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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편안 Oct 26. 2024

수험생활에 20대 올인

현재를 담보로 미래에 베팅했던 날들에 대하여

시험이 없어지고 나서야 수험생활을 끝냈다는 건데,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첫 구직 면접에서 받은 질문이었다.


'시험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서른 살이 제가 정해둔 기한이었기에 그때까지 수험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로 무마했지만 솔직한 내 대답은,

아니오.

저는 시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시험이 없어질 때까지 매달리다가

그 시험이 없어지고 나서야 그만둘 수 있었던 미련한 사람입니다.


21살 여름, 고시학원 등록

22살 여름, 고시원 생활 시작

23살 여름, 우울증 진단 - 수험생활 잠정 중단

24살 여름, 수험생활 재개

25살 여름, 시험 낙방

26살 여름, 시험 낙방

27살 여름, 시험 낙방 - 우울증 재발

28살 여름, 시험 낙방

29살 여름, 마지막 시험 낙방 - 시험 폐지


조금만 더, 한 번만 더 하면 될 것 같다는 희망이 사람을 말려 죽인다.

지난 시험보다 성적이 올랐으니, 최종 전형까지 갔으니, 희망적인 예비번호를 받았으니,

이번에는 진짜 될 것 같다는 희망.

나의 20대는 1년을 주기로 희망에 찼다가 절망에 빠지기를 무한정 반복하는 기간이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수험생활.


그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모든 것을 나중으로 유보시켰다.

점심으로 뭘 먹을까 하는 사소한 고민조차 염치없게 느껴졌다.

그 생각은 '지금 나한테 이 시험보다 중요한 것은 없지. 시험에 합격만 하면 그다음엔 내가 원하는 대로 뭐든 할 수 있겠지.'로 시작했으나, 실패가 반복되자 '지금 나는 이런 걸 누릴 자격이 없지. 다른 사람들은 앞으로 달려가는데 이렇게 여유 부릴 시간이 없지.'로 바뀌어 갔으며,

욕구도 취향도 억누른 채 흘러가는 일상은 푸석푸석했다.


먹는 것, 입는 것, 보고 듣는 그 모든 것이 미래에 맞춰져 있었다.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소리들을 모두 꽁꽁 틀어막고 기계처럼 해야 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마지막 시험 결과가 나오고

주변 사람들은 그 시간이 내 인생에서 헛된 시간은 아닐 거라며 위로했지만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반박했다.

나에게 그 시간은 이제 그저 빈칸이 되어버렸다고,

내 인생에 무의미한 10년의 공백이 생긴 것이라고.



***



수험생활을 마치고 n 년이 된 지금 '그 긴 수험생활에서 내가 얻게 된 건 무엇일까'에 대해 가끔 생각한다.

그 빈칸을 뭐라 정의 내릴 수 있을지, 공백이라고 생각했던 그 시간 속에 무엇이 남아있는지 찾는 것은 나의 몫이다.


아직 그 시간에서 찾은 의미는 하나뿐이다.


그늘이 있어야 햇살이 눈부신 것처럼

그 시간이 있었기에 마음이 벅차오를 만큼 행복한 지금의 순간들이 있다는 것.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최고의 메뉴가 무엇일지 고심하고,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냉장고 속 재료들로 새로운 레시피를 고안하는 것.

해가 길어지면 달큼하게 쪄진 찰옥수수를, 코 끝이 쌀쌀해오면 파삭하게 구워진 붕어빵을 기다리는 것.

비 오는 날 센티한 기분에 푹 젖어 빗소리를 듣고, 화창한 날에는 따사롭게 쏟아지는 햇빛을 만끽하며 걷는 것.

보고 싶었던 드라마를 밤새워 즐기고,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따라 부르며 오래 샤워하는 것.

갑자기 만나자는 친구의 연락에 거리낌 없이 시간을 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느긋한 저녁을 나누는 것.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언제나 할 수는 없는 소중한 것들에 감사하다.

아직도 나는 그 시간을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지만, 그럼에도 행복하다.

그리고 나는 안다.

시험 하나에 좌지우지될 만큼 내 인생이 가볍지 않다는 것을,

명랑하게 지금을 살아내면 그뿐이라는 것을.


오늘은 바닐라향 그득한 에그타르트를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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