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 야화 8화 —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 믿었던 때

철부지의 오판

by eavan moon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이후,
내 위치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현장에서의 대우가 달라졌고,
호명되는 방식이 달라졌으며,
무엇보다 다음 선택이
너무 쉽게 이어졌다.


연이어서 드라마 주인공의 아역 제안이 들어왔다.
그건 노력의 결과라기보다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가 작동한 결과에 가까웠다.


그 무렵,
또래 아이들은 사춘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키가 크고, 목소리가 변하고,
자기 얼굴을 낯설어하던 시기.


하지만 나는 여전히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고 있었다.


역할 속의 나는
늘 같은 나이였고,
늘 같은 얼굴이었고,
늘 같은 위치에 있었다.


그 고정된 설정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어린 이미지를 계속 연기하다 보니
나 자신도
그 이미지 안에 머물러 있었다.


성장은 멈춘 게 아니었지만,
성장을 인식할 기회가 없었다.


현장은 늘 나를 반겼다.


유명한 아역배우였고,
다들 좋아해 주었고,
어디를 가든 환영받는 느낌이었다.


불안할 이유가 없었고,
두려워할 것도 없었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
나는 그때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는 아이였다.


소위 말하는
‘스타병’에 걸린 시기였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게 병이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드라마 오디션을 보게 되었다.


당연히
주인공 아역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제안된 역할은
메인 주인공이 아닌
서브메인 아역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중학생이 되어가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배역은
연출이 나를 위해 준비한
다음 단계의 역할이었다.


아역에서 청소년 연기로
천천히 넘어가게 하려는 의도.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 역할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미 다른 드라마를 촬영 중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고 느꼈다.


그때,
같이 오디션을 봤던 형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 배역, 정말 꼭 하고 싶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그게 좋은 일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감독님께
그 역할을 양보하겠다고 말했다.


감독님은 당황했고,
말을 아꼈다.


결국
내 의견은 받아들여졌고,
그 형이 그 역할을 맡게 되었다.


나는
괜찮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다.


어른스럽게 행동했고,
여유를 보였으며,
좋은 일을 했다고 믿었다.


그 선택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내 연기자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였다.


그 선택 이후,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유명해져서 건방진 아이.”
“자기 위치를 모르는 배우.”


누가 직접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현장의 공기는
분명히 변해 있었다.


인기는
모래성과 같다는 말을
그때는 몰랐다.


나는
그 모래성에
스스로 균열을 만들어 낸 셈이었다.


그리고 기가 막히게도,
시대는 변하고 있었다.


방송국에서는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청소년 드라마의 등장.


그 흐름 속에서
새로운 얼굴들이 나타났고,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해졌다.


그때까지 나는
그 변화를
아직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상이 여전히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알게 된다.


그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 착각이었는지를.


그리고
그 착각의 대가를
어떤 방식으로 치르게 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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