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갈라지기 시작한 나
국민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의 나는
의외로 학교에서 큰 불화 없이 지냈다.
사람들은 종종
“아역 배우면 학교생활이 힘들지 않았어?”
라고 묻지만, 적어도 그 시기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학교에 있는 시간보다
촬영장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학교에 나타나면
아이들은 반겼다.
나는 늘 없다가 나타나는 아이였고,
저학년 아이들에게 그건 조금 특별한 일이었다.
특히 3학년까지는 정말 열심히 놀았다.
학교에서의 나는 배우라기보다 그냥 잘 뛰어다니는 아이였다.
하지만 촬영장에서의 나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1980년대 중반, 전두환 군사정권 말기.
이른바 ‘3S 정책’이 작동하던 시대였다.
스크린, 스포츠, 섹스.
대중의 시선을 정치에서 떼어내기 위해
오락과 소비가 강조되던 시기였고, 영화와 드라마 역시 그랬다.
그 흐름 속에서 아이에게 허락된 자리는 거의 없었다.
그 시대의 영화들, 이를테면 〈고래사냥〉 같은 작품들 속에는 아역배우가 설 자리가 없었다.
어린아이가 등장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주 제한적이었다.
전쟁고아, 가난한 농촌의 아이, 말없이 견뎌야 하는 아이들.
아이의 역할은 감정을 이끌기보다는
시대의 아픔을 대신 짊어지는 존재에 가까웠다.
나 역시 그 선택지 안에 있었다.
다만 나는 그 안에서도 꽤 운이 좋은 경우였다.
당시 우리나라 드라마에는 지금과는 다른 하나의 패턴이 있었다.
그건 바로 이야기가 인물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는 구조였다.
짧게는 1~2회, 길게는 3~4회에 걸쳐 아역 시절을 보여준 뒤
성인 배우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방식.
그래서 당시 아역 캐스팅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이야기의 출발을 맡기는 중요한 일이었다.
나는 주인공이거나, 적어도 서사의 중심에 놓인 인물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는 아역이었다.
전쟁고아이든, 가난한 농촌의 아이든, 역할의 얼굴은 비슷했지만 이야기 안에서의 위치는 달랐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현장이 익숙했던 나는 오디션장에서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처럼 보이기보다는 이미 연기자로 움직이는 아이.
그 모습은
‘잘한다.’라기보다 ‘이미 일을 아는 아이’로 받아들여졌다.
나는 아이였지만, 현장에서는 종종 아이로 대우받지 않았다.
그 무렵부터 아주 조금씩 이상한 감각이 생기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그냥 아이였고, 촬영장에서는 연기자였다.
세상 모든 사람이 연기를 하며 살아간다고 믿었던 아이는 학교를 다니며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주 희미하게 경계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냥 아이인 문혁과 연기자인 문혁 사이의 경계.
그 시절의 나는 그 경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단지 내가 '연기자'라는 일을 하는 사람이란 사실을 인지한 아이였을 뿐이었다.
그 경계가 나중에 어떤 방향으로 자라날지 알기에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