드폰을 꺼내 엄지를 몇 번 휘이휘이 젓듯 움직였다. 딱히 무엇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좀 전에 여자가 나간 출구 쪽을 바라봤다. 남자는 여자가 소파에서 일어나는 것까지는 봤어도, 문 밖으로 나가는 순간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아마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겠지.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조금 전 여자가 앉았던 소파로 가서, 그녀가 나간 출구를 바라보며 앉았다.


누가 어디에 앉는가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딱딱하고 팔걸이도 없는 의자에 앉은 쪽이 더 배려하는 쪽이다. 등받이가 있고 쿠션감 좋은 소파 쪽에 앉는 편이 더 배려받아 마땅한 측이다. 그러니까 거기에도 역할이 반영되어 있다. 내가 막 카페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그들은 자리를 제대로 나눠 앉은 여느 커플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한 시간 만에 엄청난 구조 조정을 겪었다. 권력은 충돌했고, 자리는 뒤집어졌다. 해고도 이런 식으로는 안 할 텐데. 남자는 붐비는 카페 안에서 속절없이 당했다. 그리고 남자는 그대로 자신도 카페를 떠나는 대신 자리를 바꿔 다시 앉은 것이다.



어쨌든 문제는 여자의 표정이었다. 처음 여자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우는 건가?’ 싶을 정도로 둘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여자는 마치 혼자 고민을 털어놓다가 눈물이 터져버린 사람처럼 보였다. 남자가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살짝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는 이야기와 함께 눈물을 멈추지 않았고, 남자는 점점 굳어갔다. 나는 커피 잔을 들어올릴 때마다 정면에 보이는 그 커플에게 계속 눈길이 갔다. 남자는 어느새 팔짱을 끼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치 이미 결론을 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다음 내가 그들을 다시 바라봤을 때, 여자는 일어나 카페를 가로질러 이동 중이었다. 나는 여자가 휴지라도 가지러 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여자는 남자의 시선이 벗어난 곳에서 입꼬리가 올라간 채 카페를 벗어났다. 그러니까 그때 그녀의 얼굴에 ‘북극곰’과 ‘고래’가 동시에 보였달까.


빙하 아래 사는 ‘고래’는 좀처럼 빙하 위에 사는 ‘북극곰’을 만나지 못한다. 어느 심리학자는 우리의 무의식을 ‘고래’라고 칭했다. 우리는 의식 저 깊숙한 심연에 숨겨놓은 감정들을 좀처럼 마주하지 못한다. 대신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우리의 의식, 즉 ‘북극곰’이다. 어쩌면 이별을 고하던 여자는 의식적으로 스스로가 ‘슬픔에 빠진 처연한 북극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굳은 채 앉아 있는 남자를 두고 벌떡 일어나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빠르게 걸어나가는 동안, 그녀의 마음 깊이 숨겨놓은 ‘고래’가 펄떡 튀어올랐다.


그러니까 그녀는 사실 이 이별이 어느 정도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일종의 승리라도 거둔 기분이었을까? 자신이 웃었다는 걸 알고 있을까? 남자도 비워버린 카페 의자를 보며, 왠지 그녀가 다음에는 빙하가 와장창 부서지는 듯한 이별을 경험해보길 비는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