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기 전, 표현을 배운 아이”
어릴 때의 나는
‘세상을 어떻게 느끼는가’보다
‘세상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를 먼저 배운 아이였다.
돌이켜보면 이건 조금 이상한 성장 방식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감정을 먼저 배우고,
그다음에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하지만 나는 그 순서가 정반대였다.
감정보다 연기를 먼저 배웠고,
친구보다 동료를 먼저 배웠고,
놀이터보다 세트장을 먼저 배웠다.
4살부터 시작된 촬영장에서의 시간은
아이였던 나를 너무 빠르게 어른의 세계로 끌어당겼다.
보통 아이들은
“왜 슬퍼?”, “왜 화가 나?”, “왜 기뻐?”
이런 질문을 들으면서 감정의 이름을 익힌다.
그런데 나는 그보다 먼저
“지금은 여기서 울어야 돼.”
“이 장면에서는 두려워해야 해.”
“이 대사는 속상한 톤으로.”
라는 지시를 들었다.
감정을 ‘이해’ 하기 전에
감정을 ‘표현’ 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내 어린 시절의 감정들은
내가 느낀 감정보다
내가 재현해야 했던 감정들이 더 선명하다.
그리고 또래 아이들이 친구를 사귀며 사회성을 배울 때,
나는 스태프와 감독, 배우들과 함께 ‘일’을 하며 관계를 배웠다.
언젠가 누군가는
“그 어린 나이에 고생했겠다.”
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때의 나는 고생이라는 개념도 몰랐다.
단순히 그곳이 내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놀이터가 자연스럽듯
나에게는 세트장이 자연스러웠고,
다른 아이들이 친구와 다투고 화해하며 자라듯
나는 현장에서 동료들과의 호흡을 맞추며 컸다.
그래서 국민학교 2학년까지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연기하며 살아간다고 믿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묘하게 슬프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축복이기도 하다.
세상에 대한 이해가 독특한 방식으로 다져졌으니까.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연기를 배운 것이 아니라,
연기가 나를 먼저 키운 건 아니었을까?
감정을 흉내 내는 법을 먼저 배우고
감정을 느끼는 법은 그 뒤에야 배운 아이.
관계를 만드는 법보다
관계를 ‘연기하는 법’을 먼저 익힌 아이.
어린 나이였지만,
그 환경은 나를
“감각보다 표현이 앞서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좋은 점도 있다.
감정의 결을 빨리 파악하고,
표현의 미세한 차이를 읽어내는 능력은
그때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내 감정이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진짜로 슬퍼서 우는 건지,
우는 장면을 위해 감정을 불러낸 건지
경계가 흐려지는 경험들.
아이가 겪기엔
조금 무거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하나다.
나는 보통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배웠다는 것이다.
감정보다 연기를 먼저 배웠고,
친구보다 동료를 먼저 배웠고,
놀이보다 일의 감각을 먼저 익혔다.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라는 사람의 뼈대가 되었다.
어쩌면 나는
연기자가 된 것이 아니라,
연기가 나를 먼저 데려간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그 세계에서
나는 그렇게 자라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