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끝나는 줄 몰랐던 때
변화를 알아채기 전까지,
나는 한동안 그 세계에서 충분히 따뜻했다.
현장에는 늘 나를 반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감독과 연기자들과 제작자들 뿐만 아니라
긱스태프팀의 막내형들이나 버스운전기사님까지.
"어, 혁이 왔어?"
그 한 마디는
아무렇지 않게 던져지는 말이었지만,
나에게는 늘 일종의 신호였다.
이 공간에 내 자리가 있다는 것.
내가 여기에 속해 있다는 것.
그 감각은
학교에서 느끼는 어떤 것과도 달랐다.
촬영 대기 시간,
나는 현장의 중심에 있었다.
주요 배역이었기 때문이다.
카메라 앞에 서야 하는 사람은
촬영이 준비되는 동안
지정된 자리에서 기다린다.
조명이 세팅되고,
앵글이 잡히고,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 시간.
나는 그 한복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모든 준비가 나를 향하고 있었고,
모든 시선이 언젠가는 나에게로 모일 예정이었다.
그 감각이
나는 이상하게 좋았다.
그 시절의 나는
현장에서 두 가지 방식으로 대우받았다.
하나는 카메라 앞에서.
대사 체크, 동선 확인, 감정 큐.
그 순간만큼은 나이가 없었다.
어리다는 이유로 봐주는 것도,
어리다는 이유로 쉽게 다루는 것도 없었다.
그냥 같은 배우였다.
다른 하나는 카메라 밖에서.
"혁아!"
누군가 그렇게 말하면 다른 누군가가 뭔가를 들고 와서 툭 내밀었다.
과자이거나, 음료수이거나, 김밥이 담긴 도시락이거나.
이 특별한 챙김을
당시엔 난 그게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다는 감각.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영화제 수상 이후,
그 환대는 조금 달라졌다.
달라졌다는 건
더 많아졌다는 뜻이었다.
현장에서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도
이미 나를 알고 있는 경우가 생겼다.
"아, 네가 혁이구나."
그리고 함께 일했던 스태프들은
나를 보면 장난스럽게 한 마디씩 붙였다.
"어, 스타 왔어?"
그게 놀림인지, 칭찬인지,
아니면 그냥 애정 어린 농담인지
구별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냥 좋았다.
그 한 마디가
내 안에서 조용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오히려 나는 더 확신하게 됐다.
이 세계는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
내가 오면 반가워한다는 것.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확신은
내 안에서 단단하게 굳어져 갔다.
환대에는 두 종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성인이 된 지금의 난 알고 있다.
하나는 내가 좋아서 반기는 것.
다른 하나는 내가 필요해서 반기는 것.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둘을 구별하지 못했다.
아니,
구별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환대는 그냥 환대였고,
반가움은 그냥 반가움이었다.
그 안에 온도 차이가 있다는 걸
나는 아직 몰랐다.
그 시절의 현장은 늘 시끄러웠다.
스태프들의 목소리,
장비 움직이는 소리,
수많은 사람들의 대화 소리.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기억 속의 그 시간은
조용하다.
분명히 떠들썩했는데,
지금 꺼내보면
소리가 없는 장면처럼 남아 있다.
아마도
너무 익숙했기 때문일 것이다.
파도가 치는 바다 앞에 오래 앉아 있으면
어느 순간 파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나는 그 세계에
완전히 젖어 있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멀리서
무언가가 가까워지고 있었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